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할 땐 찾더니, 이젠 사형선고"…원격진료 스타트업 거센 반발 [팩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비대면 진료 이미지. 프리픽

비대면 진료 이미지. 프리픽

보건복지부가 지난 17일 발표한 비대면(원격) 진료 시범사업 가이드라인을 두고 스타트업계가 크게 반발하고 있다. 현재 초진부터 가능한 비대면 진료 범위가 다음 달 1일부터는 원칙적으로 ‘재진 환자’로 대폭 축소되기 때문이다.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원격의료산업협의회(원산협)는 19일 성명을 내고 정부 발표에 대해 “실제 비대면 진료의 전달체계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비대면 진료에 대한 사형선고“라고 주장했다. 국회에선 법제화가 지연되고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부는 갈팡질팡하면서 스타트업 생존과 환자 편의가 모두 무시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무슨 일이야

감염병예방법에 따라 그동안 비대면 진료는 코로나19 위기 경보 ‘심각’시에만 한시 허용됐다. 그런데 다음 달부터 이 경보가 ‘경계’로 하향돼 비대면 진료의 법적 근거가 사라진다. 이에 복지부가 시범 사업으로 이어가겠다며 가이드라인을 내놨다.

‘비대면 초진 허용 여부’는 의료계와 플랫폼 업계의 입장이 가장 첨예하게 갈리는 쟁점이었다. 복지부는 시범 사업에서 재진부터 비대면 진료를 허용해, 사실상 의료계 손을 들어준 모양새다. 예외적으로 장기요양 등급이 있는 65세 이상 고령자나 장애인 등 외출이 어려운 환자, 코로나19 등 감염병 환자 등은 초진부터 허용된다.

 장지호 원격의료산업협의회 공동회장이 지난 3월 서울 여의도 스위치22에서 열린 보편적 의료체계 촉구 원격의료산업협의회 성명 발표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장지호 원격의료산업협의회 공동회장이 지난 3월 서울 여의도 스위치22에서 열린 보편적 의료체계 촉구 원격의료산업협의회 성명 발표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발표 당일 복지부는 소아과 초진 비대면 허용을 두고 입장을 번복해 논란이 됐다. 당초 가이드라인에선 ‘심야(평일 오후 6시~다음날 오전 9시), 휴일 시간대 소아 환자’를 비대면 진료 대상에 포함했다. 그러나 발표 후 여당인 국민의힘과 당정협의회를 갖고 나서는 소아 환자 초진에 대해 “정해진 바가 없다. 추후 보완하겠다”며 2시간 만에 입장을 바꿨다. 복지부 관계자는 “의약계와 산업계 입장을 반영해 보완할 것”이라고 말했다. 복지부는 이달 말까지 가이드라인을 확정해 다음 달 1일부터 시범사업을 시행하고 8월 31일까지 계도 기간을 둘 예정이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왜 중요해

논란의 비대면 진료를 제도화하는 과정에서 정부의 역할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비대면 진료가 한시 허용되자 지난 3년여간 1379만 명의 이용자(환자)가 비대면 진료를 경험했다. 모바일 앱 등을 통해 의사와 환자를 연결한 플랫폼을 통해서였다.

그러나 의료계 대표 직역 단체들은 비대면 진료를 초진부터 허용하는 안에 반대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대한치과의사협회·대한약사회는 19일 공동입장문을 내고 “비대면 진료는 대면 진료의 보조적 수단으로 사용돼야 한다”며 “소아·청소년은 특성상 대면 진료를 해야 하고 병원급 비대면 진료도 허용돼선 안 된다”고 말했다. 복지부가 갈등을 조정하고 의료서비스 질도 높일 수 있을지, 시험대에 올랐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 더 불편해지는 비대면 진료: 비대면 진료 플랫폼 30여 곳은 2020년 2월 이후 생긴 스타트업들이다. 이 시장 1위인 닥터나우 관계자는 “가이드라인대로라면 환자 입장에선 비대면 진료받기가 너무 불편해져서 플랫폼들이 자연스럽게 고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복지부는 비대면 진료가 가능한 ‘재진 환자’를 ‘최근 30일 이내, 동일 병원에서, 동일 질환으로, 1회 이상 대면 진료를 받은 이력이 있는 환자’(고혈압·당뇨 등 11개 만성질환자는 1년 이내)로 제한했다. 이를테면, 감기 증상이라도 초진 이후 30일이 지났거나 감기 아닌 독감이면, 초진 환자로 분류된다. 재진 기준에 해당되더라도 환자가 초진 영수증 등을 구비해 재진 환자라는 사실을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 플랫폼 기업들엔 환자의 재진 여부를 확인할 의료 데이터가 없기 때문이다. 또 환자가 최초 진료를 받았던 의원이 비대면 진료를 제공하지 않을 수도 있다.

