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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하경 칼럼

문명국 일본이 벗어나야 할 ‘피해자 의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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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하경 기자 중앙일보 대기자
이하경 대기자

이하경 대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강제징용 문제에 통 크게 양보한 뒤 기시다 일본 총리도 전향적 자세로 나오고 있다. G7 개최지 히로시마에서 한·일 정상은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를 처음으로 함께 참배했다. 큰 위로가 됐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원폭 가해국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이 사과하라는 목소리도 나왔다.

강제징용과 위안부 동원의 가해자인 2차 세계대전 전범국 일본이 피해자로 전환되는 장면이다. 전후 일본의 ‘피해자 의식’은 사죄와 반성을 주저하게 만들었다. 이런 기묘한 심리 구조를 만든 것은 전승국 미국이었다. 히로히토 천황을 퇴위시키면 일본 사회가 붕괴할 것으로 판단했고, 면죄부를 발급했다.

미국이 도조 회유해 천황 면죄부
일, 자기 연민·과거사 외면 출발점
일본도 윤석열식 결단 내놓을 때
평화·경제공동체 함께 선도하길

도쿄 전범재판은 나치를 단죄한 뉘른베르크 전범재판과 딴판이었다. 『패배를 껴안고(Embracing Defeat)』의 저자인 존 다우어 MIT 명예교수는 “‘승자의 증거’를 조작해서 패전국의 수장을 구제해 주는 행태”라고 비판했다. ‘A급 전범’들은 똘똘 뭉쳐 천황을 보호했지만 딱 한 번의 실수가 있었다. 총리로서 전시내각을 이끌었던 도조 히데키가 “천황의 의사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한 것이다.

그러자 수석검사 조셉 키넌은 천황 보좌전담 기관을 통해 증언을 철회하라고 회유했고, 도조는 수용했다. 맥아더 연합국최고사령부의 역사왜곡이었다. 책임자인 천황이 책임지지 않으니 국민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여기에 히로시마와 나가사키가 인류 최초의 핵폭탄 공격을 받았다는 사실이 겹쳐졌다.

아시아 전체를 전쟁터로 만든 일본은 자기 연민의 알리바이를 발견했다. 끔찍한 피해를 입혀놓고 성찰도 없었고, 책임도 지지 않았다. 오직 점령국 미국의 좋은 친구가 되는 것을 지상과제로 삼고 질주했다. 무라야마, 오부치, 간 총리의 식민지배에 대한 반성·사죄가 있었지만 정치인들의 망언으로 빛이 바랬다. 세계 3위의 경제대국이자 문명국인 일본이 아시아 통합의 걸림돌이 된 이유다.

‘피해자 의식’을 이겨낸 거인(巨人)들도 있었다. 나카소네 전 총리는 보수였지만 1984년 공산 중국을 방문해 수백억 달러의 원조를 제공했다. 그 돈으로 베이징과 상하이에 공항과 지하철이 들어섰다. 그는 “전쟁 때 고난을 일으킨 것에 유감을 표시하기 위해 원조 액수를 늘리자”고 깐깐한 관료들을 설득했다. 자오쯔양에게 “중국은 북한에게, 일본은 남한에게 밀서를 받아 남북 대화를 중재하자”고 했다.  일본 총리로서는 처음으로 1983년 한국을 방문할 때는 외무성 관료의 자문도 받지 않았다.

아키히토 전 천황도 “체포돼서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는 우파의 반대를 물리치고 1992년 중국을 방문했다. “중국인에게 극심한 고통을 가한 것”을 시인하고 “이로 인한 슬픔을 통감한다”고 했다. 고이즈미 전 총리는 2002년 평양을 방문해 식민통치에 사과했다. 김정일 위원장은 일본인 납치 사건에 대해 사과했다. 방북을 마쳤을 때 외무성 심의관 집에 ‘반역자’라는 메모와 함께 폭발물이 설치됐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윤 대통령이 결단했지만 “일본의 식민 침략에 대한 면죄부”라는 한국 내 비판은 여전하다. 심정은 이해하지만 일본의 침략전쟁으로 1000만 명 이상이 죽거나 다쳤던 중국의 대처 방식을 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중국은 자기들이 참전한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에도 무역을 재개하자고 ‘미국의 병참기지’인 일본을 졸랐다. 이듬해 무역협정이 체결됐다.

중국 전문가 사이먼 리스는 총리로서 중국 외교를 지휘한 저우언라이에 대해 “실용주의자 앞에서는 실용주의자, 철학자 앞에서는 철학자, 키신저를 만나면 키신저가 되었다”며 “카멜레온”이라고 했다. 1961년 일본 사회당 대표를 마주한 마오쩌둥은 “중국을 침략해 고맙다”고 했다. 일본군이 촉발한 혼란 덕분에 공산당이 집권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도 추상적 이념과 감정보다는 현실적 국익과 전략을 중시해야 한다.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저서 『총·균·쇠』에서 “(한·일은) 같은 피를 나누었고, 성장기를 함께 보낸 일란성 쌍둥이 형제와도 같다”고 했다. 웃으면서 뒤통수를 치는 ‘상호의존성의 무기화(Weaponization of interdependence)’를 깨야 한다. “과거에 머무른 자는 한 눈을 잃고, 과거를 잊은 자는 두 눈을 잃게 될 것”이라는 러시아 격언이 있다.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이 되는 2025년을 목표로 양국은 역사 화해 프로세스에 돌입해야 한다.

두 나라가 앞장서고 중국과 손잡으면 아시아 특유의 역동적인 에너지와 수천 년에 걸쳐 축적된 문명의 힘이 발휘될 것이다. 유럽이 부러워할 아시아 평화·경제 공동체를 만들어낼 수 있다. 미국과의 건강한 동맹관계 구축에도 도움이 된다. 일본도 윤석열식 결단을 내놓을 때다. 과거를 직시하고 새로운 시대를 여는 윤석열-기시다 선언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