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사 사각 요양병원…연명의료중단 도와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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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미루고 미루다 임종 직전 연명의료 중단(일명 존엄사)을 결정하는 소위 ‘벼락치기 존엄사’를 개선하라는 대통령 소속 위원회의 권고가 나왔다.

대통령 소속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이하 국생위)는 22일 연명의료결정제도 개선 권고안을 확정해 정부에 통보했다. 국생위는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할 수 있는 시기를 ‘말기 환자 등’으로 제한한 현행 연명의료결정법을 개정하라”고 권고했다. 말기 환자는 적극적으로 치료해도 회복 가능성이 없고 점차 악화하는 경우를 말한다. 담당 의사의 진단이 필요하다.

백수진 국가생명윤리정책원 생명윤리센터장은 “의사들이 말기 진단을 하게 되면 진료를 포기하는 것처럼 비칠까 봐 부담을 느낀다. 그러다 보니 연명의료계획서 작성 시기를 놓치고, 계속 늦어진다. 막판에 작성하거나 가족이 결정하게 된다”고 말했다. 말기 환자 제한을 없애면 훨씬 이전인 암 진단 때 작성하거나 고령의 장기환자가 의식이 있을 때 의사 설명을 듣고 연명계획서를 작성하게 된다. 미리 이 서류를 작성한 뒤, 사망장소를 선택하고 가족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남길 수 있으며 가족·친지·친구와 화해할 수 있다.

연명의료결정제도는 2018년 2월 시행돼 지난해 말 기준으로 26만명이 존엄사를 택하고 세상을 떴다. 건강할 때 미리 사전의료의향서를 작성한 사람이 157만명에 달할 정도로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하지만 연명의료 중단을 이행한 사람의 83%가 임종 상황에 닥쳐서 가족이 결정했다. 상당수 환자가 연명의료계획서에 서명한 날에 의사가 연명의료 중단 이행서를 작성한다. 이런 ‘벼락치기 존엄사’는 진정한 웰다잉과는 거리가 멀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중앙일보 4월 3, 4일자 1, 4, 5면〉

국생위는 권고문에서 “연명의료계획서 작성은 환자가 병 상태와 예후 등을 알고 (연명의료 중단 관련) 명시적인 결정을 하는 것으로, 말기 환자와 같은 의학적 진단과는 무관하다”며 “환자가 의사결정 능력이 있을 때, 적절한 시기에 의사와 함께 작성하도록 법을 개정하되 의사 교육이나 설명 의무 확대 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국생위는 존엄사 사각지대로 방치된 요양병원의 문제점 개선도 권고했다. 연명의료 중단(유보)을 이행하려면 의료기관윤리위원회(이하 윤리위)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지난해 말 기준 전국 1433곳의 요양병원 중 105곳만 있다. 그래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한 사람이 요양병원에 입원했다가 임종 상황이 되면 큰 병원 응급실로 실려 간다. 국생위는 “윤리위 설치를 지원하거나 공용윤리위 활성화를 도와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생위는 또 “가족이 없는 무연고자를 대신해 윤리위나 공용윤리위 등에서 연명의료 중단 등을 결정하도록 법적 장치를 마련하라”고 권고했다. 국생위는 또 생애 말기 돌봄 유형 다양화와 장단기 서비스 향상 계획 수립을 요구했다.

국생위는 국회에 입법 발의된 의사조력자살과 관련, “죽음의 시기에 영향을 미치는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거나 관련 법률을 제정·개정하려면 충분한 토론과 숙고를 거치고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부정적인 의견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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