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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같은 세라믹, 나무 인물 조각…장인정신을 담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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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0호 19면

 ‘2023 로에베 재단 공예상’ 수상작

스페인 명품 브랜드 ‘로에베(LOEWE)’의 창립자 엔리케 로에베의 5대 손쉴라 로에베.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그는 가구회사로 유명한 ‘비트라’에서 커리어를 시작했고, 2012년부터 로에베 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사진 로에베]

스페인 명품 브랜드 ‘로에베(LOEWE)’의 창립자 엔리케 로에베의 5대 손쉴라 로에베.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그는 가구회사로 유명한 ‘비트라’에서 커리어를 시작했고, 2012년부터 로에베 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사진 로에베]

지난 16일 미국 뉴욕에 있는 노구치 미술관에서 ‘2023 로에베 재단 공예상’ 최종 우승자와 특별상 수상자가 발표됐다. 최종 우승자로는 세라믹 작품 ‘Metanoia(가치관의 전환)’를 출품한 일본 작가 이나자키 에리코, 특별상 수상자로는 목공예 작품 ‘The Watchers(수호자)’를 출품한 베냉 작가 도미니크 징크페와 목공예 작품 ‘Transfer Surface(옮겨놓은 표면)’를 출품한 일본 작가 와타나베 모에가 선정됐다.

작년 우승자 정다혜 심사위원 참가

특별상 수상작 ‘수호자’. 아프리카 서부에 위치한 국가 베냉의 요바루족에 전해오는 전통 이야기를 기반으로 제작한 목공예품이다. [사진 로에베]

특별상 수상작 ‘수호자’. 아프리카 서부에 위치한 국가 베냉의 요바루족에 전해오는 전통 이야기를 기반으로 제작한 목공예품이다. [사진 로에베]

올해로 6회째를 맞은 ‘로에베 재단 공예상’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아름다운 가치로 ‘공예’를 부각하고 현대 장인정신의 독창성·탁월함·예술적 가치를 널리 알리기 위해 2016년 로에베 재단이 시작한 행사다. 1846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가죽 장인들의 공동 워크숍으로 시작된 ‘로에베(LOEWE)’는 장인정신을 기본으로 하는 세계적 명품 브랜드로 유명하다. 특히 2013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합류한 영국 출신의 디자이너 조나단 앤더슨은 브랜드의 전통을 계승하는 동시에 현대적인 라이프 스타일과의 자연스러운 연결을 위해 아트·디자인·장인정신이 조화를 이루는 ‘공예’를 키워드로 내걸고 ‘로에베 재단 공예상’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앤더슨은 “공예는 로에베의 본질”이라며 “로에베 하우스는 공예라는 행위가 담고 있는 가장 순수한 의미를 추구하는 동시에 재능과 비전을 지닌 전 세계 공예 예술가들을 후원하기 위해 공예상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올해도 117개국에서 2700여 명의 작가들이 도자기·나무·섬유·가죽·유리·금속 등 다양한 소재의 작품을 출품했고, 지난 1월 디자인·건축·저널리즘·비평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10명의 전문가 패널이 30명의 최종 후보작을 발표했다. 이 리스트에 한국 작가 신혜림(금속), 이규홍(유리), 천우선(금속), 이인진(세라믹), 이재익(세라믹) 그리고 영국 교포 최기룡(세라믹)도 포함됐다.

2023 로에베 재단 공예상’ 최종 후보에 오른 30명의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는 뉴욕 노구치 미술관 내 스튜디오. [사진 로에베]

2023 로에베 재단 공예상’ 최종 후보에 오른 30명의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는 뉴욕 노구치 미술관 내 스튜디오. [사진 로에베]

매년 로에베 재단은 이렇게 추려진 30명의 작품을 한 달간 전시하는데, 전시 시작 전날 전야 행사에서 13명의 전문가로 구성된 심사위원단이 상금 5만 유로(약 7200만원)를 받는 최종 우승자와 특별상 수상자 2명을 발표한다. 올해는 5월 17일부터 6월 18일까지 노구치 미술관 내 노구치 스튜디오에서 전시가 열린다.

올해의 최종 우승작인 ‘메타노이아’는 얇은 핀처럼 생긴 수백 개의 작은 조각을 중앙에 있는 점토에 층층이 고정시킨 20㎝ 높이의 세라믹 작품으로,제작기간만 1년이 걸릴 만큼 섬세한 구성이 돋보인다. “반짝반짝 빛나는 삶의 풍성함을 표현하고 싶었다”는 작가의 말처럼 중앙에서부터 불꽃이 터져 나오는 듯한 모습이 매혹적이다. 지난해 ‘2022 로에베 재단 공예상’ 최종 우승자였던 한국 작가 정다혜씨가 이번에 최종 우승자를 가리는 심사위원으로 참가했는데 그는 “세라믹이라는 소재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진정성 있는 연구와 정교한 기술력, 그리고 뛰어난 예술성에 심사위원들이 모두 공감했다”고 전했다.

