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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값 뛰는데 두부값 못 올린 꼴…탈원전 탓 한전 채산성 ‘방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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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0호 03면

한전 왜 적자 늪에 빠졌나

한국전력공사가 원유 등 발전 에너지원 가격 상승 등으로 대규모 적자의 늪에 빠졌다. 사진은 나주시 빛가람동에 위치한 한전 본사. [연합뉴스]

한국전력공사가 원유 등 발전 에너지원 가격 상승 등으로 대규모 적자의 늪에 빠졌다. 사진은 나주시 빛가람동에 위치한 한전 본사. [연합뉴스]

2년 3개월 만에 44조원의 적자를 내 ‘부실 공기업’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썼지만, 원래 그런 기업은 아니다. 불과 3년 전인 2020년에는 4조원이 넘는 이익을 냈다. 한국전력공사는 2017년에도 1770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2018년과 2019년에는 각각 2000억원, 1조2700억원가량 적자를 냈지만 2020년 4조863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처음부터 부실 공기업은 아니었다는 얘기다. 그동안 나름대로 ‘공공성’과 ‘수익성’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 온 것이다. 그랬던 한전은, 어쩌다 부실 공기업이 됐을까. 이와 관련 윤석열 대통령은 16일 국무회의에서 “탈(脫)원전과 방만 지출이 한전 부실을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옳은 말이지만 이것만으로 한전의 천문학적인 손실을 전부 설명하긴 힘들다.

한전이 부실 공기업이 된 근본적인 원인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글로벌 에너지 가격 급등과 유연하지 못한 전력(전기) 가격 결정구조에서 찾을 수 있다. 코로나19 직후인 2020년 1분기 배럴당 30달러 선이었던 두바이유는 이듬해 60달러 선까지 뛰었고, 지난해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직후엔 수직 상승해 122달러를 돌파하기도 했다. 유연탄 등 다른 에너지원도 마찬가지다. 2021년 t당 연평균 127달러였던 유연탄은 지난해 348달러로 급등했다. 국제 액화천연가스(LNG) 가격도 t당 156만4800원으로 2021년보다 113% 뛰었다.

한전, 3년 전엔 4조원 넘는 영업이익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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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와 같은 발전 에너지원의 가격 상승은 곧바로 전력생산원가를 끌어 올렸다. 지난해 1월 ㎾h당 154원이던 전력도매가격(SMP)은 9월 233원으로 급등했다. 연말에는 267원까지 치솟았다. 2001년 전력도매시장이 들어선 이후 SMP가 ㎾h당 200원을 넘어선 건 지난해 9월이 처음이었다. SMP는 한전이 동서발전 등 발전 사업자로부터 전력을 매입(도매)하는 가격으로, 사실상 전력생산원가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SMP는 단가가 가장 비싼 LNG에 의해 결정되는데, 에너지원 중에서도 특히 LNG 가격이 폭등했던 게 치명적이었다”고 말했다.

한전은 SMP로 사들인 전력을 자체 공급망을 통해 가정과 기업에 공급·판매(소매)한다. 여기서 문제는 SMP가 올랐다고 한전이 곧바로 전기요금을 인상할 수 없다는 점이다. 한전이 발전 사업자로부터 구매하는 도매시장에선 연료비 변동이 가격에 반영되지만, 최종 소비자에게 판매되는 소매시장에선 정부의 정책적 통제로 가격을 올리기 어려운 것이다. ‘콩’을 사다가 ‘두부’를 만들어 파는데, 두부 값이 콩 값보다 한참 싸다는 얘기다. 팔면 팔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다. 국제 유가가 뛰던 2018~2019년 한전이 적자를 낸 것도 이 때문이다.

이를 막으려면 도매가격 상승에 맞춰 소매가격(전기요금)을 적절히 인상하면 되지만, 문재인 정부는 “인상 요인이 없다”며 한전의 전기요금 인상 요청을 묵살했다. 윤석열 정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전기요금을 올리기 시작했지만 인상 폭은 크지 않다. 반면 주요 나라는 발전 에너지원 가격이 상승세를 타기 시작한 2021년부터 적극적으로 전기요금을 올렸다. 조영탁 한밭대 경제학과 교수(전 한국전력거래소 이사장)는 “발전 에너지원 가격이 오르면 소매가격이 오르는 건 당연한 건데 소매가격을 정부가 직접 정하는 구조여서 한전의 부담이 가중된 것”이라고 말했다.

