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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형’ 찬사 VS ‘페이퍼’ 비판…몸값 커진 SMR 관건은

중앙일보

입력

한덕수 국무총리가 9일(현지시간) 오스트리아 빈 국제원자력기구(IAEA) 로비에 전시된 한국형 SMR(소형 모듈 원전) '스마트'의 모형을 보며 라파엘 그로시 IAEA 사무총장의 설명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한덕수 국무총리가 9일(현지시간) 오스트리아 빈 국제원자력기구(IAEA) 로비에 전시된 한국형 SMR(소형 모듈 원전) '스마트'의 모형을 보며 라파엘 그로시 IAEA 사무총장의 설명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대형 원전 100분의 1 크기인 소형모듈원자로(SMR)가 새로운 수출 먹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한국·미국 기업 간 MOU(업무협약), 원전 생태계 복원 등을 거치면서 '미래형 원전' SMR의 몸값이 높아졌다. 다만 상용화까진 갈 길이 남은 만큼 개발 속도와 경제성이 관건이 될 거란 전망이 나온다.

SMR 사업화는 최근 급물살을 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국빈방문 기간이던 지난달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한·미 첨단산업·청정에너지 파트너십' 행사의 핵심은 SMR이었다. SK이노베이션·현대건설·두산에너빌리티 등이 참여한 MOU만 3건 체결됐다. 양국 기업이 함께 사업 추진, 수출 확대 등에 나서기로 한 것이다.

지난 4일 경북 울진군은 민간 발전사인 GS에너지와 MOU를 맺었다. 두 곳이 손을 잡고 울진 원자력수소 국가산단 내 미국 뉴스케일파워 SMR 도입 검토 등에 나서기로 했다. 8일 국회에선 SMR 파운드리 구축을 다룬 여당발(發) 토론회도 열렸다.

다른 한편에선 '장밋빛 미래'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이달 초 에너지전환포럼은 SMR을 두고 경제성이 부족하고 설계 도면으로만 존재하는 '페이퍼 원전'이라고 꼬집었다. 연료인 고순도 농축 우라늄(HALEU)을 러시아에 의존하는 점도 지적했다.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지난달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왈도프 아스토리아호텔에서 열린 '한미 첨단산업·청정에너지 파트너십 MOU 체결식'에 참석해 인사말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지난달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왈도프 아스토리아호텔에서 열린 '한미 첨단산업·청정에너지 파트너십 MOU 체결식'에 참석해 인사말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형 원전보다 쓰임새 다양…국제 경쟁선 다소 뒤져

SMR은 말 그대로 작은 모듈에 원자로를 축소한 형태로 수백㎿ 규모의 전력을 생산한다. 전 세계 80여 종의 개발이 진행되는 중이다. 평가가 엇갈리긴 하지만 안전성이 높고, 건설비가 적은 데다 수소 생산·담수화 등 다양한 활용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꼽힌다. 폴란드·체코 등에 수출을 추진 중인 대형 원전과 다른 시장으로 해외 진출을 이끌 수 있는 셈이다. 영국 국가원자력연구원(NNL)은 2035년 SMR 시장 규모가 최대 630조원에 달할 거란 예측을 했다.

원전 업계선 아프리카처럼 대규모 전력 공급이 어려운 지역, 제철 등 특정 공정에 전력이 필요한 기업, 원전 건설 부담이 큰 선진국 등에 SMR이 다양하게 쓰일 것으로 본다. 향후 들어설 국내 반도체 클러스터 등에 전력 공급용으로 쓸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그러나 국제 경쟁에선 미국 등이 앞서 나가고, 한국은 다소 뒤진 모양새다. 2012년 세계 첫 인허가를 받은 '스마트(SMART)' 개발에 일찍이 뛰어들었지만,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 등을 거치며 관련 연구가 정체됐다. 문주현 단국대 에너지공학과 교수는 "미국은 2020년대 후반에 상용화가 이뤄지고, 한국형 SMR은 빠르면 30년대 초반에 건설·운영될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미국 기업 뉴스케일파워의 SMR 발전소 조감도. 연합뉴스

