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에라스무스’ 프로그램 추진, 대학 위기 타개해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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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0호 16면

장제국 신임 대교협 회장

장제국 대교협 신임 회장은 대학의 위기 타개 방안으로 국제 교환학생 확대와 외국인 유학생에 대한 취업연계 비자 도입을 제시했다. 최영재 기자

장제국 대교협 신임 회장은 대학의 위기 타개 방안으로 국제 교환학생 확대와 외국인 유학생에 대한 취업연계 비자 도입을 제시했다. 최영재 기자

‘벚꽃 피는 순서대로 대학이 문닫는다’는 말이 더 이상 우스개로 들리지 않는 시대다. 지난달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 회장에 취임한 장제국 회장은 “이대로라면 지방대의 위기 차원을 넘어 지역 소멸을 걱정해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2011년부터 부산동서대 총장으로 재임한 이력을 감안하면 그의 말은 공연한 엄살로 들리지 않았다. 지난 17일 서울 금천구 대교협 사무실에서 만난 장 회장은 대뜸 “한·일관계가 회복되고 있어 다행이다. 과거를 직시하되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며 “최근의 양국 관계 개선 움직임을 대학 교류 활성화로 이어나가면 한국 대학의 위기를 타개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것”이란 해법을 제시했다. 그러고보니 장 회장은 일본 게이오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현대일본학회장을 지낸 일본 전문가이기도 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와 일본경제단체연합(게이단렌)이 ‘한·일 파트너십 기금’을 조성해 청년교류를 늘린다고 하는데, 가능하면 이번 기회에 한·일판 ‘에라스무스 문두스’ 컨소시엄을 설립해 양국 대학생들이 대규모로 자유롭게 학점을 인정받으며 오갈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에라스무스 프로그램은 1987년 유럽에서는 시작된 이례 매년 30만명의 학생이 참여하고 있다.

지방대 위기가 얼마나 심각한가.
“한국 학생 뿐 아니라 요즘은 외국인 유학생도 수도권으로 가려고 한다. 지역에 사람이 없으니 지방 소재 산업체들은 구인난에 허덕인다. 일손 부족이 지역경제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외국인 유학생이 지방으로 갈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정주형 유학생 유치 제도를 마련하면 지방대 정원충원에도 도움이 되고, 졸업 후에는 지역 산업체의 일손 부족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즉 한국의 지방대를 졸업한 외국 유학생에게 취업비자를 주는 제도를 도입하자는 것이다. 또한 지방대에 유학 오고자 하는 우수 외국인에게 국가나 기업에서 장학금을 지원하는 제도를 마련하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한·일 대학생 교류 시스템도 만들어야

장 회장은 일본의 아시아태평양대학(APU)을 예로 들었다. 교토의 명문대인 리쓰메이칸대학과 같은 재단에서 설립한 APU는 규슈오이타현의 작은 도시 벳푸에 위치한다. 1990년대 초반 오이타현 지사와 리쓰메이칸재단이 손잡고 만든 대학이다. 일본인과 외국인 유학생이 절반씩이며 일본어와 영어로 수업한다. 장 회장은 “일본 기업에서 장학금을 받으며 학교를 졸업한 다음 일정기간 해당 기업에서 일하는 프로그램도 운영한다”며 “동아시아 에라스무스 프로그램을 만들고, 학생들에게 취업비자를 주면 지방 소멸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동서대에서도 중국 우한의 자매학교에 디지털콘텐트 단과대를 만들어 매년 300명의 중국인 학생을 받는다. 장 회장은 “2년 과정을 마치면 한국에 와서 졸업하는 구조인데, 이들에게 국내 취업 기회를 주면 남는 학생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 재정난은 어느 정도인가.
“2021년 기준 우리나라 4년제 사립대학의 운영수입 14조5000억원 중 등록금 수입이 10조2000억원으로 70%가 넘는다. 그런데 지난 15년 동안 등록금이 동결됐다. 미국 대학들과는 달리 외부 기부금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사실상 의지할 곳이라고는 정부의 재정사업밖에 없다. 우리나라 학생 1인당 고등교육 공교육비는 1만 1287달러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만7559달러)의 64%에 불과하다. 다행히 지난해 말 ‘고등교육지원특별회계’를 마련했지만 3년 시한에 연 1조5000억원 수준이다. 대학의 재정여건을 대폭 개선하기에는 부족하다.”
정부 재정에 의존하기보다 결국은 대학 구조조정이 필요한 게 아닐까.
“2022학년도에 4년제 대학 충원율은 94.4%로 정원에 1만9906명이 모자란다. 수도권은 98.2%. 비수도권은 권역에 따라 89.7~94.4%다. 만18세 인구(47만4885명)가 대학 입학정원(47만3632명)보다 적은 데드크로스 현상이 나타났다. ‘벗꽃엔딩’ 얘기는 지방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해 신생아가 26만명인데 그중 60% 정도가 18년 후에 대학에 진학한다고 가정하면 약 15만6000명 정도다. 현재 수도권 소재 4년제 대학 입학정원이 11만8000명이니 수도권 대학도 미달이 속출하는 구조다. 지금부터 준비하지 않으면 공멸한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입학정원을 전체적으로 줄여 나가야한다고 본다.”