한전 부실의 1차적 요인은 이처럼 외부 변수와 경직된 소매가격 책정 구조에 있다. 그렇더라도 코스피 시가총액 27위 기업(18일 기준)이 이렇게까지 위기에 취약하다는 점은 얼른 납득하기 어렵다. 여기서 등장하는 또 다른 원인이 문 정부의 탈원전 정책과 방만 지출이다. 문 정부는 상대적으로 발전 비용이 저렴한 원전 비중을 줄이고, 값비싼 신재생에너지와 LNG 비중을 늘렸다. 문 정부 들어 원전 이용률은 조금씩 상승했지만, ‘에너지믹스(발전원별 구성비율)’에서 원전이 차지한 비중은 2016년 30%에서 2021년 27.4%로 감소했다. 반면 같은 기간 신재생에너지 비중은 4.8%에서 7.5%로 증가했다. 한전의 신재생에너지 구입 가격은 ㎾h당 197원(2021년 기준)으로 원전(52원)의 3배가 넘는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해 6월 “에너지믹스 변화와 요금 인상 억제 등에 따라 (한전) 비용 상승 요인이 누적된 건 사실”이라고 시인했다. 주무부처가 원전 비중 감소로 인해 한전의 채산성이 떨어졌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윤 대통령이 16일 “과학에 기반하지 않고 정치 이념에 매몰된 국가 정책이 국민에게 어떤 피해를 주는지 여실히 보여준다”고 비판한 것도 이 때문이다. 김경식 ESG네트워크 대표는 “신재생에너지는 초기 투자비용이 많이 들어 발전 단가가 비싼 편”이라며 “신재생에너지도 늘려가야 하는 건 맞는데, 그러려면 비용이 저렴한 원전을 늘리면서 신재생에너지를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에너지 가격 안정돼 3분기 흑자 기대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방만 지출로 거론되는 대표적인 예는 한전공대(한국에너지공대) 출연금이다. 한전과 10개 계열사는 문 정부의 공약이었던 한전공대 개교를 위해 2020년부터 2022년까지 3년간 총 1724억원의 출연금을 냈다. 올해에도 1599억원을 2024년과 2025년에는 각각 1321억원, 743억원을 출연해야 한다. 이와 관련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11일 국회에 출석해 “한전 상황이 워낙 어렵기 때문에 한전공대에 출연하는 것도 전면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며 출연 축소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다.

정부 지침을 넘어선 주택자금 사내대출 등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송언석 의원(국민의힘)에 따르면 지난해 한전은 직원 570명에게 시중보다 연 3%가량 싼 연 2.5~3%의 금리로 최대 1억원을 빌려줬다. 하지만 이는 ‘공공기관의 혁신에 관한 지침’에 어긋난다. 기재부는 2021년 공공기관 방만 경영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시중 금리보다 낮은 금리로 주택 자금을 빌려줄 수 없도록 지침을 만들었다. 대출 한도도 7000만원으로 제한했다.

한전의 대규모 손실은 단순히 한전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한전은 지난해 적자를 내자 전력 송·배전망 유지·보수 예산을 5년간 2조원가량 줄이기로 했는데, 노후 송·배전망을 제때 손보지 않으면 대규모 정전 등 국가 재난 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 2019년 4월 강원 고성과 속초 일대에서 발생한 산불도 송·배전망 노후화가 원인이었다. 운영자금 마련을 위해 한전이 채권을 발행하면서 시중 유동자금을 빨아들이고 있는 것도 문제다. 한전은 지난해에만 37조2000억원, 올해 들어 벌써 10조3500억원의 채권을 발행했다. 회사채 시장에서 한전채는 은행채와 함께 초우량채로 분류돼 투자자들에게 인기가 많다. 한전채가 대거 나오면서 일반 기업채는 미매각 사태가 속출하고 있다.

다행인 건 소폭이나마 전기요금을 인상한 데다 한전의 자구노력, 에너지원의 최근 가격 하락으로 손실 규모가 줄어들 전망이라는 점이다. 국내 도입용 LNG 현물 시세는 연초 대비 40% 가량 내렸다. 국제유가도 지난해 말부터 안정세를 보이며 최근 70달러대까지 하락했다. 이 덕에 5월 SMP(14일까지)는 138.2원으로 지난해 말 대비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전기요금 인상과 에너지원 가격 하락, 비용 감축 효과로 한전의 3분기 영업이익은 흑자 전환이 기대된다는 게 정부의 관측이다. 증권가에서도 한전의 3분기 흑자 전망을 유력하게 보고 있다. 박광래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한전은 영업비용 감소로 올해 3분기에는 흑자 전환이 가능할 전망”이라며 “에너지 가격 하향 안정화와 SMP 하락으로 영업비용이 지난해 동기보다 6.9% 줄어들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전쟁과 같은 외부 변수로 에너지원 가격이 뛰면 한전은 또 다시 대규모 적자에 내몰릴 수밖에 없다. 유 교수는 “현재 원전 이용률은 사실상 최대치”라며 “원전을 추가로 짓는데 13년가량 걸리기 때문에 당분간은 에너지원 가격이 안정되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위기 대응 능력을 기르는 것과 동시에 SMP 제도 보완 등을 서둘러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조 교수는 “지금은 한전이 발전 사업자로부터 한 번에 전력을 구매하고 있는데, 이 같은 방식은 에너지원 가격 변동성이 클 때 특히 리스크가 커진다”며 “한전과 발전 사업자 간 자유 계약이나 발전원별, 기간별 계약 등을 통해 리스크를 줄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종배 건국대 전기공학과 교수는 “발전원별 경매를 통한 가격 입찰 방식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며 “발전 사업자가 원가에 마진을 붙여 가격을 제안하는 형태인데, 이 같은 방식을 서둘러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르면 연말 제주에서 신재생에너지에 한해 가격 입찰 방식을 시범운영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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