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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베테랑' 현실로…광수대 잡혀간 '엄홍식' 결국 구속 기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경찰이 19일 마약 투약 혐의를 받는 배우 유아인(37·본명 엄홍식)씨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지난 2월 인천공항에 입국한 유씨의 신체를 압수수색하며 수사가 본격화된 지 104일 만이다.

마약 상습 투약 혐의를 받는 배우 유아인이 지난 17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에서 소환 조사를 마친 후 건물을 나서고 있다. 뉴스1

마약 상습 투약 혐의를 받는 배우 유아인이 지난 17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에서 소환 조사를 마친 후 건물을 나서고 있다. 뉴스1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마약범죄수사대는 프로포폴 상습 투약 및 대마·코카인·케타민·졸피뎀 투약 혐의(마약류관리법 위반)를 받고 있는 유씨에 대해 이날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은 수사기관과 피의자 간 다툼의 ‘첫번째 승부처’로 평가 받는다. 법원이 구속영장을 발부하면, 수사도 탄력을 받은 상태로 다음 단계로 넘어가게 된다. 수사를 지켜본 한 경찰 관계자는 “유씨는 자신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영화 ‘베테랑’에서 우여곡절 끝에 마약 투약 등등으로 서울청 광역수사대(광역수사단의 전신)에 붙잡히는 재벌 역할을 맡았는데, 현실에서도 같은 수사대와 긴 공방 끝에 구속 기로에 서게 됐다”고 했다. 승부처를 앞둔 광수단의 수사 과정을 처음부터 되짚어 봤다.

영화 베테랑(2015)에서 서울청 광역수사대에 마약류 투약 혐의 등으로 붙잡히는 재벌 3세 조태오 역을 연기한 배우 유아인. 사진 네이버 영화

영화 베테랑(2015)에서 서울청 광역수사대에 마약류 투약 혐의 등으로 붙잡히는 재벌 3세 조태오 역을 연기한 배우 유아인. 사진 네이버 영화

시작은 프로포폴…“유아인 아닌 엄홍식 잡았다”

수사의 시작점은 프로포폴이었다. 지난해 11월 식품의약품안전처의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NIMS)에 유씨의 프로포폴 상습 투약 정황이 포착되면서다. 식약처 조사 결과 유씨가 2021년 한해 투약한 프로포폴은 4400㎖ 가량, 투약 횟수는 73회에 달했다. 마약류 안전사용기준에 따르면 프로포폴은 월 1회 이하 투여가 권고된다. 오유경 식약처장은 유씨 포함 상습 투여 의심자 51명을 수사 의뢰한 것을 두고 “유아인이 아니라 엄홍식(유씨의 본명)을 잡은 것”이라 밝혔다. 유씨를 특정해 투약 여부를 확인한 것이 아니라, 통상적인 관리·감독 과정에서 유씨의 혐의가 포착됐다는 의미다.

경찰 조사 직후 제주도 광고 촬영

이후 경찰은 유씨가 다른 마약류를 투약한 정황도 발견해 본격 수사에 착수했다. 그러나 유씨와 수사팀이 대면하고, 직접 광수단에서 조사를 받기까지는 꽤 긴 시간이 소요됐다. 유씨는 지난 2월 5일 지인들과 미국 여행을 마치고 미국 로스앤젤레스(LA) 공항에서 인천공항으로 입국했다. 경찰은 이때 유씨의 머리카락 등 신체를 압수수색하고 출국 금지 조치했다.

유씨는 이튿날인 6일 오전까지 경찰 조사를 받았지만, 이후엔 제주도 사려니숲길로 이동해 아웃도어 브랜드의 광고 촬영을 강행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업계의 ‘손절’이 시작됐다. 해당 업체 관계자는 “당시엔 경찰 수사를 받는지 몰랐고, 현재 계약 해지 절차를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유씨가 광고 모델을 맡은 브랜드는 약 10곳이다. 넷플릭스도 유아인의 차기작 ‘승부’와 ‘종말의 바보’ 공개를 연기한 상태다.

