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게 없다" 꿀벌 실종 미스터리…2000마리 가슴 추적 칩 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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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정수종 교수 연구팀이 꿀벌의 활동을 분석하기 위해 꿀벌의 등에 마이크로 칩을 붙였다. 전민규 기자

서울대 정수종 교수 연구팀이 꿀벌의 활동을 분석하기 위해 꿀벌의 등에 마이크로 칩을 붙였다. 전민규 기자

지난달 28일 서울대학교의 한 건물 옥상. 방호복을 입은 사람들이 벌통 앞에 모여서 핀셋으로 조심스럽게 꿀벌들을 잡았다. 어렵게 잡은 벌에는 가로·세로 1.6㎜ 길이의 초소형 칩을 붙인 뒤에 다시 풀어줬다. 벌은 날갯짓하면서 빠르게 벌통 안으로 들어갔다.

“무선 주파수 식별장치(RFID)인데요. 머리·가슴·배 중에 가슴 부위에 붙여야 비행을 하는 데 방해가 안 돼요. 이 장치를 통해서 꿀벌들이 언제 먹이 활동을 하러 나갔다가 들어오는지 확인할 수 있죠.” 

조유리 서울대 기후연구실 연구원이 칩을 붙이면서 실험에 관해 설명했다. 서울대 정수종 교수 연구팀은 한국세계자연기금(WWF-Korea)의 지원을 받아 올봄부터 서울과 제주에서 꿀벌의 활동을 추적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를 위해 2000마리 가량의 꿀벌을 하나하나 잡아서 칩을 붙였다. 벌통 안에는 온도와 습도, 미세먼지, 이산화탄소 농도 등을 추적할 수 있는 센서가 부착돼 있었다. 조 연구원은 “RFID를 통해서 갑자기 이상저온이나 고온이 나타나거나 폭우가 발생했을 때 꿀벌의 활동성이 얼마나 저하되는지 등을 확인할 수 있다”며 “벌통 내부의 환경이 어떻게 변하는지도 살펴보고 있다”고 했다.

꿀벌 200억 마리 실종…정확한 원인 몰라

조유리 서울대 연구원이 벌통에 있는 꿀벌을 살펴보고 있다. 전민규 기자

조유리 서울대 연구원이 벌통에 있는 꿀벌을 살펴보고 있다. 전민규 기자

연구팀이 꿀벌의 활동을 추적하는 건 지난해부터 심각해진 꿀벌 대량 실종 사태의 원인을 밝혀내기 위해서다. 한국양봉협회에 따르면 올해 전국 농가 1만8826곳의 122만4000개 벌통에서 꿀벌이 사라졌다. 피해율은 56.3%로 절반이 넘는다. 벌통당 2만 마리 정도가 산다는 걸 고려하면 200억 마리가 넘는 꿀벌이 자취를 감추거나 폐사한 것이다. 지난해 39만517개 벌통에서 78억 마리 가량 없어진 지난해보다 피해가 2배 이상 커졌다.

이런 꿀벌군집붕괴현상(CCD)의 정확한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환경단체 그린피스와 안동대 산학협력단은 18일 공개한 ‘벌의 위기와 보호정책 제안’ 보고서에서 “기후변화로 인한 생태 엇박자 현상, 밀원 수 부족으로 인한 영양실조, 살충제 및 기생충 등 서로 다른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 벌이 생존하기 어려운 환경이 된 것으로 분석한다”고 밝혔다.

미세먼지가 꿀벌 비행 방해…벌통 내부에도 영향

꿀벌 무리 사이에 추적 칩을 부착한 꿀벌이 있다. 전민규 기자

꿀벌 무리 사이에 추적 칩을 부착한 꿀벌이 있다. 전민규 기자

연구팀은 특히 미세먼지와 황사 등 대기오염이 꿀벌에 미치는 영향에 주목하고 있다. 연구팀은 앞서 2021년에 발표한 논문에서 미세먼지 농도 증가로 꿀벌의 길 찾기 능력에 문제가 생긴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고농도 미세먼지 발생 전후로 꿀벌의 비행시간을 추적 조사한 결과, 미세먼지 농도가 높아지면 꿀벌이 꿀을 얻기 위해 꽃을 찾는 시간이 1.7배가량 증가했다. 봄철에 황사나 대기오염 등의 영향으로 고농도 미세먼지가 빈번하게 나타나면서 꿀벌의 먹이 활동에도 지장이 생길 수 있다는 의미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미세먼지는 외부에서 꿀을 모으는 벌의 비행 능력을 떨어뜨릴 뿐 아니라 벌집 안에서 생활하는 꿀벌의 건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번 연구에서도 외부의 미세먼지 농도가 높을수록 벌통 내부의 미세먼지 농도도 함께 상승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조 연구원은 “벌통 내부의 온도가 높아지면 꿀벌들은 날갯짓을 통해 온도를 낮추는 등 온도와 습도를 스스로 감지해서 조절하지만, 미세먼지는 꿀벌이 공기청정기처럼 농도를 감지해 낮출 수 없다”며 “벌은 온몸으로 숨을 쉬기 때문에 신체적인 문제에 봉착해 대기질이 해소된 이후에도 비행 능력을 회복하지 못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상기후도 꿀벌에 재앙…“꿀벌이 마주친 현실 밝혀낼 것”

서울대 정수종 교수 연구팀이 꿀벌의 활동을 분석하기 위해 꿀벌의 등에 마이크로 칩을 붙였다. 전민규 기자

서울대 정수종 교수 연구팀이 꿀벌의 활동을 분석하기 위해 꿀벌의 등에 마이크로 칩을 붙였다. 전민규 기자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더 잦아진 이상기후 현상이 꿀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도 연구팀이 밝혀내야 할 과제다. 올해에도 이상고온으로 인해 봄꽃이 빨리 피고 지면서 동면에서 깬 벌들이 채집할 꿀과 화분이 부족해지는 ‘시간적 불일치’ 현상이 나타났다. 극한 기상이 잦아지면서 꿀벌이 영양 스트레스를 받아 면역력이 약해졌다는 분석도 있다. 연구에 공동 참여하고 있는 임윤규 제주대 수의대 명예교수는 “갑자기 추워지거나 폭풍이 불어서 꽃이 다 떨어지다 보니 벌한테는 재앙이 되고 있다”며 “영양이 좋아야 꿀벌도 건강한데 기후적으로 생육에 아주 불리한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연구 책임자인 정수종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여기저기서 꿀벌의 위기를 말하지만 사실 과학적으로 꿀벌이 마주친 현실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다”며 “이번 연구를 통해 꿀벌이 기후변화에 얼마나 취약하고 점점 강해지는 폭염이나 극한 기상에 버틸 수 있을 것인지 등을 하나하나 확인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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