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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 그림의 보름달은 왜 푸른색일까? 거장에 관한 7가지 사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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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0호 20면

김환기에 관한 7가지 사실

 김환기 그림에서 푸른 달이 진화하는 모습. 상단 왼쪽부터 초기작 ‘달과 나무’(1948), ‘달밤의 화실’(1958), 파리시대 '산월’(1958), 하단 왼쪽부터 서울복귀시대 ‘운월’(1963), 뉴욕시대 초기작 '새벽별’(1964), 뉴욕시대 후기 전면점화 ‘하늘과 땅 24–Ⅸ–73 #320’(1973)의 일부  ©Whanki Foundation·Whanki Museum [사진 문소영]

김환기 그림에서 푸른 달이 진화하는 모습. 상단 왼쪽부터 초기작 ‘달과 나무’(1948), ‘달밤의 화실’(1958), 파리시대 '산월’(1958), 하단 왼쪽부터 서울복귀시대 ‘운월’(1963), 뉴욕시대 초기작 '새벽별’(1964), 뉴욕시대 후기 전면점화 ‘하늘과 땅 24–Ⅸ–73 #320’(1973)의 일부 ©Whanki Foundation·Whanki Museum [사진 문소영]

김환기의 뉴욕시대(1963-74) 전면점화들이 호암미술관 재개관전 '한 점 하늘 김환기'에 전시된 모습. 왼쪽 푸른 그림은 역대 한국 현대미술 경매가 1위인 ‘5-IV-71 #200 우주’(1971), 가운데 붉은 그림은 2위인 ‘3-II-72 #220,’ 오른쪽 노란 그림은 5위인 ‘12-V-70 #172’ ⓒWhanki Foundation·Whanki Museum  [사진 호암미술관]

김환기의 뉴욕시대(1963-74) 전면점화들이 호암미술관 재개관전 '한 점 하늘 김환기'에 전시된 모습. 왼쪽 푸른 그림은 역대 한국 현대미술 경매가 1위인 ‘5-IV-71 #200 우주’(1971), 가운데 붉은 그림은 2위인 ‘3-II-72 #220,’ 오른쪽 노란 그림은 5위인 ‘12-V-70 #172’ ⓒWhanki Foundation·Whanki Museum [사진 호암미술관]

“색맹검사표 같이 생겼다” “저게 그림이냐”

2019년, 거대한 화폭에 점으로 가득 찬 김환기(1913-1974)의 1971년 추상화 ‘우주(정식 제목은 아닌 별명)’가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132억 원에 낙찰되어 한국미술 신기록을 세웠을 때, 이런 뉴스 댓글이 많이 달렸다. 이렇듯 김환기는 박수근·이중섭과 달리 전문가와 대중 사이의 선호도 차이가 크다. 전문가들은 김환기와 그의 작품을 20세기 한국미술 1위로 꼽지만 (2018년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설문조사 및 2015년 한예종 한국예술연구소 설문조사), 그가 ‘국민화가’라고 불리는 적은 잘 없다. 포근하고 대중친화적이기보다 다소 엘리트적이란 얘기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소셜미디어를 보면 김환기의 팬이 크게 늘었음을 체감할 수 있다. 그에게서 영향 받은 단색화의 열풍, 빅뱅 탑과 방탄소년단 RM 같은 K팝 스타들의 애호 덕분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미술관 관람 문화가 보편화된 덕분이다. 김환기의 뉴욕시대(1963-74) 전면점화는 실제로 그 거대한 화폭 앞에 설 때와 책·화면으로 볼 때의 차이가 상당히 크다.

그것을 직접 확인해 볼 기회가 왔다. 삼성문화재단이 운영하는 경기도 용인 호암미술관이 지난 18일에 재개관전으로 ‘한 점 하늘 김환기’를 시작했다. 초기작부터 그의 예술이 최후의 절정에 오른 70년대 전면점화까지 총 120여 점, 유화만 88점을 선보이는 대규모 회고전이다. 전시를 기획한 태현선 리움 소장품연구실장은 김환기의 키워드를 “자연·전통·예술”로 두고 그의 작품세계를 추상의 여정으로 풀어냈다고 설명한다. 지금부터 소개하는 김환기에 대한 7가지 사실은 그 이해를 도울 것이다.

