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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읽는 삼국지](37) 흉마(凶馬)인 적로가 유비의 목숨을 구하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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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는 원소일가를 모두 쳐부수고 하북 지역을 완전히 장악했습니다. 이제 조조에게 대항할 군벌은 더 이상 없었습니다. 조조는 기쁨에 넘쳐 기주성에 머물렀습니다. 어느 날 밤, 금빛 광채가 나는 곳을 파보니 구리로 만든 참새(銅雀)가 나왔습니다. 조조가 어떤 징조인지 궁금해하자 순유가 알려줬습니다.

옛날 순임금의 어머니가 옥작(玉雀)이 품속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고 순임금을 낳았다고 합니다. 이제 승상께서 동작을 얻은 것 역시 상서로운 조짐입니다.

조조는 크게 기뻐하며 장수(漳水)가에 동작대(銅雀臺)를 짓도록 했습니다. 아들 조식이 동작대의 조감도를 건의했습니다.

여러 층의 누각을 세우시려면 반드시 세 채를 지어야 합니다. 가운데 있는 것을 가장 높게 지어 동작대라 하고 왼쪽에 있는 것을 옥룡대(玉龍臺), 오른쪽에 있는 것을 금봉대(金鳳臺)라고 하소서. 그리고 다시 두 개의 비교(飛橋)를 놓아 무지개처럼 하늘에 걸쳐 놓으면 천하의 장관이 될 것입니다.

내 아들 생각이 매우 훌륭하구나. 네 말대로 하리라. 뒷날 누대(樓臺)가 완성되면 내가 족히 노후를 즐기리라.

한편, 유비는 형주의 유표에게 의탁한 채 날마다 융숭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그러던 차에 항복했던 장수인 장무와 진손이 강하(江夏)를 노략질하며 모반을 꾀한다는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유비는 즉시 3만 명의 군사를 받아 이들을 진압하러 갔습니다. 조운이 장무를 창으로 찔러 죽이고 그가 타던 천리마를 포획해 왔습니다. 그사이에 장비가 진손을 죽였습니다.

창으로 장무를 죽이고 말을 끌고 가는 조운. [출처=예슝(葉雄) 화백]

창으로 장무를 죽이고 말을 끌고 가는 조운. [출처=예슝(葉雄) 화백]

유표는 아주 기뻤습니다. 전공을 축하하는 연회를 열었습니다. 유표는 동생 유비의 공을 치하하며 크게 의지하고자 했습니다. 유표의 처남인 채모가 그의 누이인 채부인에게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그날 밤 채부인이 유표에게 베갯밑공사를 했습니다.

제가 듣자니 형주의 많은 사람이 유비와 사귀고 있다 하더이다. 방비하지 않으면 아니 되겠나이다. 이제 그를 성안에 살게 해선 좋을 것이 없으니 다른 곳으로 보내는 게 좋겠나이다.

유비는 어진 사람이오.

남들도 자기 마음 같은 줄 아시나이까?

다음 날, 유표는 유비가 장무에게서 빼앗은 명마를 받고 매우 기뻤습니다. 유표의 수하인 괴월이 보니 적로마(的盧馬)였습니다. 괴월은 유표에게 주인을 해치는 말이니 타지 말라고 주문합니다. 이튿날, 유표는 유비를 청해 연회를 베풀고 다시 말을 돌려줬습니다. 그리고 유비에게 말을 신야(新野)로 가져가 군사훈련에 쓰라고 했습니다. 유비는 군마를 이끌고 신야로 출발했습니다. 형주의 막빈(幕賓)으로 있는 이적이 유비를 만났습니다. 괴월이 유표에게 한 말을 전달하며 적로를 타지 말 것을 요청했습니다.

선생이 걱정해 주시니 깊이 감사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은 명에 달린 일인데 어찌 말이 해롭게 할 수 있겠소이까?

유비는 신야에서 군사를 훈련하며 편안한 한 때를 보냈습니다. 이때 감부인이 아들 유선을 낳았습니다. 감부인은 북두칠성을 삼키는 태몽을 꾸고는 아기 이름을 아두(阿斗)라고 했습니다.

아두의 친모인 감부인. [출처=예슝(葉雄) 화백]

아두의 친모인 감부인. [출처=예슝(葉雄) 화백]

유표는 종종 유비를 불러 주연(酒宴)을 베풀었습니다. 근심거리가 있는 게 역력했습니다. 몇 번을 망설인 끝에 유비에게 털어놓았습니다.