미국 기업 뉴스케일파워의 SMR 발전소 조감도. 연합뉴스

'탈원전' 벗어난 원전업계 준비 가속…정부는 R&D 지원

정부는 세계 시장 조기 진입을 위한 경쟁력 확보에 뛰어들었다. 새로운 i-SMR(혁신형 소형모듈원자로) 사업을 통해 올해부터 6년 동안 핵심기술 연구개발(R&D) 등에 3992억원을 쏟아붓는다. 15일엔 2조원 규모의 '원전산업 R&D(연구개발) 추진전략'을 내놓고 차세대 원전 시장을 선도할 R&D를 중점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SMR 설계와 첨단 제조기술 등을 키워 초격차 기술을 확보하겠다는 목표다.

미국 측과 맺은 MOU 후속 작업도 직접 챙길 예정이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한국수력원자력·SK이노베이션이 참여한 MOU는 미국 테라파워 측과 1년간 협상을 거쳐 사업 참여 범위, 지분 투자 등을 결정하는 만큼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탈원전에서 벗어나 기지개를 켜는 국내 기업들도 SMR 관련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지난 15일 신한울 3·4호기 주기기 제작 착수식을 가진 두산에너빌리티는 신한울 외에 내년 미국발(發) SMR 수주 물량도 더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SMR 생산 능력 확대를 위한 추가 공장 마련도 검토하고 있다.

협력업체도 기대감을 내비친다. 지난 10일 찾은 경남 김해의 세라정공 공장 한가운데엔 SMR 내부에 들어갈 커다란 장비가 놓여 있었다. 이 회사 김곤재 대표는 "나중에 쓰려고 미리 만든 것"이라면서 "SMR을 본격적으로 하면 많이 바빠질 것이다. 그에 대비한 설비 투자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이던 2021년 11월 대전의 한국원자력연구원을 방문해 SMR 모형을 살펴보고 있다.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이던 2021년 11월 대전의 한국원자력연구원을 방문해 SMR 모형을 살펴보고 있다. 뉴시스

"빠른 인허가, 꾸준한 지원 있어야 역전 가능" 

다만 풀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제일 중요한 건 경제성과 개발 속도다. SMR은 비슷한 출력 용량을 가진 화력발전소 등보다 발전 단가가 높으면 시장에서 밀릴 가능성이 있다. 윤종일 KAIST 원자력양자공학과 교수는 "출력이 적은 SMR은 경제성을 담보하느냐가 최대 이슈다. 그러려면 모듈 제조 혁신·공기 단축 등이 필수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국형 모델의 빠른 개발과 제도화 여부도 수출 성패를 좌우할 전망이다. 문주현 교수는 "정부에서 대형 원전처럼 SMR도 빨리 인허가를 해주는 게 중요하다. 처음엔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꾸준한 R&D(연구개발) 지원 등이 이뤄져야 경쟁국들을 역전할 수 있다"고 밝혔다.

대미 협력 등은 '변수'…"독자 개발 병행해야"

민·관 관계 설정과 미국과의 협력 수준도 주요한 변수로 꼽힌다. 미국은 설계, 한국은 건설·운영 등에서 강점을 가질 것으로 보여 적극적 협업이 필요하단 주장과 자체 개발을 통한 독자 수출 필요성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엇갈린다. 한수원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신산업'에 목마른 민간 기업의 참여가 국내 경쟁 활성화 차원서 확대돼야 한다는 주문도 나온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보고서를 통해 미국과의 SMR 제3국 수출 공동 추진, 연료 공급망 공동 구축 등을 내세웠다. 추광호 전경련 경제산업본부장은 "미국이 SMR을 중심으로 동맹국과 협력을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하는 만큼 우리도 실리와 명분을 모두 챙길 수 있는 액션플랜 마련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한국은 탈원전을 거치면서 공급망 타격이 컸지만 여전히 원전 업계의 경쟁력이 살아있다. 미국 기업들과 SMR 협력에 나서는 한편, 미래의 원전 수출 상품군을 추가한다는 측면에서 독자 개발도 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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