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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경율이 소리내다

회계자료도 안 냈는데, 노조에 나랏돈 줬다? 이상한 고용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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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김경율 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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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조금을 받으려면 재정·회계가 투명해야 한다는 조건을 정부가 제시한 가운데 노동단체들이 반발하고 있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국가보조금을 받으려면 재정·회계가 투명해야 한다는 조건을 정부가 제시한 가운데 노동단체들이 반발하고 있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한국노총은 올해 노동단체 지원사업 1차 모집 신청에서 탈락했다. 고용부 측은 “국민 혈세가 투입되는 국고 지원 사업에 있어 정부는 지원 대상의 재정·회계 운영상 투명성을 반드시 확인해야 할 책무가 있다”며 “이번 심사에서 (회계 자료 제출) 의무를 준수하지 않은 노조를 제한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지난 2일 중앙일보의 '회계자료 안내는 한국노총…정부, 26억 국고보조금 다 끊었다'는 제목의 온라인 기사(지면 3일자 6면) 일부다. 쭉 기사를 읽다 보면 회계 자료 제출 의무를 준수하지 않았다는 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14조에 따른 재정에 관한 장부와 서류 등의 비치·보존 여부를 보고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고용노동부 직원들이 지난달 2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한국노동조합총연맹에서 회계서류 비치·보존 여부 관련 현장조사를 위해 한국노총 관계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고용노동부 직원들이 지난달 2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한국노동조합총연맹에서 회계서류 비치·보존 여부 관련 현장조사를 위해 한국노총 관계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위 기사를 보며 맨 처음 드는 의문은 ‘그러면 그동안은 회계 자료를 제출하지 않고도 보조금 지원을 받았나’ 하는 것이었다. 각종 보조금에 대한 검증 혹은 감사를 하여 본 경험에 비추어, 애초 보조금을 신청할 때 해당 회사 혹은 단체의 재무제표 제출은 필수사항이라 할 수 있다.

보조금 지급 기준 핵심은 재무제표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도 함께 생각해 보자. 특정 사업에 대한 보조금을 지급하는 당국 입장에서는 ‘누구를 선정하여 지급할까’ 하는 문제에 대해서 해당 사업자의 능력을 따져봐야 한다.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수치로 나타난 사업자의 실적치, 즉 재무지표다. 따라서 보조사업자 공모 시에 백이면 백 응모하는 사업자에게 재무제표를 제출할 것을 요청한다. ‘보조사업자를 선정하며 무슨 사업자 전체의 재무제표를 요청하냐’는 식의 반론을 하는 인사들이 있는데, 그런 분들은 과연 그럼 무엇을 보고 사업자를 선정할 것인지 묻고 싶다. 주사위로, 아니면 대장동 사업처럼 미리 정해 놓고?

여하튼 그간 재무제표도 제출하지 않으면서 꼬박꼬박 수십억원의 보조금을 받아 간 노동단체도, 또 재무제표를 보지도 않고 보조 사업자를 선정하여 국민의 혈세를 지급한 고용부도 어느 시대에 살고 있나 하는 의구심이 들게 한다.

관리·감독 기능 못하는 e나라도움 

현재 첨예하게 맞서고 있는 노동조합 혹은 노동단체와 정부 간 회계 투명성 논란과 관련하여 언론 보도를 통해 다음과 같은 노동조합 관계자의 항변을 접한다. “국고보조금 사용 내역은 그동안 외부 회계 감사와 정부가 운영하는 e나라도움 시스템을 통해 관리 감독받았다.” 사실일까?

