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한국 온 중입자 치료…첫 대상은 전립선암, 비용은?

  • 카드 발행 일시2023.05.22

얼마 전까지만 해도 ‘중입자 치료’를 받으러 일본이나 독일로 떠나는 원정 암 환자가 많았습니다. 2019년엔 중입자 치료를 받으러 독일로 떠난 환자 중 10명이 치료도 못 받고 현지에서 사망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의료 브로커 꼬임에 거금을 들여 출국했지만 현지 의료기관에서 치료 대상이 안 된다는 말을 듣고 크게 낙심했다고 합니다.

마침내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연세의료원이 중입자 치료기 3대를 국내 최초로 도입해 지난달 첫 치료를 개시했다는 뉴스입니다. 현재는 고정형 1대로 시작하지만 올 연말 회전형 2대도 차례로 가동한다고 합니다. 2027년엔 서울대병원에도 중입자 치료기가 들어올 예정입니다.

🧾 다룰 내용

①중입자 치료의 탄생
②일본이 만든 중입자 치료기
③중입자 치료의 효과
④중입자 치료 받으려면
⑤어떤 암에 효과적일까

중입자 치료는 방사선 치료의 일종입니다. 하지만 X선을 쓰는 일반 방사선 치료와 달리, 빛 속도의 70~80%로 가속한 ‘탄소이온 입자’를 씁니다. X선보다 암세포를 더 강력하게 살상합니다. 이런 살상 능력 때문에 그동안 많은 언론이 ‘꿈의 치료’라고 소개해 왔습니다. 드디어 우리 곁에 다가온 중입자 치료에 대해 샅샅이 파헤쳐 보겠습니다.

서울 신촌에 있는 세브란스병원에 들어선 중입자 치료기. 3000억원을 들여 국내 최초로 도입했다. 장진영 기자

서울 신촌에 있는 세브란스병원에 들어선 중입자 치료기. 3000억원을 들여 국내 최초로 도입했다. 장진영 기자

중입자 치료를 위해 건설된 가속기. 거대한 원통형 파이프 속을 탄소 입자가 돌면서 빛의 속도의 70~80%까지 가속한다. 이 입자를 치료실로 보내 암 환자의 몸에 쏴 암세포를 살상한다. 매우 거대하면서도 매우 정교한 장비다. 장진영 기자

중입자 치료를 위해 건설된 가속기. 거대한 원통형 파이프 속을 탄소 입자가 돌면서 빛의 속도의 70~80%까지 가속한다. 이 입자를 치료실로 보내 암 환자의 몸에 쏴 암세포를 살상한다. 매우 거대하면서도 매우 정교한 장비다. 장진영 기자

💣원자폭탄 개발자가 고안한 양성자 치료

중입자 치료의 연원은 로버트 윌슨(Robert R. Wilson)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1944년 원자폭탄 개발을 목표로 한 미국 맨해튼 프로젝트에 당시 29세의 천재 물리학자 로버트 윌슨이 4개 연구그룹 책임자로 임명됐습니다. 1년 뒤 완성된 원자폭탄은 1945년 여름 일본 도시 두 곳을 폐허로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윌슨은 프로젝트 성공이 전혀 기쁘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생명이 자신의 발명품 때문에 희생됐기 때문이죠.

윌슨은 원자력을 생명을 살리는 용도로 쓰고 싶었습니다. 그는 1946년 방사선 중 양성자선이 지닌 독특한 특성을 활용해 암을 치료하자는 아이디어를 제안했습니다. 윌슨은 방사선 중 입자선이 가진 ‘브래그 피크(Bragg Peak)’라는 특성에 주목했습니다.

