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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하다 저녁되면 짐 싼다…477억 들인 체육시설 조명 없다,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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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청주시 내수읍 내수생활체육공원 상공에 여객기가 활주로를 향해 날아가고 있다. 최종권 기자

충북 청주시 내수읍 내수생활체육공원 상공에 여객기가 활주로를 향해 날아가고 있다. 최종권 기자

활주로 코앞 체육공원 만든 청주시…“관련법 조명 설치 제한” 

충북 청주시가 477억원을 들여 만든 체육시설이 야간에는 사용할 수 없다. 조명을 밝히면 인근 공군 비행장에서 항공기 이착륙때 방해를 받기 때문이다. 이에 반쪽짜리 체육시설로 전락, 예산낭비 논란이 일고 있다.

21일 오후 충북 청주시 내수읍 내수생활체육공원. 청주시가 축사를 사들여 만든 이 공원엔 2020년부터 축구장·실내체육관·족구장·그라운드골프장·암벽장 등 체육시설(15만6200여㎡)이 들어섰다. 암벽장 앞에는 올가을 준공 예정인 야구장 공사가 한창이다.

청주시는 땅 매입과 건설비로 세금 477억원을 썼다. 평범한 체육공원처럼 보이지만, 이곳 실외 체육시설엔 야간 조명이 없었다. 축구장을 비롯해 족구장·그라운드골프장 이용자는 오후 6시30분에 짐을 싸야 한다.

개장을 앞둔 인공암벽장도 지난 4월 대형 조명을 떼는 바람에 일몰 이후 시설 이용이 어렵게 됐다. 주말을 맞아 축구 경기를 나온 최준규(55)씨는 “축구장에 야간 조명이 없어서 오후 늦게는 이용을 할 수 없다”며 “퇴근 이후 야간에 운동하는 직장인이 많을 텐데 조명탑이 없다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고 했다.

내수생활체육공원 전경. 최종권 기자

내수생활체육공원 전경. 최종권 기자

조명탑 없는 축구장, 인공암벽장 조명도 철거 

내수체육공원에 야간 조명이 없는 것은 인근 비행장 때문이다. 이 공원은 청주국제공항과 공군제17전투비행단이 함께 사용하는 활주로 끝단에서 1.5㎞ 떨어져 있다. 비행기 이착륙 동선에 체육공원이 있다 보니 축구장이나 인공암벽장에 대형 조명을 켜면 비행 안전에 문제가 생긴다. 수백억 원이 드는 주민 편의시설 공사에 앞서 관련법 검토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이날 찾은 내수체육공원 상공에선 여객기가 연신 날아다녔다. 훈련 비행을 하는 경비행기가 굉음 소리를 내며 활주로로 향하는 모습도 보였다. 주민 윤모(77)씨는 “체육공원을 잘 만들어 놓고, 야간 조명 하나 때문에 시설을 놀린다는 게 말이 되냐”며 “활주로 코앞에 체육시설을 지으면서 안전과 직결된 문제를 소홀히 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감사원은 내수체육공원 인공암벽장에 설치했던 조명 등과 관련해 지난해 말 감사를 통해 이 같은 문제를 지적했다. 감사원은 지난 11일 발표한 ‘항공등화 시설 안전관리실태’ 특정사안 감사에서 “공군부대에 요청해 지난해 10∼11월 인공암벽장 조명 점등 상태에서 검증 비행을 한 결과 조종사 193명 중 185명이 ‘비행 중 활주로 인식에 방해가 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고 지적했다.

내수생활체육공원 안에 만든 인공암벽장. 최종권 기자

내수생활체육공원 안에 만든 인공암벽장. 최종권 기자

감사원 “조종사 활주로 인식에 방해” 지적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 보호법은 비행안전구역에서 ‘항공등화 인지를 방해하거나 항공등화로 오인할 우려가 있는 유사등화 설치’를 금지하고 있다. 항공등화는 비행기 이착륙 시 안전운항을 유도하는 조명시설 등을 말한다.

감사원은 청주시가 인공암벽장을 조성하면서 공군부대와 협의 없이 1400만원을 들여 2021년 11월 조명을 설치한 것을 지적했다. 공사에 앞서 청주시가 공군부대에 조명 관련 서류를 제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관련 자료를 받지 못한 공군부대가 협의 의견을 ‘동의’로 회신하면서 인공암벽장 조명이 설치됐다.

내수체육공원에는 지난해 인공암벽장(2단계)을 만들었다. 하반기 준공을 목표로 야구장(3단계) 3개 면을 만들고 있다. 4단계 사업으로 배드민턴체육관 건립(175억원)도 추진된다.

내수생활체육공원에는 올 가을 야구장 3개 면이 조성된다. 야구장에 조명탑이 없어서 야간 이용은 어렵다. 최종권 기자

내수생활체육공원에는 올 가을 야구장 3개 면이 조성된다. 야구장에 조명탑이 없어서 야간 이용은 어렵다. 최종권 기자

준공 예정 야구장 3개 면 “야간 이용 못 해” 

곧 준공을 앞둔 야구장 3개면서도 조명탑은 만들지 못한다. 시는 축구장과 야구장에 조명탑 설치를 위해 2020년부터 공군부대에 협조를 구했지만, 끝내 동의를 얻지 못했다.

한준희 청주시 시설건립팀장은 “축구장은 에어돔을 씌워 야간에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인공암벽장은 조명탑을 제거하고 운영방안을 찾고 있다. 야구장은 개장해도 야간 이용은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에어돔 설치에는 약 100억원이 필요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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