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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 노재팬? 고재팬!…"여권만 챙기고 계획도 없다, 배터질 계획"

중앙일보

입력

SPECIAL REPORT 

일본 오사카 도톤보리의 네온사인으로 ‘입장’하는 대한민국 대전의 1997년생 삼총사. 왼쪽부터 박서현·신미희·김혜인씨. 김홍준 기자

일본 오사카 도톤보리의 네온사인으로 ‘입장’하는 대한민국 대전의 1997년생 삼총사. 왼쪽부터 박서현·신미희·김혜인씨. 김홍준 기자

“여행 계획이요? 그런 건 없어요. 일단 배 터지도록 먹을 거예요.”

어쩌면 이들에게는 오늘이 중요한 걸까. 일본 대도시 도쿄와 오사카로 여행 온 한국의 20대, 30대 얘기다. 코로나19 빗장이 풀린 뒤, 올해 1~3월 전 세계로 출국한 한국 관광객 수는 498여만 명. 이 중 160여 만 명, 그러니까 세 명 중 한 명(32%)이 일본으로 향했다. 그런데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라고 부르는 2030이 그 절반에 가깝다. 이들 2030은 일본에서 어떻게 지낼까. 25명의 한국인 2030을 도쿄와 오사카에서 만났다.

고궁·온천 대신 새로 뜬 명소 찾아

일단 여권만 챙겼다. 지난 11일 도쿄 시부야에서 만난 김형동(21)씨와 김용태(21·이상 서울)씨는 이렇게 ‘번개’로 왔다. 지난 7일 저녁에 “가자”고 했고 8일 아침에 나리타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이들은 ‘번개 일본 여행’의 부활을 몸소 실천했다.

번개 일본 여행이 다시 가능해진 이유는 얽히고설켰다. 지난해 10월 11일 일본 정부가 코로나19로 막아놨던 관광 무비자를 풀었고, 지난달 29일 입국 검역을 없앴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의 정상회담으로 양국 관계가 급속도로 회복 중이다. 몇 년 전부터 이어진 ‘제주도 가느니, 일본 간다’는 심리는 여전하다. 19일 기준 100엔=960원인 환율도 일본행을 부채질하고 있다. 제주에서 1인분 1만9000원짜리 삼겹살을 씹느니, 오사카 도톤보리 강변에서 1600엔짜리 튀김 꼬치를 특제 간장에 적셔 먹겠다는 로망도 작용한다. 한 국내 여행지 관계자는 “여행지 선택은 자유지만, 정말 (우리가) 걱정”이라고 말할 정도다.

“닷새 전에 일본 한번 가보자고 해서 어제 도착했어요.”

오사카 유니버설스튜디오에서 공연 중인 슈퍼 마리오 캐릭터. [AP=연합뉴스]

오사카 유니버설스튜디오에서 공연 중인 슈퍼 마리오 캐릭터. [AP=연합뉴스]

인천에서 도쿄로 날아온 20세 동갑 김현·주예찬씨도 번개 일본 여행을 왔다. 둘 다 다음 달(6월)에 입대를 앞두고 우정 여행을 왔단다. 즉흥적으로 일본에 왔고, 미리 짜놓은 일정도 없었다. 그들은 “그때그때 어디 갈지 정한다”며 “오후에는 쇼핑할까 한다”고 말했다. 두 시간 뒤, 하라주쿠에서 우연히 다시 만난 그들의 손에는 작은 쇼핑백이 들려있었다. 오사카의 하상민(32)과 김성욱(32·이상 경기도 광명)씨도 “내일의 계획은 없다. 그때그때 정한다”고 했다. 무계획이 계획이었다.

이훈 한양대 국제관광대학원 원장은 이에 대해 “젊은 세대는 꽉 짜인 일정을 미리 짜서 그 틀에 맞추기보다는, 디지털에 굉장히 익숙하기 때문에 즉흥적으로 여행 계획을 짜는 경향이 있다”고 밝혔다. 엄지영 삼육대 경영학과 교수는 “50~60대 장년층이 IT기기 이용, 현지 음식 선택이 어려워 패키지여행을 선호하는 반면, MZ세대는 언제 어디서든 일본으로 자유여행을 떠난다”며 “OTA(온라인 여행사) 활성화, LCC(저비용 항공) 증가에다가 IT기기와 SNS를 통한 손쉬운 정보 획득은 MZ세대의 무기”라고 밝혔다. 현지에서 본 일부 2030은 스마트폰으로 킥보드에 접속해 교통수단으로 삼기도 했다.

“그래도 시부야·신주쿠·하라주쿠·아카히바라가 기본 아니겠어요.”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이민규(25)씨는 일본에서 17년간 지냈다. 그는 또래의 한국인 관광객들이 도쿄에서 ‘쇼핑과 먹을거리를 기본으로 즐긴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친구 이영민(25)씨는 “시모키타자와는 구제 패션에 관심 있는 친구들이, 오모테산도는 작은 명품에 관심 많은 친구들이 큰 행복을 찾아 가는 곳”이라고 거들었다. 이민규씨는 “부모와 함께 온 2030이나 고궁·온천에 가지, 맛집·카페에 가거나 새로 뜬 명소를 찾는 친구들이 많다”고 밝혔다.