방사선 치료의 새 지평을 연 천재 과학자 로버트 윌슨(1914~2000). 사진 위키피디아

방사선 치료의 새 지평을 연 천재 과학자 로버트 윌슨(1914~2000). 사진 위키피디아

빛 속도의 70% 이상으로 가속한 입자가 물질을 통과할 때 보이는 특성이 브래그 피크다. 이 입자선이 물질을 통과하며 그리는 에너지의 전체 곡선을 브래그 커브라고 하며, 그중 뾰족 솟은 봉우리를 브래그 피크라고 한다. 특정한 깊이에 도달해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붓는다는 걸 보여준다. 그래픽 이가진 박지은

빛 속도의 70% 이상으로 가속한 입자가 물질을 통과할 때 보이는 특성이 브래그 피크다. 이 입자선이 물질을 통과하며 그리는 에너지의 전체 곡선을 브래그 커브라고 하며, 그중 뾰족 솟은 봉우리를 브래그 피크라고 한다. 특정한 깊이에 도달해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붓는다는 걸 보여준다. 그래픽 이가진 박지은

매우 빠르게 가속된 양성자나 이온 입자를 무언가에 통과시키면 특정한 깊이에 도달했을 때 막대한 에너지를 쏟아붓습니다. 그리고 순식간에 에너지를 잃고 사라져버립니다. 이걸 ‘브래그 피크’라 부릅니다. 이 특성을 활용하면 양성자가 몸을 통과하는 동안 정상 세포를 다치지 않게 하면서 체내 깊숙한 곳 암 덩어리를 없앨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게 윌슨의 아이디어였던 거죠.

미국은 윌슨의 뜻을 이어받아 연구를 계속했습니다. 1954년 양성자선을 이용해 첫 임상 치료를 했습니다. 오랜 기간 수정에 수정을 거듭한 끝에 1990년 의료기관으로는 최초로 로마 린다(Loma Linda) 대학병원에 양성자 치료기가 도입됐습니다.

1990년 미국 캘리포니아의 로마 린다 대학병원에 처음으로 들어선 양성자 치료기. 사진 로마 린다 양성자 치료센터

1990년 미국 캘리포니아의 로마 린다 대학병원에 처음으로 들어선 양성자 치료기. 사진 로마 린다 양성자 치료센터

💡미래를 내다본 일본의 방사선 학자

미국이 양성자 치료에 집중하는 동안 일본은 또 다른 방사선에 주목했습니다. 양성자 치료에 쓰는 수소 이온보다 12배 더 무거운 ‘탄소 이온’입니다. 일본 과학자들은 이런 이온에 무거울 중(重)을 붙여서 중입자선이라고 불렀습니다. 더 무거운 입자를 쓰면 파괴력이 더 강력하므로 암세포를 더 효과적으로 죽일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습니다.

일본은 1984년 정부 주도로 ‘암 대응 10개년 종합전략’을 시작하면서 중입자 치료기를 건설한다는 파격적인 결정을 내립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중입자 치료는 아이디어 단계였지 현실에 적용할 수준엔 이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병원과 학계, 도시바·히타치 같은 기업이 함께 노력한 끝에 9년 만에 세계 최초로 중입자 치료기를 완성합니다. 첫 치료기는 1993년 11월 일본 지바에 있는 방사선의학종합연구소(QST병원의 전신)에 설치됐습니다.

일본 중입자 치료의 아버지 우메가키 요이치로 박사. 사진 일본 시민을 위한 암치료 모임

일본 중입자 치료의 아버지 우메가키 요이치로 박사. 사진 일본 시민을 위한 암치료 모임

쓰지 히로시(辻 比呂志) 일본 QST병원 국제치료연구센터장은 “방사선의학종합연구소 소속의 우메가키 요이치로(梅垣 洋一郎)라는 아주 유명한 방사선 연구자가 중입자 치료를 일본에 도입해야 한다고 1960년대부터 일본 내 중요한 회의에서 주장해 왔다”며 “그의 뜻을 이어받아 일본 정부는 중입자 치료를 도입하기로 1980년대 결정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중입자 치료의 효과

방사선을 이용한 입자 치료는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양성자 치료, 일본과 독일을 중심으로 하는 중입자 치료로 나뉩니다. 두 방식 모두 브래그 피크를 활용하므로 X선을 쓰는 일반적인 방사선 치료보다 더 효과가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중입자는 양성자보다 암세포 DNA 절단 효과가 더 큽니다. 일본 원자력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양성자선은 DNA 이중 나선의 한쪽만 끊어내지만, 중입자선은 나선 전체를 다 끊는 힘을 지녔습니다.

