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책·TV 등 매체를 불문하고 범죄수사를 소재로 하는 경우 냉철하고 논리적으로 추리하는 이가 나오기 마련이죠. 과학수사를 바탕으로 범인의 행동 특성 및 성격적 특성을 추론하는 것을 프로파일링이라고 하는데요. 프로파일링 전문가, 프로파일러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소중 학생기자단이 경기도 수원시에 있는 표창원범죄과학연구소를 찾았습니다. 대한민국 1세대 프로파일러로 꼽히는 표창원 소장은 최근 “어린이들에게 정의의 소중함을 알려 주고 싶다”며 프로파일링 추리동화 『이웃집 프로파일러 하이다의 사건파일』을 펴내기도 했죠.
“현장 수사는 정시에 시작합니다. 오전 10시, 지금부터 여러분은 수사요원이에요.” 표 소장의 한마디에 김태연 학생모델과 명운서·박주영·손서영·오윤서 학생기자는 신입 프로파일러로 변신했어요. 3가지 퀴즈를 통해 과학과 논리의 힘을 가지고 수사를 하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다섯 명의 프로파일러는 먼저 현장수사 CSI(Crime Scene Investigation) 수칙을 익혔어요. CSI란 법과학을 통해 범죄수사를 하는 겁니다.
“사건이 벌어진 현장에는 아주 작은 것부터 다양한 것들이 남아 있죠. 여러분이 수색·발견한 것 중 어떤 것을 증거라고 할지 잘 파악해야 해요. 사진을 찍는 것도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현장이 훼손되거나 증거가 없어질 수 있어서죠.” 소중 프로파일러들은 일반 사진과 다른 법 사진 촬영법도 배웠어요. 현실과 다르게 왜곡되는 보정 앱은 사용하면 안 되고, 각종 사물의 위치·크기 등이 있는 그대로 나오게 수평을 맞추고 각도를 잘 잡아야 하죠. 전체 사진, 중간 사진, 자세한 근접 사진의 3장을 찍는 건 기본입니다. 증거물의 크기를 파악하기 위해 자·줄자 등도 사용하고요.
카메라가 못 잡아내는 느낌은 스케치로 보충합니다. 표 소장은 “미술가처럼 잘 그릴 필요는 없다”며 “내가 주목하는 것이나 의미 있는 것을 정확하게 그리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죠. 또 사진에는 방위 표시를 바로 할 수 없지만, 그림의 경우 먼저 나침반 앱 등으로 북쪽을 확인하고 정확한 방위에 맞춰 그릴 수 있죠.
오늘 맡은 사건에 대해 표 소장의 브리핑을 들은 후, 소중 프로파일러들은 이승아 실장의 도움을 받아 주머니가 여럿 달린 조끼와 비닐 모자·장갑·덧신을 착용했어요. 등에 CSI 과학수사대라 적힌 조끼는 수사원의 자격을 표시하는 동시에 각종 도구를 주머니에 수납해 양손을 자유롭게 쓰게끔 하죠. 비닐 모자·장갑·덧신은 현장에 머리카락이 떨어지거나, 지문·발자국을 남겨 혼란이 생기지 않도록 합니다. 복장을 점검한 후엔 핀셋과 증거물을 담을 봉투를 받았어요. 증거수집봉투에 증거물을 담은 뒤엔 수집한 사람의 이름·소속·날짜와 함께 분까지 정확하게 시간을 적어야 합니다. 때로 증거물이 사라지거나 바꿔치기 될 수 있기 때문이에요.
누가 사진을 찍을 건지, 증거물의 크기를 자로 잴지, 증거로 지목해 번호판으로 표시할지 등 역할을 분담한 뒤 사건 현장으로 향했습니다. 가는 길이 약간 어두워 손전등으로 강하게 빛을 비추자 발자국이 나타났어요. 첫 증거 발견에 흥분한 소중 프로파일러에게 표민경 연구원이 투명한 통행판을 건넸죠. “발자국 하나는 족흔, 줄지어 남아있는 건 족적이라고 해요. 증거가 될 수 있는 족적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그 위에 통행판을 설치한 뒤 현장으로 가볼까요.”
조심스레 통행판을 놓으며 마침내 도착한 현장은 어지러운 모습이었습니다. 시신과 핏자국, 여기저기 흩어진 물건 등을 조심스럽게 피해 들어갔죠. 면봉으로 혈흔의 피를 채취하고, 다양한 각도로 사진을 찍으며 시신의 상태를 관찰하고, 여러 물건 중 어느 것이 증거로 적합한지 파악하느라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갔습니다. 또 UV라이트를 비춰 맨눈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도 발견했죠.