1 그림 속 보름달이 대부분 푸른색

김환기 초기작 '달과 나무'(1948), 캔버스에 유채, 73x61cm, 개인 소장 ⓒWhanki Foundation·Whanki Museum

김환기 초기작 '달과 나무'(1948), 캔버스에 유채, 73x61cm, 개인 소장 ⓒWhanki Foundation·Whanki Museum

김환기 '운월(雲月)'(1963), 캔버스에 유채, 193x129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Whanki Foundation·Whanki Museum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김환기 '운월(雲月)'(1963), 캔버스에 유채, 193x129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Whanki Foundation·Whanki Museum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뉴욕시대 이전을 다룬 전시 1부에서 첫 그림 ‘달과 나무’(1948)과 마지막 그림 ‘운월’(1963)에는 공통점이 있다. 푸른 보름달이 나오는 것이다. 이들 외에도 수많은 그림에 보름달이 나오는데 대부분 푸른색이다. 왜일까. 김환기가 마당에 조선 백자 달항아리를 놓고 바라보며 쓴 시 ‘이조 항아리’(1946)의 구절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둥근 하늘과 둥근 항아리와 / 푸른 하늘과 흰 항아리와 / 틀림없는 한 쌍이다.”

이 시에서 김환기는 달이 아닌 하늘이 둥글고 푸르다고 표현하며 달항아리와 “한 쌍”이라고 했다. 그리고 둥근 달항아리 뒤로 둥글고 푸른 달이 겹쳐져 있는 ‘달빛교향곡(호월)’(1954) 같은 그림을 여럿 그렸다. 그러니까 김환기의 그림에서 푸른 보름달은 달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둥근 하늘” “푸른 하늘”을 상징하고 추상화한 존재라고 추측해 볼 수 있다. 동아시아의 오랜 우주관이 ‘천원지방(天圓地方)’ 즉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나다’인 것을 생각할 때, 더욱 그렇다.

김환기의 초기작에는 달에 광채 테두리가 없으나 1950년대 중반 그림부터 푸른 보름달이 광채 테두리로 둘러싸인 경우가 많다. 제2부에서 뉴욕시대 초기작인 ‘새벽별’(1964)을 보면 달과 함께 별들이 광채 테두리를 두르고 나타난다. 그리고 이것이 훗날 전면점화에서 테두리로 둘러싸인 점이 된다. 부드럽게 번지는 테두리가 빛의 여운이나 소리의 울림 같은 느낌을 준다. 그 기원이 바로 푸른 보름달의 광채 테두리인 것이다. 즉, 김환기의 뉴욕시대 점들은 난데없이 갑자기 나온 것이 아니다.

2 전통 도자기가 영감의 원천

호암미술관 재개관전 '한 점 하늘 김환기' 전시작 중 달과 달항아리를 짝지어 그린 그림들. 왼쪽부터 '달과 항아리'(1952), '달과 매화'(1953-4), '달빛교향곡(호월)'(1954). ⓒWhanki Foundation·Whanki Museum  [사진 문소영]

호암미술관 재개관전 '한 점 하늘 김환기' 전시작 중 달과 달항아리를 짝지어 그린 그림들. 왼쪽부터 '달과 항아리'(1952), '달과 매화'(1953-4), '달빛교향곡(호월)'(1954). ⓒWhanki Foundation·Whanki Museum [사진 문소영]

김환기가 소장했던 달항아리와 그의 그림 '항아리와 매화'(1955)가 호암미술관 재개관전 '한 점 하늘 김환기'(2023년 5월 18일-9월 10일)에 전시된 모습 ⓒWhanki Foundation·Whanki Museum  [사진 문소영]

