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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 칼럼] 제3신당이 성공하려면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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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0호 31면

이정민 칼럼니스트

이정민 칼럼니스트

제3신당 창당을 꿈꾸는 사람들 사이에 1985년의 신한민주당(신민당) 돌풍이 성공사례의 교본처럼 거론된다. 12대 총선을 불과 25일 남기고 창당해 제1야당(67석)으로 우뚝 섰으니 전율을 느끼는 게 당연하다. 양김(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이 정치 규제에 묶여 있었고 후보를 내지 못한 지역이 많았지만, 서울에선 신민당 후보 전원(14명)이 당선될 정도로 파란을 일으켰다. 그것도 서슬 퍼런 신군부 치하에서 말이다. 예상 밖 ‘기적’은 독재 정치-관제 야당의 정치판에 염증을 느낀 국민들에게 자신들이 대안이란 희망과 믿음을 줬기 때문에 가능했다. ‘민주화’라는 시대적 과제를 정확히 제시했고 대통령 직선제 개헌, 언론기본법 폐지 등 목숨을 건 치열한 노력에 국민들도 전폭적 지지를 보낸 것이다.

25일 만에 제1야당 된 신민당 돌풍
‘대안세력’ 믿음 줘 국민 지지 받아
지금의 위선·무능 정치 대체하려면
도덕성과 실력 갖춘 새인물 발굴을

선데이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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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정치는 속된 말로 국회의원에게 ‘일자리’ 만들어주는 걸로 전락했다는 빈축을 산다. 되는 일도, 안 되는 일도 없다. 정쟁과 편가르기의 관성에 빠져있다. 비호감 정치판을 바꾸자는 신당 논의가 오가고 있다고 한다. 금태섭 전 민주당 의원이 ‘수도권 30석’을 내건 신당 창당을 공식화하면서 대중의 관심도 높아졌다. 그러나 이렇다 할 세 결집 양상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한 야당 의원은 “정치에 대한 반감이 극도로 표출돼 외부의 압박에 의해 에너지가 모이면 용기를 얻은 정치인들의 신당 규합 움직임이 표면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필요성엔 공감하면서도 ‘수박’ ‘내부 총질’로 낙인 찍힐까 주저하는 관망파가 많다는 얘기다.

거대 양당 기득권 체제의 안온함을 누리면서 새판짜기를 한다는 건, 사실 어불성설이다. 신민당 돌풍은 ‘정치 공학’이란 이름으로 둔갑한 탁상공론식 머리 굴리기로 나온 게 아니지 않는가. 정치를 바꾸고 독재를 끝내고 국민을 행복하게 하겠다는 신념과 용기의 결과물이다. 경찰의 불심검문에 쫓기며 쪽방에 모여 토론을 벌이고, 인재를 찾아 정책과 공약을 고심한 열정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며칠 전 태국 총선에선 40대 지도자 피타 림짜른랏이 이끄는 전진당이 압승을 거둬 20년 넘게 군부와 탁신 일가가 분점해 온 양강 구도를 무너뜨렸다. 태국은 입헌군주국이지만 군부가 절대 권력을 휘두른다. 신성한 존재인 왕이 춤추는 장면이 나온다는 이유로 영화 ‘애나 앤드 킹’의 상영이 금지되고 왕실을 비판하는 파일을 공유한 여성에게 45년 징역형을 때리는 나라다. 전진당은 여기에 정면으로 맞섰다. 성역시돼 온 왕실모독죄 폐지와 징병제 개혁을 당당하게 들고나와 변화를 갈망하는 유권자의 선택을 받았다. 54석의 군소 야당에서 일약 151석의 제1당에 올랐다. 연정 구성등 난제가 남아있지만 가위 선거혁명이라 할 만하다.

대통령 탄핵과 정권교체 이후에도 우리 정치는 길을 잃고 표류 중이다. 성장의 엔진 소리는 점점 희미해지고 청년실업, 살인적인 고물가와 부동산 가격, 자산 양극화와 부(富)의 편중, 성·계층·세대 갈등, 패자부활전 없는 숨막히는 정글사회가 내뿜는 독소로 나라가 중병을 앓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자살률과 가장 낮은 출산율이 10년 넘게 이어지고 있지만, 해결할 의지나 능력이 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자신의 재선과 자당의 집권에만 관심이 쏠려있을 뿐이다. 총선이 가까워오면서 더욱 해괴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미 국민적·사법적 판단이 내려진 정치적 인물들이 무슨 책방이다, 다큐멘터리다, 토크쇼다 하며 정치적 부활을 노린다. 두 걸음, 세 걸음 앞으로 내달려도 모자랄 판에 이 무슨 신파극인가. 그들이 부활하면 국민들 삶이 지금보다 나아지기라도 한다는 말인가. 국민들 염장 지르는 뻔뻔한 일들이 벌어지니 아직 무르익지 않은 신당 논의가 벌써 주목을 받는다.

신당 운동의 성공 여부는 인재 영입에 달렸다. 공정과 정의를 부르짖으면서 비리와 부정을 저지르는 위선, 권력자 비위 맞추기에 급급한 무소신과 무능을 대체할 도덕성과 실력을 갖춘 세력을 전면에 내세우는 일이다. 다행히도 한국은 ‘인재 부국(富國)’이다. 세계적 수준의 지식과 네트워크,도덕성과 전문성을 갖춘 고수들이 곳곳에 정말 많다. 삼고초려, 아니 십고초려를 해서라도 역량 있는 인재들을 앞세우고 이들의 경륜과 지혜를 빌리길 제언한다. 겉만 번지르르한 반짝 스타나 유명인을 영입인사로 포장하는 깜짝쇼는 수명을 다했다. 그런 방법으론 문제해결을 할 수 없다는 걸 이젠 모두 안다.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신당의 목표와 가치를 명확히 제시하고 이를 실행하기 위한 비전과 정책을 하나씩 제시할 때 국민들의 신뢰가 쌓일 것이다. 학자금 무이자 대출 같은 포퓰리즘 선동이 아니라 청년들의 앞길을 열어줄 수 있는 근본적이고 실질적인 해법 마련부터 고민하라는 것이다. 작은 것부터 하나씩 합리적 방안을 제시해 실력을 보이라는 것이다. 쉬운 길이 아니다. 몇 년이 걸릴 수도 있다. 그러나 민심에 조응하려는 열정과 진정성을 국민들이 인정하고 대안세력으로 여긴다면 정치판을 바꿀 수 있다.

이런 노력 없이 공천에 밀려난 낙천자들이나 자리 욕심으로 정치권을 기웃대는 낭인들끼리 헤쳐모여 하는 신당은 환영받지 못할 것이다. 모험을 감행할 강단과 용기 없이 얄팍한 정치공학만을 앞세운 신당 운동이라면 접는 게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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