팬데믹 이후 정부가 비대면 진료 서비스를 한시적으로 허용하면서 다양한 비대면 진료 앱들이 출시됐다. 왼쪽부터 올라케어, 굿닥, 메디르. 각자 다른 서비스 특징을 내세워 이용자를 모으는 중이다. [각 사]

팬데믹 이후 정부가 비대면 진료 서비스를 한시적으로 허용하면서 다양한 비대면 진료 앱들이 출시됐다. 왼쪽부터 올라케어, 굿닥, 메디르. 각자 다른 서비스 특징을 내세워 이용자를 모으는 중이다. [각 사]


◦ 플랫폼 없이 비대면 진료 가능한가: 이번 가이드라인 마련 과정에서 복지부는 의료계와 주로 소통했다. 지난 2월 대한의사협회 등이 참여한 의료현안협의체에서 복지부는 ‘대면 진료를 원칙으로 하되 비대면 진료를 보조적으로 활용한다’고 협의했다. 플랫폼 업계나 소비자 목소리가 반영될 기회는 없었다고 한다. 원산협 관계자는 “코로나19 확진자가 폭증할 때 정부와 일선 보건소를 대신해 환자에게 비대면 진료를 연결하고, 재택 치료자에게 무상으로 약을 전달한 건 비대면 진료 스타트업들이었다”며 “이제 코로나 위기가 끝났으니 내팽개치는 것이냐”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가 비대면 진료를 제한적으로라도 이어가려면 플랫폼들과 협업은 필수다. 올해 1월까지 3년간 하루 평균 5166건의 진료가 모바일 앱 등을 통해 이뤄졌다. 스타트업계 관계자는 “3년간 노하우를 축적한 플랫폼들이 고사해버린다면, 향후 비대면 진료가 다시 필요할 때 환자들이 불편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시민들도 목소리를 내고 있다.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이 지난달 실시했던 ‘비대면 진료 허용’을 위한 서명운동에는 열흘 만에 누적 11만 명이 참여했다.

◦ 가이드라인, 법제화 바로미터: 이번 복지부 가이드라인에 플랫폼 기업들이 더 민감한 이유는 향후 관련 입법 시 기준이 될 수 있어서다. 현재 국회에는 재진만 허용하는 법안이 4건, 초진까지 허용하는 법안이 1건 계류 중이다. 비대면 진료 법제화는 현 정부의 국정 과제이지만 여당은 의·약사단체 반대를 의식해 소극적이고, 야당도 적극 나서지 않으면서 지지부진한 상태다. 정부의 가이드라인이 절충안으로 역할 할 가능성이 큰 것.

17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 당·정 협의회. 연합뉴스

17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 당·정 협의회. 연합뉴스

더 알아둘 것, 금지된 ‘약 배송’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비대면 진료를 받은 후에도 약은 약국에 방문해서 받아가야 한다. 대리인의 대리 수령은 허용된다. 하지만 플랫폼 등을 통한 약 배송은 안 된다. 복지부는 17일 오후 발표 초안에서 노인과 장애인, 감염병 확진자, 섬·벽지, 희귀 질환자 등은 의약품을 ‘재택 수령’, 즉 배달받을 수 있다고 발표했으나 당정 협의 이후 2시간 만에 해당 내용을 뺐다. 복지부는 “거동 불편자나 섬·벽지 환자 등에 대한 재택 수령(배송)은 추후 협의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약업계 반대를 의식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한약사회는 지난 14일 ‘비대면 시범사업 저지 결의대회’를 열고 시범사업 자체를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플랫폼 업계는 “비대면 진료 후 약국에 방문해야 해 앞뒤 어긋난 정책”이라고 주장한다.

모든 약사들이 약 배송에 반대하는 건 아니다. 약 배송 서비스를 경험한 약사 201명은 최근 국회에 탄원서를 내고 “비대면 진료 서비스는 점차 어려워져만 가는 동네 골목상권에서 생존할 수 있는 버팀목이었다”며 “젊고 유능한 신진 약사들에게도 비대면 진료는 역량을 발산할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서울 구로구 소재 약국의 김모 약사는 “실제 비대면 진료와 약 배송에 참여한 의·약사들의 목소리는 이번 가이드라인에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며 “비대면 진료 시장을 자연 소멸시키기 위해 만든 가이드라인 아니냐”고 말했다.

해외는 어때

일본은 지난해 진료 수가 개정을 통해 ‘온라인 초진’ 수가를 책정했다. 코로나19를 거치며 온라인을 통한 비대면 초진이 허용됐는데, 주치의 개념인 단골 의사(카카리츠케)에 한해 온라인 진료가 가능하다. 일본 내에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라인헬스케어 홈페이지에서도 “초진부터 온라인 진료가 가능하다”고 안내한다.

라인은 일본에서 원격의료서비스 '라인 닥터'를 선보이고 있다. 사진 라인

라인은 일본에서 원격의료서비스 '라인 닥터'를 선보이고 있다. 사진 라인

2020년 원격의료 일시 확대 정책을 시행한 미국은 공보험인 메디케어·메디케이드에 대해 내년 12월 31일까지 원격의료 수가를 한시 적용하기로 했다. 미국 보건부 산하 메디케어·메디컬서비스센터(CMS)는 지난해 3월 원격의료 이용자 수가 늘었다고 발표하며 “원격의료의 영구 허용 여부에 (수요 증가는) 주요 고려 사항이 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미국 사보험은 대체로 공보험보다 비대면 진료 가능 범위가 넓다. 영국은 2019년부터 국민보건서비스(NHS) 장기계획을 통해 비대면 진료 확대를 지원하고 있다. NHS 모바일 앱에서 모든 1차 병원과 연결해 진료를 받을 수 있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