마약 투약 혐의가 불거진 이후인 지난 2월 아웃도어 브랜드 광고판에서 유아인의 얼굴이 가려져 있다. 사진 온라인 커뮤니티

마약 투약 혐의가 불거진 이후인 지난 2월 아웃도어 브랜드 광고판에서 유아인의 얼굴이 가려져 있다. 사진 온라인 커뮤니티

코카인·케타민까지…마약류 5종 의혹

그 사이 유씨 수사는 점점 확대됐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정식 소변·모발 검사 결과가 조금씩 공개되면서 유씨가 투약한 것으로 의심되는 ‘제N의 마약’도 차례로 추가됐다. 양성 반응이 나온 마약류만 프로포폴·대마·코카인·케타민 등 4종이다. 4월엔 수면제인 졸피뎀을 의료 외 목적으로 사용한 정황도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유씨의 소속사 UAA는 졸피뎀에 대해서만큼은 “유아인씨는 오랜 수면 장애로 과거 졸피뎀이 포함된 수면제를 복용했다. 그러나 최근 6개월은 다른 성분의 수면제로 대체했고, 수면 외 목적으로 사용한 적은 없다. 진위는 경찰 조사에서 밝혀질 것”이라는 입장을 냈다.

유씨 수사 과정에서 생각지 못했던 다른 범행이 드러나기도 했다. 유씨에게 프로포폴을 처방해준 서울 강남·용산 일대의 병·의원과 의료진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강남 소재 의사 신모씨를 현행범으로 체포한 것이다. 그는 지난 3월 13일 경찰의 병원 압수수색 당시 ‘셀프 프로포폴 투약’을 하다가 적발됐다. 또 유씨 수사 과정에서 미대 출신의 작가, 미국 국적의 남성, 유튜버 등 유씨의 지인들도 피의자로 전환됐다.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대검 마약통’ 변호사 선임

수사가 속도를 내자 유씨도 변호사를 선임하며 적극적인 대응에 나섰다. 지난해 5월까지 대검찰청 차장검사(검찰총장 직무대리)를 지낸 박성진(60·사법연수원 24기) 변호사가 소속된 법률사무소 인피니티가 사건을 수임했다. 박 변호사는 대검 마약과장, 서울중앙지검 강력부장 등을 역임해 검찰 내 마약 전문가로 통했던 인물이다. 검사 시절 이승연, 박시연, 장미인애, 현영 등 다수 연예인을 프로로폴 상습 투약 혐의로 수사하기도 했다.

‘비공개 소환’ 두고 경찰과 신경전

이후 수사팀은 유씨를 소환해 조사하려 했지만, 이 때마다 신경전이 벌어졌다. 유씨의 1차 소환 조사는 당초 3월 24일로 예정돼있었지만, 조사 일정이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유씨 측 변호인들은 “비공개 소환 원칙을 지키라”고 반발했고 결국 소환 조사는 같은 달 27일 이뤄졌다. 15시간의 조사를 마치고 나온 유씨는 “제 일탈 행위들이 누구에게도 피해를 끼치지 않았다는 합리화의 늪에 빠져있었다. 제가 살아보지 못한 건강한 시간들을 살 수 있는 기회로 삼겠다”며 취재진 앞에서 울음을 삼켰다.

마약류 투약 혐의를 받는 배우 유아인이 경찰의 1차 조사가 끝난 다음날인 지난 3월 28일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과문 전문. 사진 유아인 인스타그램

마약류 투약 혐의를 받는 배우 유아인이 경찰의 1차 조사가 끝난 다음날인 지난 3월 28일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과문 전문. 사진 유아인 인스타그램

그러나 2차 조사에서도 신경전은 반복됐다. 5월 11일, 유씨는 서울청 광수단 앞까지 왔다가 “기자들이 많아 출석을 못하겠다”며 돌아갔다. 태도 논란이 확산하자 변호인 측은 “엄홍식 씨는 조사에 임하고자 했다. 변호인이 비공개 소환 원칙에 맞게 다른 경로의 출입을 요청했지만 경찰이 받아들이지 않았다”며 반발했다. 이에 경찰은 15일 국가수사본부 기자간담회를 통해 계속 소환을 거부할 경우 체포에 나설 수 있다는 입장을 내놨고, 결국 16일 2차 조사가 진행됐다.

이날 오전 9시쯤 청사로 들어간 유씨는 21시간 여만인 다음날 오전 6시 30분쯤 모습을 드러냈다. 유씨는 경찰 조사에서 대마는 지인이 건네 피웠다고 진술했고, 프로포폴·케타민·졸피뎀은 치료 목적으로만 사용했으며 코카인은 투약 사실을 부인한 것으로 파악됐다.

반면 경찰은 구속영장을 받아 유씨 신병을 확보한 뒤 남은 수사를 이어갈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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