최종 우승작 ‘메타노이아’. 반짝반짝 빛나는 삶의 풍성함을 표현한 일본 작가 이나자키 에리코의 세라믹 작품이다. [사진 로에베]

최종 우승작 ‘메타노이아’. 반짝반짝 빛나는 삶의 풍성함을 표현한 일본 작가 이나자키 에리코의 세라믹 작품이다. [사진 로에베]

아프리카 서부에 위치한 나라 베냉에서 온 도미니크 징크페의 작품 ‘수호자’는 단단한 나무로 작은 인물들을 조각한 작품으로 베넹 요바루족의 전통을 기반으로 한 것이다. 쌍둥이에게 특별한 의미와 힘이 있다고 믿는 요바루족은 유아기에 쌍둥이 중 한 명이 죽으면 ‘이베지’라 불리는 인형을 만들어 영혼을 위로한다고 한다. 징크페는 “개개인은 모두 유일무이하다는 점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또 한 명의 일본 작가 와타나베 모에의 ‘옮겨놓은 표면’은 일본 도호쿠 지방에서 채취한 호두나무 껍질로 만든 작은 상자다. 형태는 지극히 단순하지만 나무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서 상자를 만든다는 선입견을 깨고 나무껍질을 긴 한 조각으로 켜서 종이처럼 접고 바느질로 이음새를 마감했다는 점이 독특하다. 또한 나무 표면의 질감이 그대로 살아있어 자연의 아름다움을 잘 살렸다는 점 또한 높게 평가받았다.

특별상 수상작 ‘옮겨 놓은 표면’. 일본 작가 와타나베 모에가 호두나무 껍질을 이용해 만들었다. [사진 로에베]

특별상 수상작 ‘옮겨 놓은 표면’. 일본 작가 와타나베 모에가 호두나무 껍질을 이용해 만들었다. [사진 로에베]

다음은 로에베 가문의 5대 손으로 현재 로에베 재단을 이끌고 있는 쉴라 로에베 이사장과 공예상 발표 현장에서 나눈 일문일답이다.

한국 작가 공예품 독창성 있고 따뜻

로에베 재단 공예상이 올해로 6회를 맞았다.
“날이 갈수록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 무겁지만 아름다운 이 책임감을 늘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로에베 재단이 공예상을 지속하고 있는 목적은.
“우리 재단은 공예뿐 아니라 문학·춤·사진 분야에도 많은 후원을 하고 있는데, 이는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예술·장인 정신의 가치와 순수성을 위해 노력하는 수많은 예술가들을 지원하기 위해서다.”
현대인이 공예에 좀 더 애정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요즘 젊은 세대를 보면 디지털 의존도가 너무 높다. 오랫동안 시간을 들여 천천히 손으로 만드는 공예품은 시간을 정제하며 삶을 아름답게 만드는 방법을 알게 해주는 좋은 도구라고 생각한다.”
오래 전부터 공예품은 ‘장식성’과 ‘실용성’ 두 개의 축으로 발전해 왔다. 현대의 공예품은 어떤 것을 더 강조해야 할까.
“둘 중 하나를 선택할 문제는 아니다. 한국의 유명한 ‘달항아리’만 봐도 누군가는 그냥 집안에 모셔두는 장식용으로 생각하겠지만, 또 누군가는 꽃을 꽂아서 실용적인 화병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매년 한국 공예작가들이 30명의 최종 후보에 대거 오르고 있다.
“지난해 서울 공예박물관에서 한 달 간 ‘2022 로에베 재단 공예상’ 최종 후보작을 전시하면서 매일 1000명 이상의 젊은이들이 방문하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마치 로큰롤 콘서트를 보러 온 듯 설레는 얼굴로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는 그들의 모습에서 한국의 공예가 진심으로 존중받고 있음을 알겠더라. 매년 독창적인 공예작품들이 탄생하는 이유도 아마 이런 분위기에서 힘을 얻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은 어떤 이미지의 나라인가.
“두 번 서울을 방문했는데, 그때마다 한국 사람들의 친절함에 깜짝 놀랐다. 마치 대문을 활짝 열고 집으로 나를 초대하는 느낌이었다. 그 따뜻한 환대가 오랫동안 기억에 남더라. 한국 작가들이 선보이는 공예작품들에서도 독창성과 따뜻함이 함께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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