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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나도 노동자란 中청년, 자조 섞인 '다궁런' 신드롬의 시작은?

중앙일보

입력

중국 관변매체는 한때 「굿모닝, 다궁런!(早安,打工人!)」이란 글에서 고된 일을 하면서도 낙관적인 '다궁런'의 사례를 들며 자기계발 욕구와 노력으로 가득 찬 '괴물적 주체'를 내세워 중국 네티즌들의 뭇매를 맞았다. 사진 바이두 캡처

중국 관변매체는 한때 「굿모닝, 다궁런!(早安,打工人!)」이란 글에서 고된 일을 하면서도 낙관적인 '다궁런'의 사례를 들며 자기계발 욕구와 노력으로 가득 찬 '괴물적 주체'를 내세워 중국 네티즌들의 뭇매를 맞았다. 사진 바이두 캡처

2020년 중국을 휩쓴 유행어 '다궁런(打工人, 노동자)'의 유행 현상과 배경을 분석한 한 발표가 최근 이목을 끌었다. 코로나19 이후 달라진 중국의 사회와 정치, 그리고 국제 질서를 탐구하고자 지난 12일 국민대에서 개최된 현대중국학회(회장 장호준)와 국민대 중국인문사회연구소(소장 윤경우)의 연합학술대회에서다.

지난 12일 현대중국학회(회장 장호준)와 국민대 중국인문사회연구소(소장 윤경우)의 연합학술대회가 '달라진 중국과 주체의 역동성'을 주제로 국민대에서 개최됐다. 사진 중앙일보 중국연구소

지난 12일 현대중국학회(회장 장호준)와 국민대 중국인문사회연구소(소장 윤경우)의 연합학술대회가 '달라진 중국과 주체의 역동성'을 주제로 국민대에서 개최됐다. 사진 중앙일보 중국연구소

김란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동북아시아센터 객원연구원은 이날 발표에서 2020년 코로나 팬데믹 초기 등장한 중국 청년들의 자조적 유행어 '다궁런'이 관변매체의 선전 영상 '허우랑(後浪)'에 대한 저항 과정에서 사회 각계에 널리 회자하기 시작했다는 분석을 내놨다.

문제의 '허우랑' 동영상은 중국 대표 중견배우 허빙(何冰)의 3분 53초짜리 강연 영상이다. 중국 동영상 사이트 빌리빌리(bilibili)가 제작하고 2020년 5᛫4 청년절 하루 전인 5월 3일 중국 중앙방송 뉴스(央視新聞), 환구시보(環球時報), 중국청년보(中國青年報), 신경보(新京報) 등 여러 관변매체에 일제히 공개됐다. 여기서 '허우랑'은 뒷물결이라는 뜻으로 젊은 세대를 지칭한다. '장강의 뒷물결이 앞물결을 밀어낸다는 뜻의 '장강후랑추전랑(長江後浪推前浪)'에서 나온 말이다.

영상은 허빙이 기성세대를 대변해 청년들의 비관적인 태도를 지적하며 청년들을 격려하고 추켜세우는 내용을 담고 있다. 레이싱, 잠수, 클라이밍, 패러글라이딩 등 이 시대 청년들의 역동성을 보여주는 예시도 곳곳에 삽입됐다. 하지만 영상에 대한 네티즌들의 반응은 매우 부정적이었다. 현실과 동떨어졌다는 지적이 빗발쳤다. 김란 연구원은 중국 관변매체가 '허우랑' 영상에서 청년들을 '중상류층 소비자'로 묘사한 것이 청년 네티즌들의 상대적 박탈감을 폭발시켰다고 분석했다.

지난 12일 현대중국학회(회장 장호준)와 국민대 중국인문사회연구소(소장 윤경우)의 연합학술대회가 '달라진 중국과 주체의 역동성'을 주제로 국민대에서 개최됐다. 김란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동북아시아센터 객원연구원이 제3세션 '사회 주체 분화의 역동성'에서 발표하고 있다. 사진 중앙일보 중국연구소

지난 12일 현대중국학회(회장 장호준)와 국민대 중국인문사회연구소(소장 윤경우)의 연합학술대회가 '달라진 중국과 주체의 역동성'을 주제로 국민대에서 개최됐다. 김란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동북아시아센터 객원연구원이 제3세션 '사회 주체 분화의 역동성'에서 발표하고 있다. 사진 중앙일보 중국연구소

