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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머슨 스트링 콰르텟 47년 여정 마지막 무대, “변화가 신선함 유지 비결”

중앙일보

입력

올해 은퇴하는 47년 전통의 세계적인 실내악단인 에머슨 스트링 콰르렛. 이달 중 한국 관객들을 위한 고별 내한공연을 한다. 왼쪽부터 필립 세처, 유진 드러커(바이올린), 폴 웟킨스(첼로), 로렌스 더턴(비올라). 사진 오푸스

올해 은퇴하는 47년 전통의 세계적인 실내악단인 에머슨 스트링 콰르렛. 이달 중 한국 관객들을 위한 고별 내한공연을 한다. 왼쪽부터 필립 세처, 유진 드러커(바이올린), 폴 웟킨스(첼로), 로렌스 더턴(비올라). 사진 오푸스

그래미상 아홉 번, 그라모폰상을 세 번 수상했다. 실내악단 최초로 클래식 연주가의 영예인 에이버리 피셔상을 받았다. 도이치그라모폰(DG)에서 녹음한 앨범만 시디 55장에 달한다.

그래미·그라모폰상 섭렵한 세계적인 명문 악단 #25일 광주, 26일 대전, 27일 서울, 28일 부천 공연 #"실내악은 내면의 소리, 4중주는 네 명의 토론 같아" #해산 후 독주, 교육, 페스티벌 등 활동 예정

미국의 현악 4중주단 에머슨 스트링 콰르텟이 그 주인공이다. 시인이자 철학자 랠프 월도 에머슨에서 명칭을 따서 1976년 뉴욕에서 창단했다. 비올라와 첼로 파트의 멤버 교체를 거쳐 현재 유진 드러커, 필립 세처(바이올린), 로렌스 더턴(비올라), 폴 웟킨스(첼로)로 꾸려져 있다.

이 팀이 해산을 선언하고 47년 여정을 마무리하는 월드 투어를 하는 중이다. 이번 달에 한국에 들른다. 25일 광주아시아문화의전당, 26일 대전예술의전당, 27일 서울 예술의전당, 28일 부천아트센터에서 열리는 공연이 국내에서 이들을 볼 마지막 기회다. 바이올리니스트 필립 세처는 중앙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영원한 건 없다. 47년간 함께한 연주는 물리는 법이 없지만 여행에 지쳐갔다. 사람들이 ‘더 일찍 관뒀어야 해’ 하기 전에 스스로 멈추고 싶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내한공연 프로그램은 퍼셀의 ‘샤콘느’, 모차르트 K.421, 하이든 Op.33-5, 베토벤 Op.59-2다. 이에 대해 세처는 “초기 바로크(퍼셀)에서 고전주의(하이든·모차르트)를 지나 획기적인 천재 베토벤이 이끄는 낭만주의의 관문에 이르는 여행”이라고 설명했다.

부모님이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의 단원이었던 세처는 그곳의 악장이었던 조지프 깅골드와 라파엘 드루이안에게 바이올린을 배웠다.

“매주 엄청난 오케스트라 사운드를 들었죠. 가끔은 음악감독 조지 셸의 지휘도 봤습니다. 유진 드러커도 부친이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오케스트라 단원이었죠. 그래서 오페라 쪽은 저보다 훤해요.”

에머슨 스트링 콰르텟의 필립 세처는 "4중주는 연주자 네 명 간의 토론과도 같다"고 했다. 사진 오푸스

에머슨 스트링 콰르텟의 필립 세처는 "4중주는 연주자 네 명 간의 토론과도 같다"고 했다. 사진 오푸스

세처와 드러커는 줄리아드 음악원에서 거장 오스카 셤스키에게 배웠다. 당시 학생 4중주단이 에머슨 스트링 콰르텟의 전신이 됐다. 4중주단 결성 뒤에는 줄리어드 4중주단의 바이올리니스트였던 로버트 만에게 실내악을 익혔다. 세처는 “연주하고 녹음하며 배운 경험을 후배들과 나누는 건 책임이자 사명”이라고 했다. 그에게 젊은 후배들을 위한 충고를 부탁했다.

“무엇보다 자신의 악기를 잘 다뤄야 합니다. 4중주단은 각자 할 수 있는 만큼만 잘할 수 있습니다. 콩쿠르에 나가기 전에 많은 곡을 익히고 연주하세요. 책도 많이 읽으세요. 작곡가에 대해 잘 알아두세요. 스스로 비난하지 마세요. 그리고 유머 감각을 지니세요!”

세처는 현악 4중주의 매력으로 “친밀감과 내면의 힘”을 꼽았다. “가끔은 네 명의 인물이 등장하는 연극이나 무용 같아요. 멤버가 제각기 토론하는 듯한 연주는 오케스트라에서는 접하기 힘들죠.”

에머슨 4중주단 단원들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은 무엇일까. 세처는 9·11 직후 링컨센터에서 열린 공연을 꼽았다.
 “삶을 온통 뒤흔들어놓은 비극에 슬퍼하는 사람들을 위한 무료 공연이었습니다. 애끓는 마음을 자아내는 바버의 ‘아다지오’와 제1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작곡된 버르토크의 현악 4중주 2번을 연주했죠. 연주가 끝났을 때 거기 있던 모든 이들의 눈시울이 젖어 있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였고요.”

47년간 꾸준하게 앙상블을 이어 온 비결은 무엇일까. 세처는 “신선함을 유지시켜주는 변화”를 들었다.
"어떤 곡을 연주하든 완전히 만족한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같은 곡을 반복 연습해도 늘 변화를 주었죠. 대개 다이내믹이나 보잉(활질)에 관한 사소한 바꿈이었지만 가끔씩 악장 전체의 템포를 바꾸는 큰 변화도 있었어요. 그래서 우리 리허설은 늘 즐겁고 도전적이며 창조적인 과정이었습니다.”

에머슨 스트링 콰르텟의 2014년 공연 모습. 사진 Ralph Daily

에머슨 스트링 콰르텟의 2014년 공연 모습. 사진 Ralph Daily

에머슨 스트링 콰르텟은 동시대 작곡가들과 호흡하며 그들의 위촉 작품도 많이 연주했다. 세처는 "살아있는 작곡가와 동시대 작품을 연주하며 옛 작곡가의 해석에도 영향을 받는다"고 했다. “옛 작곡가들도 이 땅을 거닐던 인간이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며 “모든 작곡가들은 태어났고, 어린아이였고, 실패·불안과 싸웠고, 성공했고, 다시 실패했고, 사랑했고, 성장했고 고통·질병을 겪었고, 죽었던 사람이다. 음표를 연주할 때 작품을 만들어낸 인간과의 연결고리를 잊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해산 후 에머슨 스트링 콰르텟 멤버들은 스토니 브룩 대학교 등에서 교육 활동에 전념할 예정이다. 각자 여러 페스티벌의 예술감독을 맡는다. 네 명이 한꺼번에 무대에 서는 일은 없겠지만, 솔로·듀오·트리오로 연주할 예정이다.

“우리는 계속해서 바쁜 시간을 보낼 겁니다. 그리고 가장 친한 친구로 남을 거예요.”

류태형 객원기자·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ryu.taeh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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