전처 진씨가 낳은 큰아들 기는 비록 어질긴 하나 나약해 큰일을 하기엔 부족하고, 후처 채씨가 낳은 작은아들 종은 꽤 총명한 편이오. 내 장자를 폐하고 작은아들을 후사(後嗣)로 정할까 생각하니 예법에 저촉될 듯싶고, 그렇다고 장자를 세우자니 채씨 일족이 군사를 모두 장악하고 있어 훗날 반드시 난리가 날 것 같으니 어쩌면 좋소?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어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소.

유비는 장자 원칙을 주장했습니다. 채씨들의 권력은 관직을 떼어버리면 된다고 조언했습니다. 유비가 허벅지에 붙은 살을 보며 비육지탄(髀肉之嘆)에 빠지자 유표는 전날 청매정에서 조조와 나눈 영웅론에 대해 말했습니다. 그러자 유비가 술김에 한 마디 던졌습니다.

저에게 만일 의지할 터전이 있다면 천하의 녹록한 무리쯤이야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유표는 유비의 말에 기분이 매우 언짢았습니다. 병풍 뒤에 숨어서 모두 엿들은 채부인이 후환을 없애기 위해서라도 지금 유비를 제거하자고 했습니다. 유표는 말이 없었습니다. 채부인은 채모와 상의해 역관에 묵고 있는 유비를 없애기로 했습니다. 이적이 이 사실을 알려 유비는 작별인사도 없이 신야로 줄행랑을 쳤습니다. 채모가 군사를 이끌고 왔을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채모는 유비가 역관 벽에 반역시를 써놓고 도망쳤다고 유표에게 보고했습니다. 그가 쓴 반역시는 이러했습니다.

해마다 쓸데없는 고생만 하며 數年徒守困
허망하게 묵은 산천만 쳐다보누나. 空對舊山川
용이 어찌 연못에만 있어야하는가 龍豈池中物
우레 타고 하늘로 오르고 싶도다. 乘雷欲上天

화가 난 유표는 유비를 죽이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러다가 유비가 한 번도 시를 짓는 것을 본 적이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이러한 생각에 이르자 유표는 즉시 시를 지워버렸습니다. 모종강은 이 부분에서 원소와 유표의 성품을 비교했습니다.

‘원소는 후처를 사랑했고 유표 역시 후처를 사랑했다. 원소는 작은 아들을 사랑했고 유표 역시 작은 아들을 사랑했다. 원소는 우유부단했고 유표 역시 우유부단했다. 두 사람의 성정이 어쩌면 그렇게 같은지 모를 일이다. 하나는 명가의 자제임을 자부하며 잘난 체하지만 쓸모가 없고, 하나는 헛된 명성을 스스로 사랑하며 우아한 체하지만 쓸 데가 없다. 비록 삼공(三公)의 자손이고 팔준(八俊)으로 명성이 높다한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 그러나 유표가 원소보다 나은 면은 있다. 원소는 봉기의 참소를 믿고 전풍을 죽였지만, 유표는 채모의 참소를 듣고서도 유비를 죽이지 않았다. 결국 명성이 높은 사람이 권문세가보다 나은 셈이다.’

채모는 일이 실패하자 다시 계략을 세웠습니다. 형주의 각 고을 관장들을 양양으로 초청해 연회를 베풀다가 유비를 죽이기로 했습니다. 유표는 건강이 안 좋아 유비와 두 아들에게 그 일을 맡겼습니다.

유비는 의심받기 싫어 조운과 함께 양양으로 갔습니다. 채모는 괴월과 함께 논의해 단계(丹溪)가 있는 서쪽을 빼고 삼면에 군사를 매복시켰습니다. 이번에도 이적이 이 사실을 알고 유비에게 알렸습니다. 유비는 적로를 타고 서쪽으로 달렸습니다. 채모가 군사를 이끌고 쫓아왔습니다. 유비는 난감했습니다. 적로를 채찍질하며 힘차게 도약했습니다. 적로는 무사히 단계를 건넜습니다. 흉마(凶馬)라는 적로가 주인을 살렸으니 유비의 마음 씀에 적로도 보답한 것일까요. 유비는 적로가 너무도 고마웠습니다.

표의 부하장수인 채모. [출처=예슝(葉雄) 화백]

표의 부하장수인 채모. [출처=예슝(葉雄) 화백]

모종강은 양양에서의 연회를 이렇게 평했습니다.

‘범증은 유방을 죽이려 했지만 항우는 차마 못했고, 채모는 유비를 죽이려 했지만 유표는 차마 못했다. 홍문(鴻門)의 연회석상에는 항우가 있었기 때문에 범증이 명령할 수 없었지만, 양양의 연회에는 유표가 없었으니 채모가 명령할 수 있었다. 양양의 모임이 홍문의 모임보다 훨씬 더 위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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