지난달 21일 오전 금속노동조합 관계자들이 고용노동부의 회계서류 비치·보존 여부 관련 현장 조사를 앞두고 서울 중구 금속노조 사무실 앞에서 현장 조사 규탄 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21일 오전 금속노동조합 관계자들이 고용노동부의 회계서류 비치·보존 여부 관련 현장 조사를 앞두고 서울 중구 금속노조 사무실 앞에서 현장 조사 규탄 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고용부의 노동 관행 개선 자문단장을 맡고 있는 필자로서 어디까지 밝힐 수 있는지 조심스럽지만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이는 사실과 다르다. 혹여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은 e나라도움 시스템이라 하면 대기업에 구축된 전사적자원관리(ERP)시스템처럼 지출 결의서가 작성되고 이를 증빙하는 세금계산서 등의 적격 증빙이 첨부돼야만 결재가 이루어지는 그런 모습을 연상하실 수 있다. 정부가 도입할 때 했던 생각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현실은 끔찍하다. 수백 건에 달하는 수억원대의 금액이 지출되면서 전산시스템상 꼭 필요한 한장의 문건 외엔 전무한 경우도 있다. 답안지로 비유하자면 반, 번호, 이름만 적힌 것이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몇천만원짜리 증빙을 2000쪽 넘게 제출했는데 그 중 최소 수백 쪽은 백지다. 그저 증빙은 있어야겠고, 식별 불가능할 의미 없는 여러 문서를 무작정 그냥 쑤셔 넣는 수준이다.

이 경우 고용부의 대처는 어떨까. 그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승인 클릭을 했다. 인건비를 지급하고서 해당 지급 사실을 과세 당국에 신고하지 않아도(이 경우 당연히 위법이다), 거래 사실을 입증할 세금계산서가 없어도, 진짜로 상대방에게 지급했는지 그 사실 여부를 판단할 아무런 증적이 없음에도 오로지 고용부의 대처는 한 가지다. 승인 클릭!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탈세 방지 위해 공시의무 있어야

한 가지 더 언급해 보자. 현행 세법에서는 노동자가 납입하는 노동조합비를 지정기부금으로 보아서 소득공제가 되고 있다. 그리고 사실상 기부액이 지정기부금으로 취급되는 단체 중 공시 의무가 부여되지 않은 곳은 노동조합이 유일하다. 지정기부금 단체가 공시해야 하는 이유는 다른 곳도 다 하니 해야 할 이유도 있지만 보다 더 중요하고 공시할 필연적 이유는 공시의무조차 없을 때 벌어질 세수의 공백, 아니 더욱 확실하게 말하자면 탈세 행위다. 종교 단체를 둘러싸고 잊을 만하면 나타나는 기부금 영수증 장사 행위 같은 것 말이다.

이 대목에서 웃지 못할 것이, 한 진보언론이 주장하는 ‘노동조합을 종교단체처럼 취급해서 공시하지 않게 해달라’는 것이다. 해당 진보언론은 종교인에게도 과세할 것을 줄기차게 요구해 온 것으로 아는데 무슨 속인지 모르겠다.

3월 21일 오전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윤석열 대통령의 국무회의 모두발언을 생방송으로 시청하고 있다. 뉴스1

3월 21일 오전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윤석열 대통령의 국무회의 모두발언을 생방송으로 시청하고 있다. 뉴스1

마지막으로 자주성 논란이다. 여러 가지 회계 투명성 요구에 대해 ‘자주성’을 침해한단다. 회계가 투명해지면, 혹은 공시하게 되면 자주성이 낮아지는지 의아해진다. 정말로 궁금하다. 말대로라면 상당한 수준의 공시를 하는 우리나라 상장사(우리나라의 경우 해외 선진국에 비해서도 공시 수준이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물론이고 비상장사이면서도 ‘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에 의해 공시하고 있는 중소규모 회사들, 아니 공시 의무가 부여된 아파트 심지어 협동조합들은 자주성이 침해되었나? 투명성과 자주성이 반비례 관계가 성립한다는 것은 과문한 나로서는 들어본 바 없다.

대개는 자주성이라고 하면 재정의 독립성을 일컫는 경우가 많고, 사실은 핵심적이라 할 수 있다. 더욱 적나라하게 말해 보자. 보조금 받으면서 자주성을 논하는 게 맞나. 뭔가 이상하다. 노동단체도 고용부도.

김경율 회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