김환기가 소장했던 달항아리와 그의 그림 '항아리와 매화'(1955)가 호암미술관 재개관전 '한 점 하늘 김환기'(2023년 5월 18일-9월 10일)에 전시된 모습 ⓒWhanki Foundation·Whanki Museum [사진 문소영]

김환기의 조선 백자, 특히 달항아리 사랑은 유명하다. 그냥 백자 항아리라고 불리던 것을 ‘달항아리’라는 아름답고 시적인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한 사람이 김환기라는 설이 유력하다. 고미술상 홍기대는 이렇게 말했다. “김환기가 도자기를 사기 시작한 것은 해방 이후로…백자 항아리 중 일제 때 둥글다고 해서 마루츠보(圓壺)라고 불렀던 한 항아리를 특히 좋아해 그가 ‘달항아리’라고 이름 붙였다.”

마침 이번 전시에 김환기가 소장했던 달항아리가 나온다. 태 실장에 따르면 “일반적인 달항아리 백색이 아닌 청백색인 것이 이 달항아리의 특징이며, 김환기의 수필 ‘청백자 항아리’(1955)에 나오는 것이 바로 이런 항아리일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수필에서 그는 달항아리가 “몸이 둥근 데다 굽이 아가리보다 좁기 때문에 놓여 있는 것 같지가 않고 공중에 둥실 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 기발한 형태미에서 그는 “현대미술의 전위”를 발견하고 영감을 받았다.

3 파리시대에 오히려 한국적 모티프 강화

김환기의 파리시대(1956-59)에 나온 '영원의 노래' 연작 (1957) ⓒWhanki Foundation·Whanki Museum  [사진 문소영]

김환기의 파리시대(1956-59)에 나온 '영원의 노래' 연작 (1957) ⓒWhanki Foundation·Whanki Museum [사진 문소영]

김환기 '영원의 노래'(1957), 162x130cm, 캔버스에 유채, 리움미술관 소장 ⓒWhanki Foundation·Whanki Museum  [사진 호암미술관]

김환기 '영원의 노래'(1957), 162x130cm, 캔버스에 유채, 리움미술관 소장 ⓒWhanki Foundation·Whanki Museum [사진 호암미술관]

김환기는 전통 도자기의 무늬에서도 영감을 받았다. 미술사학자 윤난지는 김환기가 그린 자연은 “상감청자의 운학문 같은, 도자기나 병풍에 새겨진 문양에서 따온 것”이라고 지적한다. 김환기는 서구 추상화의 영향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한국의 문인화와 도자기 무늬에서 자연을 매우 추상화된 간략한 형태로 표현하는 것을 계승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김환기의 파리시대(1956-59)에 “더욱 심화된 양상으로 진전되었다.”(미술사학자 오광수) 그 대표적인 예는 전시에 나온 ‘영원의 노래’ 연작(1957)이다. 달·매화가지·산·학·사슴·백자 등 김환기가 그려온 한국적 모티프들의 종합판이자 한국의 오랜 전통인 십장생(十長生)도의 모던아트 버전이다. 김환기는 파리에서 서울로 돌아온 후 1961년 에세이에서 “파리라는 국제경기장에 나서니, 우리 하늘이 더욱 역력히 보였고, 우리의 노래가 강력히 들려왔다.”고 말했다.

4 아내 김향안은 두 천재가 사랑한 여인

1963년 브라질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참여하기 위해 떠나는 김환기를 가족들이 김포공항에서 배웅하는 모습. 꽃다발을 든 김환기와 부인 김향안, 맏사위 윤형근, 맏딸 김영숙(왼쪽부터 ).  [사진 유족과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1963년 브라질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참여하기 위해 떠나는 김환기를 가족들이 김포공항에서 배웅하는 모습. 꽃다발을 든 김환기와 부인 김향안, 맏사위 윤형근, 맏딸 김영숙(왼쪽부터 ). [사진 유족과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김환기가 파리로 떠나기 1년 전에 그의 아내인 수필가 김향안(1916-2004)이 미리 파리로 떠나 불어를 공부하고 김환기가 쓸 아틀리에를 구하는 등 생활 터전을 닦아 놓았다. 엄청난 추진력의 ‘내조의 여왕’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녀는 1944년 김환기와 결혼하면서 김향안으로 개명했고, 그보다 7년 전에 본명인 변동림으로서, 시인 이상(1910-1937)의 아내로서, 그의 임종을 지킨 바 있다. 한국 문학사의 천재와 미술사의 천재를 차례로 남편으로 맞은 셈이다.