김 연구원에 따르면 '허우랑' 영상 공개 후, 검열이 비교적 덜한 중국 지식 공유 커뮤니티 '즈후(知乎)'에 영상을 비판하는 공론장이 만들어졌고, '다궁런'이란 유행어도 이곳에서 시작됐다는 것이다. '다궁런'은 원래 비정규직 육체노동자를 지칭했지만, 지금은 화이트칼라᛫블루칼라᛫엘리트 등 노동자와 직장인 전체를 아우르는 말이 됐다. 즉, 중국 관변매체가 제시한 진취적인 청년 '허우랑'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자기 비하적인 유행어 '다궁런'이 등장했다는 뜻이다.

김 연구원은 중국 청년들의 변화한 자기 정체성에도 주목했다. 과거 중국의 도시 청년들은 중국판 '88만원 세대'로 불리는 농촌 출신 '개미족(蟻族)'과 자신을 명확히 구분했었다. 하지만 이젠 고학력 화이트칼라 청년들조차 코로나 시기를 거치며 자신을 빈민, 농민공과 동일시하고 있다는 점이 '다궁런' 유행의 본질이라는 분석이다. 중국 청년들의 부에 대한 열망 약화,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의 구분 붕괴, 중산층으로의 계층 상승에 대한 회의, 자신을 빈민과 동일시하는 '빈곤의 자기화' 등은 '다궁런' 유행의 배경으로 지목됐다.

김 연구원은 중국 관변매체가 '다궁런'의 저항적 의미를 퇴색시키고 '노력 이데올로기'를 부활시키려는 움직임도 언급했다. 2020년 10월 26일 중국 CCTV 뉴스 위챗 공식 계정에 올라온 「굿모닝, 다궁런!(早安,打工人!)」이란 글이 대표적이다. 고된 일을 하면서도 낙관적인 '다궁런'의 사례를 들며 자기계발 욕구와 노력으로 가득 찬 '괴물적 주체'를 내세워 일종의 '정신적 하방(下放᛫농촌 등 낙후지역으로 보내다)'을 시도한 것이다.

지난 12일 현대중국학회(회장 장호준)와 국민대 중국인문사회연구소(소장 윤경우)의 연합학술대회가 '달라진 중국과 주체의 역동성'을 주제로 국민대에서 개최됐다. 제3세션 '사회 주체 분화의 역동성'의 사회를 맡은 조문영 연세대 교수가 토론과 질의응답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 중앙일보 중국연구소

지난 12일 현대중국학회(회장 장호준)와 국민대 중국인문사회연구소(소장 윤경우)의 연합학술대회가 '달라진 중국과 주체의 역동성'을 주제로 국민대에서 개최됐다. 제3세션 '사회 주체 분화의 역동성'의 사회를 맡은 조문영 연세대 교수가 토론과 질의응답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 중앙일보 중국연구소

하지만 패러디와 반어법, 풍자 등으로 무장한 중국 청년들의 저항은 계속되고 있다. 중국 관변매체가 주창한 '허우랑' 정체성과 '다궁런' 의미 변질 시도에 반발한 청년들의 움직임이 2021년의 '탕핑(躺平)'과 '샤오전쭤티자(小鎮做題家)' 2022년의 '쿵이지(孔乙己)' 등 신조어 유행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탕핑'은 노력하지 않고 평평하게 드러눕는다는 뜻이고, '샤오전쭤티자'는 지방 출신 대졸 취준생으로 한국의 '흙수저', '개천에서 난 용'과 비슷하다. '쿵이지'는 루쉰(魯迅) 소설에 등장한 몰락한 지식인으로 고학력 실직자를 빗대곤 한다.

김 연구원이 발표에서 언급한 그리스어 '파레시아(Parrhesia)'는 ‘비판적인 태도', '진실을 말하는 용기’, ‘위험을 감수하는 말하기’를 뜻하는 말이다. 타인과의 기울어진 권력관계 속에서 위험을 감수하는 말하기 실천을 통해 자신의 진실하고 윤리적인 태도를 지키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처럼 표현의 자유가 제한된 사회에서 패러디와 반어법 등으로 '진실을 돌려 말하는' 중국 청년들의 저항적 실천이 언젠가 진정한 '파레시아'로 거듭날 수 있을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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