한국 2030의 새 핫플레이스로 뜬 도쿄 시부야 스카이. 김홍준 기자

한국 2030의 새 핫플레이스로 뜬 도쿄 시부야 스카이. 김홍준 기자

새로 뜬 ‘시부야 스카이’는 시부야 스크램블 스퀘어(2019년 완공)의 46층 옥상, 229m 높이에서 도쿄 시내를 굽어볼 수 있는 전망대다.

계획을 세우고 오는 2030도 있었다. 하지만 기성세대와는 다른 계획이었다. 자신들의 문화를 누리자는 것이었다.

한국의 2030 클럽 매니어들이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 DJ 에릭 프라이즈(스웨덴)다. 친구의 비행기 사고로 투어를 멈췄던 그가 이번에 아시아 투어를 재개했다. 그런데 이번에도 한국은 안 오고 도쿄에서 11~13일에 걸쳐 콘서트를 열었다. 조모(34·광주광역시)씨는 에릭 프라이즈와 함께 하기 위해 바다를 건너왔다. 그는 “아는 동생들도, 그 동생들이 아는 사람들도 수 십명이 왔다”고 말했다. 이들은 1박 2일, 길어도 2박 3일간만 일본에서 지냈다. 공연만 보고 ‘치고 빠지는’ 여행이었다.

안용주 선문대 항공관광학부 교수는 “코로나19 이후 해외여행 트렌드도 단기간, 단거리로 바뀌었다”며 “특히 2030의 경우, 개인의 취미 활동 연장과 확대를 위해 일본을 잠깐 찾는 경우도 많다”고 밝혔다. 인터넷에는 ‘일본 원정 관람법’ ‘일본 공연표 구하기’ 등 한국을 찾지 않는 아티스트의 콘서트를 보기 위한 2030의 ‘팁’들이 10여 년 전부터 떠돌고 있다.

오사카의 한 실내암장에서 만난 32세 송민근씨. 김홍준 기자

오사카의 한 실내암장에서 만난 32세 송민근씨. 김홍준 기자

지난 13일 오사카. “취미인 스포츠클라이밍을 경험하기 위해 왔다”고 김서현(30·서울)과 김세명(29·인천)씨가 말했다. 난바역 근처의 한 실내암장에서였다. 그들은 “저기 다른 한국인 2030도 있는데, 일본인은 양말을 신은 채 암벽화를 신지만, 한국인은 맨발로 이용하는 관행 때문에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미 도쿄 아카히바라의 한 실내암장을 이용한 김정훈(가명·30·서울)씨는 “먼저 다녀간 친구들 말대로 한국보다 짭짤(난도가 높다는 의미)하다”고 했다. 일부 한국 2030 클라이머들은 ‘일본 암장 깨기’라는 명칭도 붙인다. 이들은 “암장 깨기는 암장 경험을 재미있게 하자는 말이지, 무슨 적대감을 갖고 만든 말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송민근(32)씨와 김창원(32·이상 서울)씨는 “힘을 써서 그런지 먹으러 가야겠다”고 말했다.

한국보다 ‘짭짤한’ 실내 암벽 도전도

오사카 도톤보리강 근처에서 튀김 꼬치를 먹으며 즐거워하는 김남혁(맨 왼쪽)씨와 1996년생 친구들. 김홍준 기자

오사카 도톤보리강 근처에서 튀김 꼬치를 먹으며 즐거워하는 김남혁(맨 왼쪽)씨와 1996년생 친구들. 김홍준 기자

역시 일본에서는 먹는 게 남는 걸까. “야키니쿠(한국식 불고기), 글리코(과자의 종류), 다코야키(문어가 든 풀빵), 이치란라멘(돼지 뼈로 육수를 낸 돈코츠 식의 라멘 브랜드), 야키토리(닭꼬치) 등등, 끝까지 먹고 말 것”이라고 박서현(26)·김혜인(26)·신미희(26, 이상 대전)씨가 오사카 도톤보리 네온사인을 배경으로 외쳤다. 김남혁(27)·김상우(27, 이상 수원)씨는 대놓고 “먹으러 일본에 왔다”며 쿠시카츠(꼬치 튀김)를 간장 소스에 푹 담근 뒤 입으로 가져갔다. 물론 그들은 이런 여행 후기를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에 올린다.

이들처럼 일본 대도시 한가운데에서 여행을 즐기기도 하지만, 교외로 빠지는 2030도 있다. 최근 극장판 슬램덩크가 한국에서 흥행하면서 이 애니메이션의 배경이 된 도쿄 남서쪽 가마쿠라를 찾기도 한다. 김모(32·서울)씨는 인스타그램에 가마쿠라 사진을 올리며 “조용하고 호젓한, 그러나 이제는 너무 유명해져 버려 한국의 2030이 많이 찾는 곳”이라고 평했다.

조아라 한국관광문화연구원 연구위원은 “일본은 젊은 세대, 특히 20대가 가장 먼저 경험하는 해외여행지”라며 “2030의 여행 스타일도 쇼핑·먹을거리 위주에서 자연 경관으로 넓어지게 된다”고 분석했다.

서울에서 온 김소연(가명·26)씨도, 김남혁씨도 유니버설스튜디오 앞에서 스마트폰을 꺼내고 검색을 시작했다. “무엇을 할지, 어디로 갈지 검색해 보는 중”이라며 그들은 지하철역으로 들어갔다. 일본에서는 무계획의 계획이 통하는 걸까, 아니면 우리 2030의 능력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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