김향안은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현 경기여고)와 이화여전(현 이화여대) 영문과를 다닌 당대의 드문 신여성이었다. 이상과 불 같은 사랑에 빠져 결혼했지만 불과 몇 달 만에 이상이 갑자기 혼자 도쿄로 떠나고 곧이어 사망하는 비극을 겪었다. 그녀는 도쿄로 가 임종을 지키고 유해를 안고 돌아왔다. 그 후 수필을 쓰며 활동하다가 이미 세 딸의 아버지인 이혼남 김환기와 사랑에 빠져 결혼했다. 그 후 그녀는 늘 김환기 작품의 첫번째 평론가이자 조언자 겸 매니저였다. 김환기의 사후에는 환기재단을 만들었고 1992년에 환기미술관을 설립했다.

5 사위는 단색화 대가 윤형근

왼쪽: 김환기 '항아리'(1956) ⓒWhanki Foundation·Whanki Museum 오른쪽: 김환기 ‘항아리’에 나오는 나무선반과 같은 것으로 추정되는 목가구가 호암미술관 ‘한 점 하늘 김환기’에 전시된 모습. [사진 문소영]

왼쪽: 김환기 '항아리'(1956) ⓒWhanki Foundation·Whanki Museum 오른쪽: 김환기 ‘항아리’에 나오는 나무선반과 같은 것으로 추정되는 목가구가 호암미술관 ‘한 점 하늘 김환기’에 전시된 모습. [사진 문소영]

이번 전시에는 최초로 공개되는 흥미로운 자료가 많다. 그중 그림 ‘항아리’(1956)에서 조선백자 항아리가 줄지어 놓인 나무 선반의 실제 모델로 추정되는 목가구가 눈길을 끈다. 김환기가 뉴욕으로 떠나면서 맏딸 김영숙과 그의 남편인 단색화 대가 윤형근(1928-2007)에게 남기고 간 것이다. 윤형근은 김환기의 사위일 뿐만 아니라 제자였다. 윤형근의 초기 습작들은 확실히 김환기의 영향이 많이 보인다. 그는 김환기를 “아버지”라고 부르며 존경했다. 그들이 주고받은 엽서를 보면 필체조차 닮은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윤형근은 1973년 경부터 엄버(암갈색)와 블루 안료를 섞어 만든 먹색 같은 단색으로만 작업을 하며 김환기와 차별화된 길을 걷기 시작했다.

6 뉴욕에서 처음엔 혹평 받았다고?

김환기의 뉴욕시대(1963-74) 초기 그림의 변천. 왼쪽의 '새벽별'(1964)과 오른쪽은 '새벽 #3'(1964-5). 질감의 차이를 볼 수 있다. ⓒWhanki Foundation·Whanki Museum  [사진 문소영]

김환기의 뉴욕시대(1963-74) 초기 그림의 변천. 왼쪽의 '새벽별'(1964)과 오른쪽은 '새벽 #3'(1964-5). 질감의 차이를 볼 수 있다. ⓒWhanki Foundation·Whanki Museum [사진 문소영]

김환기 '새벽별'(1964), 캔버스에 유채, 143.3x143.3cm ⓒWhanki Foundation·Whanki Museum

김환기 '새벽별'(1964), 캔버스에 유채, 143.3x143.3cm ⓒWhanki Foundation·Whanki Museum

원래 김환기가 동경하던 곳은 파리였지 뉴욕이 아니었다. 그러나 1963년 브라질 상파울루 비엔날레에서 예전보다 “기운이 없는” 유럽 회화들, 그리고 그와 반대로 힘이 넘치는 미국 추상표현주의 회화를 본 뒤, 그는 새로운 미술의 중심지가 어디인지 실감했다. 그리고 뉴욕행을 감행했다.