양성자 치료에 비해 중입자 치료는 암세포의 DNA를 더 확실하게 끊어놓는다. 그래픽 이가진 박지은

양성자 치료에 비해 중입자 치료는 암세포의 DNA를 더 확실하게 끊어놓는다. 그래픽 이가진 박지은

이시카와 히토시(石川 仁) 일본 QST병원 부원장은 “일반적인 방사선 치료에 쓰는 X선은 암 주변에 산소가 부족한 환경에서는 효과적이지 못했지만 중입자선은 저산소 환경에서도 큰 효과를 발휘한다”며 “골육종이나 신장암처럼 방사선 감수성이 낮아 X선이 통하지 않는 암종에도 충분한 효과를 발휘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일본 원자력 위원회에 따르면 중입자 치료는 양성자 치료보다 더 우수한 생존율을 보입니다. 폐암 3년 생존율에서 양성자 치료는 73%였지만, 중입자 치료는 93.6%를 보였습니다. 간암 3년 생존율은 66% 대 73%, 고위험 전립샘암 5년 생존율은 75% 대 91%였습니다.

이제 막 중입자 치료를 시작한 한국 의료진에게 조언을 해달라는 질문에 쓰지 히로시 센터장은 “일본도 처음 도입했을 때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고, 보험 도입에도 엄청난 시간이 걸렸다”며 “한국 의료진은 경험 많은 일본 의료진과 협력을 많이 하고 그간의 연구 결과도 충분히 학습했으므로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제 막 중입자 치료를 시작한 한국 의료진에게 조언을 해달라는 질문에 쓰지 히로시 센터장은 “일본도 처음 도입했을 때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고, 보험 도입에도 엄청난 시간이 걸렸다”며 “한국 의료진은 경험 많은 일본 의료진과 협력을 많이 하고 그간의 연구 결과도 충분히 학습했으므로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중입자 치료의 높은 효과를 목격한 일본은 지금까지 총 7곳에 중입자 치료기를 설치했습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의 수많은 환자가 치료받으러 바다 건너 일본으로 떠났습니다.

쓰지 히로시 센터장은 “2019년엔 QST병원에 한국인 28명이 치료받으러 왔다. 이후 코로나19로 확 줄어서 6~7명을 유지하다가 지난해 11명이 왔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다양한 암 환자가 오지만 그중에서도 전립샘암과 췌장암 환자가 가장 많다”며 “상담 중 적용 조건에 맞지 않아 치료를 못 받은 환자도 많이 있다”고 했습니다.

😊중입자 치료를 받으려면

마침내 지난달 연세의료원이 3000억원을 들여 일본 도시바의 중입자 치료 설비를 국내 최초로 들여왔습니다. 일본보다 거의 30년이 늦은 셈이죠.

사실 우리나라도 중입자 치료기 개발을 시도한 적이 있었습니다. 2009년 약 2000억원을 들여 국책사업을 진행했습니다. 하지만 성과는 좋지 못했습니다. 한국에서 치료기 설치가 많이 늦어진 이유입니다.

 국내 최초로 도입된 연세의료원 중입자 치료기의 첫 치료 대상은 전립샘암 환자다. 연세의료원은 적용 대상 암종을 차츰 넓혀나갈 계획이다. 사진 연세의료원

국내 최초로 도입된 연세의료원 중입자 치료기의 첫 치료 대상은 전립샘암 환자다. 연세의료원은 적용 대상 암종을 차츰 넓혀나갈 계획이다. 사진 연세의료원

연세의료원의 세브란스병원 중입자 치료센터가 선택한 첫 치료 암종은 전립샘암입니다. 다른 부위 암에 비해 전립샘 근처에는 장기가 많지 않아서입니다. 방광과 직장만 잘 피하면 전립샘에 있는 암에 직접 중입자선을 닿게 할 수 있습니다.

중입자 치료를 받고 싶은 전립샘암 환자는 우선 방사선 외과 전문의와 상담해야 합니다. 중입자 치료가 가능하다는 진단이 나오면 CT와 MRI를 찍어서 암 위치를 정확히 확인합니다. 이어서 치료 중 몸이 움직이지 않도록 고정 기구를 제작합니다. 첫 상담부터 치료에 들어가기까지 한두 달이 소요됩니다.