각자 여러 증거물을 수집한 뒤엔 실험을 통해 과학적으로 증거 채택이 가능할지 살펴봤습니다. 표 연구원이 시험관이 놓인 암실로 안내했죠. “각각의 시험관에는 루미놀 시약이 담겼어요. 사건 현장에서 채취한 피가 묻은 면봉을 담그면 어느 쪽 혈흔이 진짜 피인지 알 수 있죠.” 표 소장의 설명에 따라 실험하니 시험관 중 하나가 형광으로 빛나기 시작했어요. 어느 곳에서 채취한 피가 증거가 될 수 있는지 알아낸 소중 프로파일러들은 다음으로 지문 채취 실험에 나섰습니다.
지문은 손가락 끝 마디에 있는 곡선으로 이루어진 무늬예요. 사람마다 다 다른 모양이고, 작은 상처가 생겨도 새로운 세포가 전과 같은 구조로 자라나죠. “땀샘·피지선 등에서 분비된 물질에 의해 남은 지문을 채취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인데, 이 컵처럼 매끄러운 곳에는 미세한 가루(분말)를 사용합니다.” 마그네틱 지문 채취 키트를 사용해 컵에 남아있을 것으로 추정한 지문을 찾는 데 성공했어요.
법과학 실험을 통해 증거능력을 파악한 소중 프로파일러들은 현장출동 보고서를 살펴보고 각자 현장을 분석한 내용과 증거 등을 토대로 프로파일링을 시작했죠. 시체에 남은 상처에 따른 사망 원인부터, 혈흔 위치와 닦아낸 흔적이 뭘 뜻하는지, 열린 금고와 흩어진 지폐의 의미는 뭔지, 휴대전화는 왜 부서졌는지 등 열띤 논의를 벌이며 수사파일을 채워나갔습니다. 체험을 통해 프로파일러에 대해 감을 잡은 소중 학생기자단은 표 소장을 인터뷰하며 남은 궁금증을 풀었죠.
손서영: 프로파일링과 탐정이 하는 일, 과학수사는 뭐가 다른가요.
탐정은 일반적으로 경찰이 아닌 조사하는 사람을 말하긴 하지만 공식 명칭은 아니에요. 프로파일링은 과학수사, 즉 CSI로 확인한 내용을 가지고 범인의 행동 및 성격적 특성을 추론하기에 크게 과학수사의 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죠. 보통 경찰의 의뢰로 현장 분석할 게 많은 강력사건을 주로 다루며, 과학수사대가 현장 분석한 내용·증거를 기반으로 프로파일러가 객관적·논리적으로 추리·추론하면 이걸 가지고 추가 수사하는 식으로 협력합니다.
명운서: 프로파일링이 가장 발달한 나라는 어디고, 우리나라에는 프로파일러가 몇 명이나 있나요.
미국·영국·캐나다 정도를 꼽을 수 있어요. 우리나라에는 경찰청 내 40여 명 정도 있고, 소수의 민간 프로파일러가 있습니다.
김태연: 왜 프로파일러라는 직업을 선택하고, 어떤 과정을 거쳐 프로파일러가 되셨는지요.
어릴 때 셜록 홈스가 꿈이었어요. 그래서 경찰대학교를 졸업하고 일선 형사로 일했죠. 그러다 화성연쇄살인 등 미제 사건 해결법에 대해 고민하게 됐죠. 아주 오래된 사건도 기록·증거 등이 제대로 남아있어 특성 확인이 가능하다면 프로파일링을 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사건을 해결할 수 있거든요. 그래서 영국으로 유학을 가서 공부하고 프로파일러가 됐습니다.
오윤서: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첫 단추는 보통 어떻게 찾나요. 거짓말 탐지기도 쓰는지, 가장 많이 쓰는 기술은 뭔지 궁금해요.
‘모든 접촉은 흔적을 남긴다’는 말이 있죠. 오늘 여러분이 체험한 지문 채취, 족흔·족적 채취, 혈흔 채취 등 범죄자가 남긴 흔적을 통한 증거 확보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기술 중 하나예요. 거짓말 탐지기는 조금 다른 영역인데, 마지막 단계에서 용의자를 확정해 검거 후 진실 여부를 가릴 때 사용하죠.
명운서: 범죄자를 만나거나 살인 현장도 가고, 범인이 감옥에서 나온 후 해코지를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데 무섭지는 않나요.
처음 훈련받을 땐 무서울 수도 있는데, 실제 수사 중엔 무서울 틈이 없어요. 범죄자를 찾아 검거할 생각뿐이죠. 범인이 수사관을 찾아올 우려는 있지만 실제로는 가능성이 높지 않아요. 보통 범죄자는 다시 잡히지 않고 범죄를 저지를 생각이 더 크거든요.
박주영: 프로파일러 직업병이 있을까요. 예를 들면 일상에서도 의심하고 분석하나요.
모든 것을 쉽게 믿지 않고 하나하나 따져보고 행동하는 편이에요. 저는 주식 투자 같은 것도 하지 않습니다.
김태연: 프로파일러로서 가장 보람찼던 순간을 알려주세요.
사건을 해결해 피해자로부터 고맙다는 인사를 받을 때입니다.
박주영: 앞으로 발달하길 바라는 프로파일링 관련 기술이 있다면요.
