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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덥죠, 저희도 알지만…" 냉방비 폭탄에 올여름은 찜통학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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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서울 시내 한 주택단지에 붙어있는 전기계량기. 연합뉴스

서울 시내 한 주택단지에 붙어있는 전기계량기. 연합뉴스

다음 주부터 에어컨 시범 가동에 들어가는 충북의 4년제 A대학은 벌써 냉방 대책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지난해 4월 전기요금으로만 2억2800만원을 냈는데, 1년 뒤인 지난달 3억1000만원이 청구된 고지서를 받았다. 1년 사이 36%가 오른 것. 이런 와중에 전기·가스요금이 이번 달부터 또 인상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A대학 관계자는 “무더위가 일찍 찾아와 냉방기 가동을 늦출 수 없는 상황이다”며 “일단 9월 30일까지 예정된 가동 기간을 21일까지 단축하기로 했지만, 올해 폭염은 언제까지 이어질지 몰라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예고된 ‘폭탄 고지서’…냉방 대책 마련에 대학 전전긍긍

서울 시내의 한 한국전력공사 협력사에서 직원이 1월 전기요금 청구서를 정리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시내의 한 한국전력공사 협력사에서 직원이 1월 전기요금 청구서를 정리하고 있다. 연합뉴스

잇따르는 공공요금 인상으로 학교 현장에서도 ‘냉방비 폭탄’에 대한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다. 지난 16일부터 전국 대부분 지역의 한낮 기온이 30도 안팎을 오르내리는 한여름 날씨를 보이면서다. 전국 초·중·고교와 대학에선 냉방기 가동을 시작하거나 서두르고 있지만, 때 이른 무더위와 함께 찾아온 전기·가스요금 인상으로 인해 당장 공과금 대책부터 세워야 할 상황이다.

특히 전기요금은 지난해 10월(kWh당 7.4원)과 올해 1월(13.1원)에 이어 이번 달에도 8원 인상이 결정되면서 올여름부터 앞선 세 차례의 인상분이 전체 냉방비에 한꺼번에 반영될 것으로 예상된다. 교육용은 통상 일반용보다 전기요금 단가가 저렴하지만, 인상 폭은 모두 똑같이 적용됐다. A대학 관계자는 “월평균 200만kWh를 쓰는데 8원 인상만 하더라도 연간 2억원가량의 전기요금을 더 내야 한다”고 토로했다. 경남의 한 국립대 재무과장은 “1월까지 인상된 전기요금은 이미 본예산에 반영했지만 5월 인상분은 다시 대책을 세워야 한다”며 “냉방기 가동 이후 날아오는 고지서를 보고 추경을 할지 다른 예산을 줄일지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지방 사립대는 예고된 ‘폭탄 고지서’에 허리띠 졸라매기에 나서야 할 처지다. 15년째 이어진 등록금 동결과 줄어드는 신입생으로 인해 재정위기에 내몰려 공과금 내기가 빠듯하기 때문이다. 교육부가 올해부터 일반대와 전문대 등 220개교에 지원하는 일반재정지원 사업비 중 일부를 공공요금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했지만, 분기마다 인상을 거듭하는 공과금 부담은 여전하다. 전남의 한 사립대 관계자는 “공공요금은 고정비다 보니 늘어난 지출만큼 예산을 무조건 반영할 수밖에 없다”며 “간호학과에서 쓰는 심폐소생술 훈련 모형과 교육용 제세동기가 낡아 교체를 검토 중이었는데 일정을 미뤄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찜통교실’ 재연될까…“요금인상 여파 가늠할 수 없어”

지난 2월 15일 더불어민주당 전국소상공인위원회 관계자가 국회 본청 앞에서 열린 가스요금·전기요금 폭탄 지원 대책 수립 촉구 기자회견에서 관련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월 15일 더불어민주당 전국소상공인위원회 관계자가 국회 본청 앞에서 열린 가스요금·전기요금 폭탄 지원 대책 수립 촉구 기자회견에서 관련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비교적 예산 확보가 안정적인 초·중·고교도 앞으로 늘어날 냉방비가 부담되기엔 마찬가지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받은 ‘전국 교육청 유·초·중·고등학교 전기·가스요금 집행 현황’에 따르면 올해 1~3월까지 전기·가스요금 납부 금액은 2810억원으로 전년 동 기간 대비 723억원(34%)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안 의원은 “여름철 냉방비 폭탄이 무서워 에어컨을 충분히 사용하지 못하는 찜통교실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다”며 “학교만이라도 공공요금 할인 혜택을 주거나 공공요금 인상만큼 학교운영비를 충분히 지원하는 등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각 시·도교육청은 ‘찜통교실’ 논란에 선을 그었다. 이미 충분히 물가인상을 고려해 본예산을 편성했거나, 추경을 통해 공공요금 인상분을 확보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교육부가 교부하는 예산 중 공립은 학교기본운영비로, 사립은 재정결함보조금을 통해 공공요금을 납부한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1차 추경으로 학교기본운영비에서 공공요금 항목으로 490억원을 추가 확보했고 사립학교의 재정결함보조금도 이미 본예산에서 2733억원을 편성했다”고 말했다. 충남교육청은 18일 추경을 통해 공공요금 인상에 따른 200억원의 학교기본운영비를 추가로 확보할 예정이다.

하지만 운영비에는 시설개선이나 비품구매, 각종 교육활동에 필요한 예산도 포함되는 만큼 공공요금 비중이 커질수록 다른 곳에 쓰일 예산이 줄어 학교 여건이 나빠질 우려도 있다. 서울의 한 중학교 교장은 “예년과 달리 무더위가 오래 이어진다고 해서 전기요금 인상에 따른 여파가 어느 정도 될지 가늠이 안 되는 상황이다. 전력 사용량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을 고심 중이다”고 말했다. 울산의 한 초등학교 행정실장은 “과거에는 에너지 절약 차원에서 에어컨 사용을 자제하자는 분위기로 인해 찜통교실 논란이 벌어지긴 했지만, 요즘에 그렇게 했다간 학부모 민원이 쏟아진다”며 “쾌적한 학습권 보장이 최우선인 만큼 충분한 재정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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