암의 진행 정도에 따라 4번에서 최대 20번 치료를 받습니다. 치료는 기본적으로 매일 진행되고 한번 치료에 15~20분이 걸립니다. 실제 중입자선을 쬐는 시간은 1~2분에 지나지 않지만 정밀한 타격을 위해 치료기를 조정하는 데 시간이 많이 소요됩니다.

김용배 연세암병원 부원장은 “3차원으로 각도를 조정해 1㎜ 내의 오차로 조정해야 해 시간이 많이 걸린다”며 “전립샘은 방광에 소변이 차 있는 용적에 따라 위치가 바뀔 수 있기 때문에 방광을 처음 CT를 찍을 때 용적 그대로 맞춰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용배 연세암병원 부원장은 “3차원으로 각도를 조정해 1㎜ 내의 오차로 조정해야 해 시간이 많이 걸린다”며 “전립샘은 방광에 소변이 차 있는 용적에 따라 위치가 바뀔 수 있기 때문에 방광을 처음 CT를 찍을 때 용적 그대로 맞춰야 한다”고 설명했다.

💉어떤 암종에 효과적일까

지금은 고정형 1대만 운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는 12월 회전형도 가동을 시작합니다. 회전형은 고정형보다 다양한 방향에서 중입자를 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현재는 전립샘암을 대상으로 하지만 점차 대상 암종도 넓힐 예정입니다. 다만 암세포가 몸을 돌아다니는 혈액암이나, 고형암 중에서도 체내 먼 곳까지 전이된 암은 중입자 치료를 적용하기 힘듭니다.

김용배 연세암병원 부원장은 “간암, 췌장암, 폐암, 골육종처럼 수술이나 항암제, 기존의 방사선 치료를 동원해도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는 암종도 중입자 치료를 적용하면 치료 성적이 상당히 향상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탄소입자선의 꼬리 부분을 보면 에너지가 약간 남는 게 보인다. 따라서 중입자 치료가 양성자 치료에 비해 위험하다는 우려가 있지만, 임상적으로 부작용을 나타낼 정도는 아니라고 한다. 그래픽 이가진 박지은

탄소입자선의 꼬리 부분을 보면 에너지가 약간 남는 게 보인다. 따라서 중입자 치료가 양성자 치료에 비해 위험하다는 우려가 있지만, 임상적으로 부작용을 나타낼 정도는 아니라고 한다. 그래픽 이가진 박지은

중입자 치료의 약점으로 지적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브래그 피크’의 꼬리 부분이 살짝 떠 있다는 점입니다. 방사선이 최대 에너지를 내고 급격히 사라져 가는 과정에서 강도가 조금 남아 있다는 거죠. 그래서 양성자 치료에 비해 정상 세포가 영향을 받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있습니다.

김용배 부원장은 “중입자 치료는 방사선이 에너지를 암세포에 쏟아붓고 나가면서 남은 양이 양성자 치료보다 조금 더 많기는 하다”며 “하지만 지금까지 임상적으로 규명된 바에 따르면 그 양이 더 많다고 양성자 치료보다 특히 부작용이 많다고 보진 않는다”고 했습니다.

일본에선 일부 암종에 대해 중입자 치료에 보험이 적용된다. 그래픽 이가진 박지은

일본에선 일부 암종에 대해 중입자 치료에 보험이 적용된다. 그래픽 이가진 박지은

중입자 치료는 전체 치료에 5000만~5500만원이 듭니다. 일본에선 2016년부터 일부 암종에 ‘중입자 치료’ 의료 보험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선 아직 적용되고 있지 않지만, 향후 보험 적용의 영역으로 들어올 가능성은 충분히 있어 보입니다.

불로장생의 꿈: 바이오 혁명

인간이 건강을 결정하는 시대입니다. 기술이 질병을 통제하는 시대입니다. 세상엔 수만 가지 치료법과 신약이 떠돕니다. 하지만 믿을 만한 정보는 한정적입니다. 영상 시리즈 〈불로장생의 꿈 : 바이오혁명〉은 세계적 권위의 전문가 인터뷰를 토대로 세상을 선도하는 신약과 최신 치료법에 대해 가장 앞선 이야기를 전합니다. 새로운 치료법과 신약을 기다리시는 분, 바이오테크의 미래가 궁금하신 분, 생명과학의 놀라운 발전을 쉽게 이해하고 싶으신 분에게 도움이 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