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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가 한국을 파트너로 삼으려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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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라몬 파체코 파르도 영국 킹스칼리지런던 교수·브뤼셀자유대학 KF 석좌교수

라몬 파체코 파르도 영국 킹스칼리지런던 교수·브뤼셀자유대학 KF 석좌교수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과 샤를 미셸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이 오늘 방한해 윤석열 대통령과 한·EU 정상회담을 한다. 2020년 이후 첫 한·EU 정상회담이다. 두 사람의 방한은 올해 한·EU 관계 60주년에 맞춘 것으로, 큰 의미가 있다. 그것은 EU와 유럽에 있어 한국이 이제 정말로 핵심 파트너 지위를 가지고 있다는 신호이다.

이도운 대통령실 대변인은 지난 13일 브리핑에서 “이번 방한은 한·EU 수교 6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에 이뤄지는 것”이라며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중요한 협력 파트너인 EU와 경제, 보건, 과학기술 분야 실질 협력을 강화하고, 지역 및 글로벌 현안에 대한 공조를 심화하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한국과 EU는 이익·가치 등 공유
인·태 지역서 협력 가능성 많아
한·EU 정상회담, 새 전기 되기를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EU는 왜 이 시점에서 한국과의 관계 강화에 열심인가. 핵심적인 이유는 한국의 경제적·기술적·군사적·외교적 역량이 증가하고 있는 것과 더불어 한국의 두드러지고 적극적인 국제적 역할 때문이다. 많은 유럽인에게 한국의 외교 정책 비전은 한국의 국력에 미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최근 몇 년 동안 한국은 한반도와 동아시아를 넘어 보다 적극적으로 국제적 역할을 하기를 원한다. 한국을 자연스러운 파트너로 보는 EU는 이런 추세를 매우 환영한다.

실제로 EU 관점에서 보면 한국은 이익과 목표, 가치를 공유하고 있다. 유럽인은 아시아 전역에서 한국과 일본만이 유럽과 같은 이익과 목표, 가치를 공유하는 나라로 본다. 유럽의 관점에서 EU가 한국과의 협력을 증진할 필요가 있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특히 한국은 미·중 경쟁과 공급망 탄력성을 관리하고, 다자주의를 유지하는 등 도전 과제를 해결하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다.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과 미셸 상임의장의 이번 방한은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 안토니오 코스타 포르투갈 총리,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의 최근 방문에 이은 것이다. 많은 유럽 지도자들이 바쁜 일정에서 시간을 내어 한국을 방문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들은 보다 글로벌한 한국이 국제무대에 더 적극적으로 기여하고 있고, 이 과정에서 유럽도 이익을 얻고 있음을 알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유럽 전역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위상을 더욱 높였다. 한국은 러시아의 행동을 분명하게 비난하고, 러시아에 제재를 가하고, 우크라이나에 물질적 지원을 제공하는 세계적으로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다.

게다가 한국의 방위산업체들은 폴란드·노르웨이·에스토니아 같은, 우크라이나에 군사적 지원을 제공하는 유럽 국가들에 무기를 제공하고 있다. 대부분의 다른 나라들이 러시아의 침공을 세계적인 갈등이 아닌 지역적인 갈등으로 볼 때 유럽은 한국의 지원에 감사해 한다.

EU가 한국과의 관계 강화에 노력하는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세계 경제와 정치의 무게중심이 아시아와 인도·태평양으로 이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세기 동안 유럽, 더 넓게 미국을 포함한 서구는 세계 지정학의 진원지였다. 그러나 21세기에는 그렇지 않다. 유럽은 마침내 그것을 깨달았다.

이에 따라 EU와 유럽 국가들의 관심이 이 지역에 집중되고 있다. 그들은 유럽이 목소리를 강화하기 위해 인도·태평양 지역 내 파트너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프랑스·독일을 포함해 EU가 행동하거나 말할 때 인도·태평양에서 제한적인 비중을 갖는다. 그러나 그들이 한국과 호주·일본과 같은 이 지역 파트너들과 합류한다면 미국과 아시아, 인도·태평양 국가들도 주목할 것이다. 이것은 EU가 마음에 새긴 교훈이다.

인도·태평양은 중국과 미국이 세계적인 패권을 놓고 싸우고 있는 주요 경기장이다. 유럽은 한국을 포함한 파트너들과 협력해 이 지역에서 목소리를 키우길 원한다. 따라서 유럽은 안보 문제에 더 중점을 두고 보다 정기적인 한·EU 정상회담에 대비해야 한다. EU가 한국과 21세기 지정학적 관계를 맺고자 하는 것은 지난 60년간 지속한 파트너십의 자연스러운 진화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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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몬 파체코 파르도 영국 킹스칼리지런던 교수·브뤼셀자유대학 KF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