김환기가 뉴욕으로 이주한 후 처음 연 개인전(1964년)에 대해 뉴욕타임스(NYT)는 혹평했다. 그림의 두터운 마티에르는 “끈적끈적한 안료의 겹겹 반죽 속에 빠져, 오도 가도 못하는 것만 같다”고 했고, 특히 “이 한국 화가에게는 아시아적 영향의 흔적이 없다”고 했다. 서구인으로서 구름·달·산이 동아시아 문화에서 갖는 전통과 의미에 무지했던 탓이다. 김환기는 그것에 의기소침하거나 분노하기보다, 배경지식 없는 타문화권 감상자에게도 보편적으로 어필할 방법을 찾았다. 완전추상으로 전환하되, 동아시아적 전통은 NYT가 혹평한 두터운 질감을 수묵화 같은 맑고 얇은 질감으로 바꾸는 것으로 실현했다. 이런 변화를 이번 전시 제2부 도입부에서 볼 수 있다. 그리고 실험을 거듭한 끝에 탄생한 것이 전시에 나온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1970)로 대표되는 1970년대 전면점화다.

그러자 NYT는 김환기의 1971년 개인전에 대해 “불규칙한 둥그스름한 점들을 둘러싼 조그만 사각형들을 다루는 그만의 기발함(ingenuity)은 무궁무진한 것 같다”며 “매력적인 전시”라고 평했다. 이제 그의 전면점화는 평론계와 시장 모두에서 최고의 평가를 받는다. 한국 현대미술 역대 경매 최고가 10점 중 9점이 김환기의 뉴욕시대 전면점화다.

7 전면점화에 담긴 천지인 합일

김환기 ‘하늘과 땅 24-Ⅸ-73 #320’(1973) ⓒWhanki Foundation·Whanki Museum [사진 호암미술관]

김환기 ‘하늘과 땅 24-Ⅸ-73 #320’(1973) ⓒWhanki Foundation·Whanki Museum [사진 호암미술관]

김환기의 뉴욕시기 전면점화는 그전보다 훨씬 거대해진 화폭에 무수한 점들이 나타난다. 하나하나의 점들이 부드럽게 번지는 각진 테두리로 둘러싸여 있어서 광채의 여운을 지닌 별들을 연상시킨다. 김환기는 1970년 1월 27일 일기에서 “내가 찍은 점(點), 저 총총히 빛나는 별만큼이나 했을까”라고 썼다. 같은 해 6월 23일 일기에는 한국의 “뻐꾸기 노래”를 기억하며 점을 찍는다고도 했다. 뻐꾸기 소리는 규칙적이고 그윽하게 잘 울려 퍼지니, 테두리를 가진 점들의 일정한 반복에 잘 어울린다. 점이 별이라면 테두리는 광채의 여운이고 점이 뻐꾸기 소리라면 테두리는 그 울림의 여운이다. 또한 점이 사람이라면 그 테두리는 사람이 지니는 기운과 분위기이리라. 김환기는 “친구들, 그것도 죽어버린 친구들, 또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없는 친구들”을 생각하며 점을 찍는다고 했다.

따라서 그의 점들은 천상의 별인 동시에 지상의 음향이며 또한 인간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천지인(天地人) 합일의 동아시아적 관념의 반영이다. 김환기의 그림에 영감을 준 김광섭의 시 ‘저녁에’의 구절, “저렇게 많은 중에서 /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중략) 이렇게 정다운 / 너 하나 나 하나는 /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에서 볼 수 있듯이 말이다. 김환기의 우주적 전면점화에서 인간은 별이 되고 새소리가 되고 다시 인간이 되어 거대한 시공간의 질서 속에서 순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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