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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공에 ‘Why Not’…시급 20만원 레슨 프로의 반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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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투어 프로가 아닌 클럽 프로 출신 마이클 블록은 PGA 챔피언십 공동 15위에 오르며 스타 선수들 못지 않은 주목을 받았다. [AP=연합뉴스]

투어 프로가 아닌 클럽 프로 출신 마이클 블록은 PGA 챔피언십 공동 15위에 오르며 스타 선수들 못지 않은 주목을 받았다. [AP=연합뉴스]

“올해 PGA 챔피언십은 일주일 내내 마이클 블록을 위한 파티였다.”

미국 CNN은 22일 미국 뉴욕주 로체스터의 오크힐 골프장(파70)에서 열린 PGA 챔피언십이 끝나자 이렇게 밝혔다. 투어 프로가 아닌 클럽 프로(골프장에서 회원들을 가르치는 강사)로서 대회 내내 인기몰이를 한 마이클 블록(47·미국)의 활약을 자세히 소개했다.

이번 PGA 챔피언십의 깜짝 스타는 단연 블록이었다. 개막 전까지는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무명 중의 무명이었지만, 기라성 같은 세계 정상급 프로들과 샷 대결을 펼치면서도 전혀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 현지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메이저 챔피언의 자리에 오른 브룩스 켑카(33·미국)보다 오히려 블록에게 관심이 쏠릴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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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생으로 올해 47세인 블록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미션비에호의 아로요 트라부코 골프장에서 헤드 프로로 일하고 있다. 그런데 투어 카드를 가진 프로골퍼가 아닌 골프 선생님이 어떻게 세계적인 남자 골프 메이저 대회에 출전할 수 있었을까.

PGA 챔피언십은 미국프로골프(PGA) 투어가 아닌 레슨 프로 중심의 미국프로골프협회(PGA 오브 아메리카)가 주관한다. 원래 PGA 오브 아메리카가 지금의 PGA 투어를 관장했지만, 투어 프로들이 독립을 요구하면서 1968년 말 PGA 투어라는 이름의 새로운 조직이 생겨났다. 자연스레 PGA 투어는 선수 중심, PGA 오브 아메리카는 레슨 프로 중심으로 재편됐다.

조직은 분리됐지만, 1916년 출범한 PGA 챔피언십의 역사는 그대로 이어졌다. 명맥을 이은 PGA 오브 아메리카는 미국에서 일하는 클럽 프로 20명에게 매년 PGA 챔피언십의 출전권을 주는 방식으로 소속 회원들의 권리를 지켰다. 그 덕분에 블록도 이번 대회에 출전할 수 있었다.

이번이 5번째 PGA 챔피언십 출전인 블록은 악명 높은 오크힐 코스에서 연일 선전했다. 1, 2라운드에서 각각 이븐파 70타를 기록해 공동 10위로 컷을 통과했다. 또, 3라운드에서도 이븐파를 기록하면서 공동 8위로 순위를 끌어올렸다. 현지 언론은 “블록이 70타의 기적을 써내려가고 있다”며 흥분했다.

백미는 최종 4라운드였다. 전반 보기 2개로 주춤하던 블록. 그런데 151야드짜리 15번 홀(파3)에서 ‘깜짝’ 홀인원이 나왔다. 티샷이 덩크슛처럼 그대로 홀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워낙 눈 깜짝할 사이 일어난 일이라 본인도 홀인원 사실을 알지 못했다. 블록은 갤러리의 환호성을 듣고 나서야 홀인원을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동반자인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로부터 축하를 받고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마지막 날 홀인원을 기록한 블록은 보기 3개를 하면서 합계 1오버파 281타 공동 15위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쟁쟁한 역대 메이저 챔피언들도 블록보다 좋은 성적을 거두진 못했다. 패트릭 리드는 공동 18위, 콜린 모리카와는 공동 26위, 조던 스피스(이상 미국)는 공동 29위였다.

블록은 이날 상금 3억8000만원을 받았다. 그는 또 이번 대회 15위 이내 선수에게 주어지는 내년도 PGA 챔피언십 출전권도 확보했다. 블록은 평소 골프장에서 45분간 레슨을 하면서 16만원 정도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그는 “액수가 업데이트 되지 않았더라. 정확히는 1시간당 150달러(약 20만원)를 받는다”고 말했다.

블록은 레슨 프로로서 새 역사도 썼다. 21세기 들어 PGA 챔피언십에서 최고 성적을 낸 클럽 프로는 2005년 공동 40위를 기록한 스티브 슈나이터(60·캐나다)였다. 이번 대회 기간 골프공에 ‘왜 안돼(Why Not)’란 문구를 써놓고 라운드했던 블록은 “초현실적인 경험이었다. 나는 꿈을 꾸고 있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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