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한 계획
김용택
이사를 가면
개를 키우겠다.
큰물이 나가면
물가에 나란히 앉아
물구경하다가
아내가 마당에 서서
밥 먹자고 부르면
귀를 쫑긋 세우고
나보다 먼저 일어서는
개를 한마리 키우겠다.
『울고 들어온 너에게』 (창비 2016)
계획이라는 것은 삶에 눈금을 그리는 일입니다. 여기까지 차올랐고 앞으로 이만큼 더 채울 것이다. 하는 셈이나 다짐과 함께합니다. 눈금을 그리지 않는 무계획도 곤란하지만 반대로 너무 촘촘하게 눈금을 그리는 것도 마냥 좋은 일은 아닐 것입니다. 가끔은 흘러가는 대로 어느 정도의 오차를 감내하며 살 필요가 있으니까요. 눈금이 빼곡한 투명 비커보다는 넉넉한 흰 주발이 한결 편하게 느껴지는 법이니까요. 여담이지만 시인은 이 작품을 쓰고 나서 실제로 이사를 합니다. 다만 유일한 계획을 이루지는 못합니다. 개가 아닌 고양이와 함께 살게 되었으니까요. 보리라는 이름의 순한 고양이. 계획은 무산되었지만 아쉬울 것은 하나 없습니다.
박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