대학의 문제가 아니라 지방 소멸 우려

구조조정 방안을 놓고 대학 간에도 견해차가 크다.
“정부 재정사업을 따내려면 교육부가 내거는 평가 기준에 맞출 수밖에 없다. 학교마다 규모도, 재정 상황도, 추구하는 바도 다른데 평가 잣대는 충원율, 취업률 등 일률적이다. 그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무조건 탈락이다. 그러니 대학에 무슨 자율성이 있고 특성이 있을 수 있겠나. 국공립대학은 입학정원을 줄이고 국가의 근간이 되는 기초과학 분야와 인문학 분야 등 연구중심대학으로 가고, 사립대는 특성화 분야를 중심으로 재편해 특정 분야에서는 세계적인 대학이 되도록 밀어줘야 한다. 수도권 대학에는 자유를 주고, 지역대학은 국가균형발전이라는 관점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투트랙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와 함께 폐교 위기의 한계 사립대학에는 폐교 및 잔여재산 청산, 공익·복지법인으로의 전환 등 퇴로를 열어줘야 한다.”
구조조정으로 의대 편중과 인문학·기초과학 홀대를 해결할 수 있을까.
“사회가 다양하지 못하다 보니 생기는 현상이라고 본다. 다양한 분야에서 능력만 갖추면 안정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사회가 된다면 굳이 의대로 몰릴 이유가 있겠나. 일본에 살 때 놀란 것은 기차의 종류와 특징을 시대별로 꿰뚫고 있는 ‘전철 평론가’라는 전문가였다. 그런 직업을 가진 사람도 충분히 대우받고 먹고 살 수 있을 정도의 다양성이 인정되는 사회가 되어야 이러한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본다. 동서대는 미국 플러턴 캠퍼스에 매년 100명을 보낸다. 이 중 10%는 성적을 보지 않고 기획안만 평가하는 ‘인생 리셋’ 코스로 뽑는다. 학점 0.8을 받고도 이 코스를 통해 성공한 케이스도 나온다. 다양성을 살리면 대학도, 학생도 살 수 있다.”
대학이 다양한 시도를 주저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뭔가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보려면 교육부에 문의해 봐야 안심이 된다는 것이다. 그만큼 대학들이 주눅이 들어있다고나 할까. 다행히 이주호 교육부총리가 ‘월드클래스 규제 완화’를 하겠다니 기대가 크다. 사실 우리나라 대학들도 많은 창의적 아이디어가 있다. 총장님들은 방학이 되면 해외 혁신대학을 열심히 방문하면서 벤치마킹도 많이 한다. 그러면 뭐하나. 그림의 떡인데. 우리나라에서 혁신사례로 많이 꼽고 있는 미국의 미네르바 대학이나 애리조나 주립대학은 그간 한국에서는 온갖 규제에 걸려 불가능했다. 이제 우리나라도 선진국이 되었으니 위상에 걸맞은 과감한 규제개혁을 통해 특색 있는 대학이 나오도록 해야 한다. 우리 민족은 가만히 놔두면 뭐든지 잘한다. 한류가 밖에서 성공한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지 않나. 이제는 외국 대학들이 한국의 혁신대학 사례를 벤치마킹하러 몰려오게 해야 한다. 그 정도 돼야 한국 대학의 미래가 있다고 본다.”

EU 30개국 교환학생 프로그램 인기, 마크롱도 ‘에라스무스 세대’

EU는 매년 30만명의 학생이 다른 나라에서 공부하는 에라스무스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EU는 매년 30만명의 학생이 다른 나라에서 공부하는 에라스무스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에라스무스는 유럽연합(EU) 회원국 간의 교환학생 프로그램이다. 르네상스 시대 네덜란드의 인문주의자이자 카톨릭 사제인 에라스무스에서 이름을 따왔다. 『우신예찬』의 저자인 그는 영국·프랑스·이탈리아 등을 돌아다니며 공부했고, 인간의 자유의지와 인문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유럽 위원회는 1987년 학생들이 다른 나라에서 학교를 다니며 친구를 사귀고, 다양한 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에라스무스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현재 30개여국 4000개 이상의 교육기관이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매년 30만명 안팎의 학생들이 참가해 총 400만명 이상이 혜택을 본 것으로 알려졌다. 추가 수업료 없이 적어도 3개월 이상 다른 나라에서 공부할 수 있다. 다른 학교에서 받은 학점은 원래 학교에서도 인정한다. 독일·프랑스·스페인 등이 유학지로 인기다.

2014년부터는 타지 생활에 필요한 비용을 지원하는 장학 프로그램도 도입됐다. 2021~27년 책정된 262억유로(38조원)는 EU의 예산과 기업들의 후원금으로 충당한다. 2~3개 국가를 돌아다니며 석사 과정을 밟는 에라스무스 문두스 프로그램도 있다. 여기에는 유럽 이외의 국가 학생도 지원할 수 있다. 젊은 시절 다양한 나라 출신의 젊은이들과 교류하며 경험을 쌓는 이 프로그램에 참가한 학생들은 ‘에라스무스 세대’라 불리며 범유럽주의를 형성하는 토대가 되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대표적인 에라스무스 세대로 꼽힌다.

동아시아에서도 유사한 움직임이 있었다. 2009년 10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한·중·일 3국 정상회담에서 대학생 교류에 합의했다. 이에 따라 2011년 10월 일본 도쿄대에서 서울대, 베이징대, 도쿄대, 하노이대 총장이 모여 ‘베이징, 서울, 도쿄, 하노이’를 뜻하는 ‘베세토하(BESETOHA)’의 대표 대학들이 공동학위제를 본격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역사 교육에 대한 이견과 국가간 갈등 심화로 실효성있는 교류 프로그램으로 발전하지는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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