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에서 알게 된 20대 여성에게 수차례 연락한 50대 남성이 스토킹 혐의로 처벌을 받게 됐다. 1심은 피해자가 받지 않은 ‘부재중’ 연락은 범행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으나, 2심이 이를 뒤집으면서다.
춘천지법 형사2부(이영진 부장판사)는 스토킹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53)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벌금 200만원을 선고하고 스토킹 치료프로그램 40시간 수강을 명령했다고 21일 밝혔다.
A씨는 2021년 11월 울릉도 패키지여행에서 알게 된 20대 여성 B씨에게 사흘간 6차례 전화하고, 1차례 문자메시지를 전송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은 행위 자체는 인정하면서도 혐의를 인정하기에는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A씨가 B씨에게 남자친구와의 스킨십과 관련된 말을 했다고 하더라도 불쾌함이나 불편함을 넘어 불안감이나 공포심을 일으킬 정도에 이르렀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특히 첫 통화 이후에 다섯 차례 더 통화를 시도한 행위를 두고는 정보통신망법과 관련한 대법원 판례를 들어 ‘벨 소리’를 상대방에게 송신된 음향으로 볼 수 없고, ‘부재중 전화’ 표시는 통신사의 부가서비스에 불과해 글이나 부호를 도달하게 한 행위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전화 받을 때만 범죄 성립되는 이상한 결과 초래”
항소심은 그러나 B씨가 A씨의 연락을 받게 된 경위에 주목하면서 이런 판단을 뒤집었다.
B씨는 “A씨가 식사 자리에서 ‘절대로 먼저 전화하는 일 없다’며 연락처를 요구하고, ‘조폭 생활을 오랫동안 했다’는 말을 들은 상황에서 다음 일정에서도 A씨를 계속 마주쳐야 해 연락처를 줬다”고 일관되게 진술했다.
그렇게 이뤄진 통화에서 A씨는 B씨에게 남자친구와의 스킨십을 집요하게 캐물었다. B씨가 거부 의사를 밝히자 되레 ‘이런 질문을 하는 숨은 뜻을 파악하지 못하느냐’고 묻기도 했다.
재판부는 결국 B씨가 A씨의 전화를 거부하고 여행 내내 A씨를 피해 다니기에 이른 경위를 살펴봤을 때 A씨가 상당한 불안감과 공포심을 느꼈다고 결론 내렸다.
또 전화기가 만들어낸 벨 소리나 진동음, 부재중 전화 표시도 스토킹 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전화를 받아야만 스토킹 범죄가 성립한다고 해석한다면, 발신 행위 자체로 불안감이나 공포심을 갖게 됐음에도 전화를 받을 때만 범죄가 성립되는 이상하고도 불합리한 결과가 초래된다”고 판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