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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성적자' 그리스병 고쳤다…경제성장 이끈 집권당 총선 압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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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유럽의 문제아' 그리스에서 강도 높은 구조개혁을 통해 경제 성장을 이끌어낸 집권 신민주주의당(ND·신민당)이 지난 21일(현지시간) 치러진 총선에서 압도적인 민심의 선택을 받았다.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55) 총리가 이끄는 중도 우파 성향의 신민당은 이례적인 득표율 상승 속에 제1야당인 급진 좌파연합(시리자)을 두배 이상 따돌리며 압승했다. 2012년 국가 부도 사태로 신용 등급이 최하위로 추락했던 그리스는 지난해 경제성장률(5.9%)이 유로존 평균(3.5%)을 크게 웃도는 등 놀라운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그리스 총리 겸 신민당 대표가 그리스 아테네에서 연설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그리스 총리 겸 신민당 대표가 그리스 아테네에서 연설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집권당, 2019 총선보다 득표율↑

그리스 내무부에 따르면 이날 개표가 99.59% 진행된 가운데 40.79%를 득표한 신민당이 전체 의석 300석 가운데 146석을 확보했다. 단독 정부 구성이 가능한 과반(151석)에는 5석 못 미친다. 알렉시스 치프라스 전 총리가 이끄는 시리자(20.07%)는 71석에 그쳤다. 중도 좌파인 범그리스사회주의운동(PASOK·파속)이 11.46%(41석)를 차지했고, 소수당인 그리스공산당(7.23%, 26석)과 그리스해법(4.45%, 16석) 등이 뒤를 이었다. 투표율은 60.92%로, 2019년 총선(57.78%)을 웃돌았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간 여론조사에선 양당간 득표율 격차가 6~7%포인트(P)로 추정됐는데, 실제 선거에서 20%P 이상 벌어지자 현지 매체는 "신민당의 압승"이라 평가했다. 특히 신민당은 지난 2019년 총선(39.85%)보다 득표율이 올랐다. 디미트리스 파파디미트리우 영국 맨체스터대 교수는 "지난 40년 동안 그리스의 어떤 여당도 이전 선거보다 높은 득표율을 기록한 적이 없다"면서 "(신민당 득표율은) 1974년 그리스가 민주주의로 전환한 뒤 현 정부가 거둔 최고의 선거 성과"라고 설명했다.

예상 밖 대승에 미초타키스 총리는 “정치적 지진”이라며 환호했다. 그는 승리 연설에서 "희망이 비관론을 이겼고, 단결이 분열을 이겼다"고 말했다. 이어 "그리스 국민은 강력한 국가를 위해 개혁을 실행할 정부를 원하고 있으며, 우리는 독립적으로 강력하게 통치하라는 국민의 승인을 얻었다"고 강조했다. 연정을 구성하지 않고 2차 총선을 치러 단독 정부로 집권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그리스 총선에서 신민당이 승리하자 지지자들이 축하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그리스 총선에서 신민당이 승리하자 지지자들이 축하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그리스는 1차 총선에서 과반 득표한 정당이 없으면 연정을 통해 과반을 채워 집권하거나 2차 총선을 치러야 한다. 이전까진 최다 득표 정당에 50석을 추가로 몰아주는 제도를 운영해 손쉽게 과반을 확보해 집권하는 게 가능했지만 이번부터 바뀌었다. 1차로부터 40일 이내 치러지는 2차 총선에서 제1당이 되면 득표율에 따라 20~50석의 보너스 의석을 더 받을 수 있다. 2차 총선은 6월 25일 또는 7월 2일 치러질 예정이다. 신민당이 승리하면 미초타키스 총리의 임기는 4년 연장된다.

"유권자, 경제 성장 견인한 집권당 선택"

이번 총선 결과는 미초타키스 총리가 강도 높게 추진해온 ‘그리스병 고치기’에 민심이 호응한 것으로 풀이된다. 2019년 총선에서 시리자를 몰아내고 집권한 미초타키스 총리는 선거 기간 동안 자신을 "그리스의 최근 성장세를 이어갈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미국 하버드대를 졸업한 뒤 국제 컨설팅 회사인 매킨지의 컨설턴트로 일했던 그는 경제 성장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우며 무상의료, 연금 제도 등을 수술하는 등 강도 높은 구조 개혁을 펼쳤다.

이를 통해 만성 적자이던 그리스의 기초 재정 수지가 흑자로 돌아섰고 50%를 넘던 은행의 부실 대출 비율도 7%대로 떨어졌다. 2021년 그리스 수출은 2010년 대비 90% 늘었고, 외국인 직접투자는 20년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경제성장률은 2021년 8.4%에 이어,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지난해에도 5.9%를 기록했다. 정권 초기인 2020년 206%까지 치솟았던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은 지난해 171%로 떨어졌다.

선거 기간 동안 신민당은 지난 2월 57명이 사망한 그리스 사상 최악의 열차 충돌 사고와 지난해 국가정보국(EYP)의 니코스 아드룰라키스 파속 대표 및 언론인 휴대전화에 대한 도청 스캔들이란 초대형 악재에 발목이 잡혔다. 치프라스 전 총리가 이끄는 시리자는 이 같은 약점을 치열하게 파고 들었다.

하지만 "경제를 망친 치프라스가 재집권해선 안되기 때문에 미초타키스에 투표했다"는 40대 유권자의 BBC 인터뷰가 보여주듯 ‘경제를 망친 정부’의 그림자는 길었다. 그리스가 유럽연합(EU)과 구제 금융 줄다리기를 하던 2015년 역대 최연소 총리에 취임했던 치프라스는 유럽 채권단의 구제금융안을 국민투표로 거부하는 승부수를 띄웠지만 결국 채무불이행(디폴트) 상태에 빠져 채권단 요구를 수용해야 했다. 가디언은 "10년 전 국가 부도 상황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그리스인들이 신민당 집권기 민주주의 후퇴보다 경제적 성과에 주목했다"고 설명했다. 뉴욕타임스는 난민 유입에 대한 현 정부의 강경한 대처와 이번에 첫 투표한 44만명의 신규 유권자의 선택도 변수가 됐다고 전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이번 총선에서 시리자의 득표율은 2019년(31.53%)보다 11.5%P 줄었다. 치프라스 전 총리는 성명을 통해 "미초타키스 총리에게 축하 전화를 했다"면서도 "2차 총선이 거의 확실시되고 있기 때문에 당을 소집해 대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2월 그리스의 열사 참사를 규탄하는 전국 시위에서 경찰과 시위대가 충돌하는 가운데 불길이 치솟고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지난 2월 그리스의 열사 참사를 규탄하는 전국 시위에서 경찰과 시위대가 충돌하는 가운데 불길이 치솟고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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