데이터 분석을 통해 과거 수많은 사건을 정확히 분석하고 머신러닝·AI 등을 통해 현재 사건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게 되면 좋겠습니다.
손서영: 프로파일러가 되기 위해 가져야 할 자질은 뭘까요. 경찰 외 일반인도 프로파일러가 될 수 있나요.
논리력·추리력을 갖추고 과학의 힘을 잘 활용하는 거예요. 어떤 압력이나 유혹, 편견에 휘둘리지 않는 객관적·중립적인 태도를 갖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프로파일러가 되는 가장 쉬운 방법은 경찰이 되는 거지만 민간 프로파일러도 있긴 해요. 법과학·범죄수사심리학 등을 전공하면 되는데 아직 국내 대학교 학부엔 없어서 유학을 가야 하죠.
오윤서: 소년중앙 독자 또래 학생들에게 프로파일러라는 직업을 추천하실 수 있나요.
프로파일링은 힘들고 어렵고 많은 고민이 뒤따르지만 진실을 발견하고 정의를 구현하기에 직업 만족도가 높아요. 약자와 사회를 일한다는 뿌듯함도 있죠. 그래서 미래 과학수사요원을 꿈꾸는 어린이들을 위해 『이웃집 프로파일러 하이다의 사건파일』 같은 책도 기획하고, 요원 양성을 위한 범죄과학연구소도 세운 거예요. 앞으로 수사 기법 발전에도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소중 학생기자단 취재 후기
전부터 사건 수사에 관심이 있어 이번 취재에 참여했어요. 혈액 확인, 지문 채취, 범죄현장의 단서 수집과 추리 등 이렇게 과학적인 방법으로 수사한다는 것이 신기했죠. TV에서 보던 프로파일러 표창원 소장님을 만난 것도 좋았습니다. 소장님을 인터뷰하며 프로파일러에 대해 궁금했던 점을 알 수 있었던 알찬 취재였어요.
-김태연(인천 진산초 4) 학생모델
표창원 소장님과 함께 사건 현장을 분석하고, 인터뷰하는 취재라 무척 기대했고, 실제로도 유익하고 흥미로웠습니다. 여러 분석 실험 중에서 진짜 피와 가짜 피를 구별하는 루미놀 시약 실험이 가장 신기했죠. 표 소장님이 “우리의 피 속에 있는 헤모글로빈이 루미놀 시약과 만나면 형광으로 빛이 나요”라고 말씀하셨고, 실제로 피를 묻힌 면봉을 루미놀 시약에 넣자 형광빛이 났죠. 예전에 루미놀 시약과 헤모글로빈의 반응 동영상을 본 적 있는데, 실험을 통해 직접 확인하니까 영상보다 더 신기했어요.
-명운서(서울 구암초 5) 학생기자
좋아하는 추리소설과 관련 있는 프로파일러란 직업에 대해 취재하게 돼 기대가 컸어요. 표창원범죄과학연구소에서 현장수사 실습, 루미놀 혈흔 법과학 실험, 지문채취 실습 등을 하면서 제가 진짜 프로파일러가 된 것 같았죠. 특히 루미놀 혈흔 실험이 인상 깊었는데 혈액 속 헤모글로빈과 루미놀 용액이 만났을 때 형광빛을 띄는 걸 보니 신기했죠. 이번 기사를 통해 소중 독자들도 프로파일러라는 직업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박주영(서울 동북초 6) 학생기자
프로파일러라는 직업이 어렵게 느껴져 궁금한 점이 많았어요. 표창원 소장님을 뵙게 돼 떨리기도 했죠. 이번 취재는 사건 현장에서 프로파일링을 해 보고, 인터뷰로 궁금증을 해결한 소중한 경험이었어요. 프로파일링 교육 중 살인사건 현장에도 들어갔는데 꾸며진 상황이지만 좀 무서워서 얼른 나가고 싶기도 했죠. 그래도 컵에서 지문을 채취하고, 증거물을 수집하고, 진짜와 가짜 피를 구분하는 실험한 건 재미있고 신기했어요. 현장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유리판을 바닥에 깔고, 아주 작은 증거도 놓치지 않기 위해 신중하게 행동한 것도 인상적이었죠. 범인을 잡는 과정에 꼭 필요한 프로파일러가 되려면 용기와 관찰력, 신중함과 논리력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답니다.
-손서영(서울 연가초 5) 학생기자
이번 취재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지문 채취였습니다. 마그네틱 키트로 지문을 채취하는 과정이 신기하고 재미있었죠. 사람마다 지문이 달라 범죄자를 잡을 때 유용하다고 합니다. 취재 전에 사전조사를 해서 표창원 소장님의 설명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어요. 표 소장님은 사건을 끝내고 감사하다는 이야길 들을 때 가장 뿌듯하다고 하셨습니다. 프로파일러는 힘들지만 한편으론 뿌듯한 직업 같아요.
-오윤서(서울 원명초 6) 학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