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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 주인공' 된 젤렌스키…오자마자 인도부터 찾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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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19~21일 일본 히로시마(広島)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의 주인공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었다. 당초 온라인으로 G7 회의에 참석할 예정이던 젤렌스키 대통령은 20일 프랑스 정부 전용기를 타고 히로시마에 전격 도착해 전세계의 관심을 모았다. 곧 시작될 러시아에 대한 대반격을 앞두고 G7에 '통 큰 지원'을 요청하는 한편, 러시아에 호의적인 인도 등과의 관계 강화를 노렸다고 일본 언론들은 평가했다.

21일 오전 일본 히로시마에서 볼라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G7 정상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21일 오전 일본 히로시마에서 볼라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G7 정상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젤렌스키 대통령은 G7 정상회의 폐막일인 21일 오전 진행된 세션8에 참석해 G7 회원국 정상들과 함께 우크라이나 정세에 대해 논의했다. 일본 정부에 따르면 의장국인 일본의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는 이 자리에서 러시아 침공에 대항해 온 우크라이나 국민의 용기와 인내에 경의를 표하고 "젤렌스키 대통령이 공정하고 영속적인 평화를 위해 계속 진지하게 노력하고 있는 것에 대해 G7으로서 환영하고 지지한다"고 밝혔다.

또 G7은 이 자리에서 우크라이나에 외교적·재정적·군사적·인도적 지원을 제공한다는 약속을 착실히 이행하며, 법의 지배에 기초한 국제질서를 지켜낸다는 결의를 재확인했다.

바이든 만나 4982억원 규모 탄약·장비 지원 약속받아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젤렌스키 대통령의 일본 방문은 본인의 강한 희망에 의해 실현됐다. 그는 히로시마 도착 직후 자신의 트위터에 G7은 "우크라이나의 파트너와 친구들과의 중요한 회의"라며 "오늘 평화가 더 가까워질 것"이라고 적었다.

21일 오전 G7 회의장에서 만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AFP=연합뉴스

21일 오전 G7 회의장에서 만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AFP=연합뉴스

이번 방문의 가장 시급한 목적은 러시아에 빼앗긴 영토 탈환을 위해 더 많은 무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G7 국가들에 호소하기 위해서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20~21일 회담장안팎을 누비며 서방의 적극적인 군사 지원을 호소했다. 지난 20일엔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리시 수낵 영국 총리,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잇따라 만났고, 21일에는 윤석열 대통령,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도 회담했다.

이날 바이든 대통령을 만난 젤렌스키 대통령은 “미국의 지원에 감사하며, 훈련을 제공해주는 것에 대해서도 감사를 표한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는 그동안 서방국들에 F-16 같은 신형 전투기를 요청해 왔다. 바이든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조종사들에 대한 F-16 조종 훈련도 승인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F-16을 제공하면 전쟁 상황이 악화할 수 있다’는 지적에, “젤렌스키 대통령이 F-16으로 러시아 영토를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게 확약했다”고 답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새롭게 3억7500만달러(약 4982억원) 규모의 탄약·장비를 우크라이나에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스윙 스테이트'를 잡아라

젤렌스키 방일의 두 번째 목적은 인도로 대표되는 글로벌사우스 국가들과의 관계 강화다. 특히 러시아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인도나 브라질과의 대화를 중시하고 있다. 요미우리신문은 "러시아에 침략 종결의 압력을 가하기 위해서는 이들 국가와의 연계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라며 "'전시의 지도자'가 먼 아시아까지 발길을 옮기는 것은 이례적이지만, G7 정상회의 출석에 그만큼의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폴리티코도 "젤렌스키 대통령이 대반격을 앞두고 그간 우크라이나 전쟁에 거리를 둬온 '스윙 스테이트(경합 지역)'들까지 제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외교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고 전했다.

볼라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20일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볼라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20일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먼저 젤렌스키 대통령은 20일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만나 인도가 우크라이나의 평화 공식에 동참해줄 것을 호소했다.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두 나라 정상이 대면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CNN에 따르면, 이날 젤렌스키 대통령을 만난 모디 총리는 "우크라이나 전쟁은 전 세계적 문제이며, 단지 경제·정치적 사안이 아니라 인류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이어 "전쟁 종식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겠다"고 강조했다. 다만 무기 지원에 대해선 선을 그었다. 모디 총리는 젤렌스키 대통령과 만난 뒤 자신의 트위터에 "대화와 외교에 대한 우리의 지지를 분명히 표명했고, 계속해서 인도적 지원을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인도는 우크라이나에 인도주의적 지원은 보냈지만,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철수를 축구하고 침략을 비난하는 유엔 결의안에는 기권한 바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히로시마 방문 직전인 지난 19일 사우디아라비아의 제다에서 열린 아랍연맹 정상회담에 참석해 아랍세계의 지도자들에게 러시아의 잔학 행위를 "눈감아 주지 말라"고 촉구했다. 아랍 국가들 역시 지금껏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에 소극적으로 대처해온 곳이다.

마크롱 대통령에 전용기 제공 직접 부탁

젤렌스키의 히로시마 깜짝 등장에 대한 뒷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아사히신문은 20일 젤렌스키가 프랑스 정부 전용기를 타고 일본에 온 것은 지난 14일 프랑스 파리 방문 당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에게 직접 부탁해 이뤄진 것이라고 전했다.

20일 오후 프랑스 정부 전용기로 히로시마 공항에 도착한 볼라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AFP=연합뉴스

20일 오후 프랑스 정부 전용기로 히로시마 공항에 도착한 볼라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AFP=연합뉴스

당시 정상회담에 이어진 만찬 자리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은 히로시마 G7 회의에 직접 참석하고 싶다는 뜻을 밝히며 항공기 준비를 부탁했다. 당시엔 유럽·사우디 순방 등 바쁜 외교 일정으로 G7 직접 참석은 힘들 것으로 알려져있었지만, 수면 아래에는 방일을 위한 조정이 시작된 셈이다.

G7 정상들이 폐막일이 아니라 하루 앞둔 20일 이례적으로 영문 공동성명을 발표한 것도 젤렌스키 대통령 방문의 영향이라는 보도도 나왔다. 통상적으로 공동성명은 마지막 날 공개되지만, 이번에는 폐막 전날인 20일 오후 4시쯤 일본어판 없이 영어로만 먼저 발표됐다. 교도통신은 이에 대해 21일 G7 정상회의에 참석하고 강연에 나설 예정인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이목이 쏠려 공동성명에 대한 관심이 떨어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발표 시점을 앞당겼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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