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카락이 자라길 기다리는 동안 혹은 결핍을 지닌 모든 이에게
―탈모 치료제 피나스테라이드와 SF 소설 『히페리온』
우리는 시간이 언제나 객관적으로 흐를 뿐 아니라 그 속도를 인위적으로 조절할 수 없다고 믿는 경향이 있습니다. 시간은 언제 어디서나 똑같이 흐르고, 사람은 그저 하루하루를 보낼 뿐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여기는 거지요. 하지만 사실 시간은 모든 사람에게 다른 속도로 흐릅니다. 지구 인구가 70억 명이라면, 보이지 않는 내면의 시계가 70억 개 존재하는 셈이랄까요.
우리는 마음먹기에 따라 시간을 빠르게 감거나 반대로 늦출 수 있습니다. SF에 나오는 타임머신 같은 장치 없이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요. 비밀인데, 그중 한 가지 방법이 바로 소설을 읽는 것입니다. 독자를 사로잡는 매혹적인 소설은 우리의 시간 감각에 영향을 끼칩니다. 두고두고 한 문장을 곱씹게 함으로써 시간을 거의 멈추게 하거나, 소설책 한 권 읽는 데 걸린 일주일을 마치 일 분처럼 느끼게 해주지요.
이 글은 뭔가를 기다리는 일이 마냥 지루하고 초조할 때, 가령 탈모 치료제인 피나스테라이드를 복용하며 매일 발모 정도를 확인할 때처럼 말이죠, 그럴 때 시간의 흐름을 잊게 해주는 방법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거울을 보고 정수리나 이마선 주변이 휑해졌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만큼 사람을 우울하게 하는 일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샴푸를 하고 머리를 말렸는데 바닥에 평소보다 머리칼이 많이 떨어져 있을 때도 비슷한 심정을 느낄 수 있겠지요. 탈모가 진행된 아버지나 할아버지, 외삼촌이나 외할아버지를 떠올린다면 우울한 기분은 두려움으로까지 발전할지도 모릅니다.(최신 연구 결과에 따르면 유전적 소인이 강하게 작용하는 남성형 탈모는 모계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고 합니다. 탈모와 관련된 유전자는 상염색체 3번, 20번, 그리고 성염색체인 X염색체에 주로 존재하는데, 남성의 성염색체 XY 가운데, X는 어머니로부터 받은 것이기 때문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