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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세컷칼럼

한국 중산층, 안녕하십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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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렬 기자 중앙일보 수석논설위원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중산층 비중은 약 60%다. 국민 10명 중 6명이다. 통계청에서 ‘중위소득(국민 소득을 일직선으로 세웠을 때 가장 중간에 오는 값)의 50~150%’를 중산층으로 간주하는 데 따른 것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2021년 처분가능소득(근로ㆍ사업소득에 정부에서 받는 연금ㆍ지원금 등을 합한 것) 기준으로 이 구간에 해당하는 중산층은 61.1%다. 국제 비교에서도 손색이 없는 수치다. 그해 4인가구 중위소득이 월 529만원이니 대략 월 소득 265만~794만원이 중산층이 되는 셈이다.

 그러나 고개를 갸웃하는 이도 적지 않다. 가구 총소득이 최저임금(2021년 월 182만원)보다 다소 많을 뿐인데 중산층으로 잡는 것은 무리라는 것이다. 통상적으론 경제적으로 여유 있고 안정된 상태가 돼야 중산층이라고 여긴다. ‘60%가 중산층’이란 통계는 이런 대중 심리와 상당한 괴리가 있다. 지난해 9월 NH투자증권 중산층 보고서에 따르면 중산층 응답자의 45.6%가 자신은 하위층이라고 답해 2020년의 40.5%보다 높아졌다(조사에선 경제협력개발기구 중산층 기준인 중위소득 75~200%를 적용).

통계상 중산층 61%, 현실과 괴리
부동산·금리 영향 부채 계속 늘어
정부는 민생 일으킬 방안 찾아야

 거시지표가 외환위기 이후 최악으로 나빠진 가운데 한국의 중산층도 어려운 시기를 지나고 있다. 무엇보다 한국 경제가 빚에 짓눌려 있다. 우리 국민의 가계부채는 지난해 말 1867조원. 2017년 말 1451조원보다 400조원 늘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한국 가계는 지난해 2분기 기준 원리금 상환에 소득의 13.4%를 썼다. 중산층도 예외가 아니다. 2022년 소득 4분위(상위 20~40%) 가구당 부채가 1억1320만원, 소득 3분위(상위 40~60%) 부채가 7657만원이다(통계청 가계금융복지조사). 부동산 폭등과 증시ㆍ암호화폐 열풍에 무리하게 차입한 돈이 그대로 빚으로 남았다. 그 뒤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이자까지 늘었다.

 중산층의 한 축인 자영업자도 빚 때문에 무너져 내리고 있다. 자영업자 대출은 지난해 말 1020조원에 육박했다. 다중채무자 173만 명은 1인당 평균 4억원 이상 빚을 지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코로나 거리두기가 자영업의 숨통을 조였다. 금융권 상환 유예도 9월이면 끝난다. 자영업자 상당수는 빚 시한폭탄 위에 앉아 있다.

 과도한 빚은 경제성장과 상극이다. 원리금 상환에 따른 지출 여력이 줄어들어 내수가 부진해지고 경기 악화→소득 위축의 악순환을 부른다. 빚을 갚으려면 경제가 성장해 소득이 늘어야 하는데 빚이 성장을 가로막는 것이다. 또 다른 성장 엔진인 수출도 7개월째 줄었다.

 한국 경제는 ‘저성장 덫’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올해 IMF의 한국 성장률 전망치는 1.5%, 세계 경제 전망치(2.8%)와 1%포인트 이상 벌어졌다. 2011년 이래 한국의 성장 성적이 세계 경제에 못 미치는 흐름이 고착화하고 있다. 한국이 글로벌 경제 성장의 과실을 누리지 못하는 갈라파고스 경제가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사실 1%대 성장으로는 위기의 중산층을 구하기 어렵다. 저성장 탈출이 중산층 강화의 일차 해법이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에서는 이렇다 할 성장 전략이 작동하지 않고 있다. 전통적 경기 진작책인 재정과 통화 확대는 손발이 묶여있다. 국가채무가 400조원이나 늘어난 탓에 재정을 쓰기도 어렵고, 물가 때문에 금리 인하도 여의치 않다. 그렇다면 구조개혁으로 경제에 생동감을 불어넣어야 하는데, 이마저도 지지부진하다.

 역대 정부는 성장 말고도 중산층을 두껍게 하는 방안을 찾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중산층이야말로 사회를 건강하게 떠받치는 중추 세력이기 때문이다. 국민연금, 우리사주조합, 재형저축, 신도시 건설, 정년 연장 등이 그런 결과물이었다. 윤 대통령 지지율이 30%대에 갇혀 있는 것은 고단한 중산층의 실망감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정부가 답을 내놓을 차례다.

글=이상렬 논설위원  그림=김아영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