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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웰빙, 소셜 피트니스에 의한 ‘사회적 관계’가 열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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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명자 KAIST 이사장·전 환경부장관

김명자 KAIST 이사장·전 환경부장관

6월 1일부터 코로나 팬데믹이 주기적 유행 감염병인 엔데믹(endemic)으로 바뀐다. 팬데믹 사태로 핵심 키워드가 된 것이 면역이다. 그 개념이 처음 나타난 것은 기원전 430년 투키디데스의 저술에서다. 아테네 역병 때 한번 앓고 난 사람들이 다시 걸리지 않고 병구완을 했다는 내용이다. 히포크라테스 전집에는 “인체의 자연치유력(physis)이 진정한 치료제이며, 이를 높이는 것이 최고의 의사이자 최고의 치료법”이라고 돼 있다.

히포크라테스는 옳았다. “우리가 먹는 음식이 곧 우리 자신이다. 음식이 약이고 약이 음식이다. 걷기는 최고의 약이다. 우울하면 걸어라. 그래도 우울하면 더 걸어라. 신체와 정신 건강에는 적당한 햇빛이 중요하다. 수면과 각성(覺醒)이 원활치 못하면 병이 생긴다. 넘치는 것은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일이다. 진정한 의사는 당신 마음에 있다. 현명한 사람은 건강을 가장 큰 축복으로 여긴다.”

히포크라테스, 자연치유력 강조
‘사회적 관계’가 건강·웰빙의 조건
하버드대 최장기 프로젝트 결론
신뢰·긍정·공감 키우는 훈련 필요

특히 관심을 끄는 것은 사회적 고립이 발병률을 높인다면서 ‘사회적 관계(social relationship)’를 강조한 대목이다. 코로나 팬데믹에서도 사회적 관계는 면역을 결정짓는 요인으로 꼽혔다. 관련해서 1938년부터 지속되고 있는 하버드대학의 성인발달(Adult Development) 연구가 흥미롭다. 85년 전 하버드대 2학년생(268명)과 보스턴의 저소득 가정 청소년(456명) 등 724명 백인을 대상으로 노년기와 자손까지 추적한 최장기 프로젝트인데, 현재 대상자는 2000여 명이다.

4대째 연구책임자는 2002년부터 하버드대 정신과 의사이자 선불교 승려인 로버트 월딩거가 맡고 있다. 연구비 일부는 국립보건원(NIH)으로부터 받았다. 연구의 한계로 백인 남성(존 F. 케네디 대통령도 있었다!)만으로 시작하고, 경제와 환경 조건이 경시되고, 중증 트라우마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의 경우 연소득 7만5000달러 이상이면 행복이 돈과 별 상관이 없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프로젝트의 결론은 굿 라이프의 건강과 행복을 결정짓는 최대 변수가 돈도 명예도 학벌도 아닌 사회적 관계라는 것이다.

이 연구에서 아동기 가족과의 관계는 80대까지 영향을 미쳤다. 50대에 인간관계의 만족도가 높았던 사람은 80대에 건강하게 살았다. 따스한 사회적 관계를 가진 사람들은 우울증·당뇨병·심장병도 덜 걸리고 더 젊게 살았다. 외로움과 고립은 담배와 과음만큼 나빠서, 중년에 건강이 악화하고 뇌 기능도 떨어졌다.

현대 의과학은 사람의 마음을 체내에서 분비되는 물질의 상호작용으로 설명한다. 노르에피네프린, 도파민, 세로토닌, 엔도르핀, 코르티솔 등 수십가지 물질이 섞인 칵테일이 인생의 희로애락을 다스린다는 것이다. 최근 가짜 약이 진짜처럼 효력을 나타내는 플라세보 효과가 뇌신경학적 메커니즘의 조합이라는 실험결과가 나오는 등, 마음이 신체건강에 미치는 작용이 베일을 벗고 있다.

하버드 프로젝트는 사회적 관계가 건강과 행복에 미치는 영향을 스트레스 이론으로 설명한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투쟁-도피반응(fight or flight response) 상태가 된다. 에피네프린 등 스트레스 호르몬이 분비되면서 심리증상과 함께 빠른 심장박동 등 신체 증상이 유발된다. 이때 누군가 내 편인 사람과의 소통이 스트레스 조절인자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따뜻한 사회적 관계는 어떻게 얻어질까. 체력단련을 하듯 소셜 피트니스(social fitness)에 진심을 다하라는 게 처방이다. 신뢰·소통·감사·긍정·공감과 이타적 삶이 요체이다. 이에 대해 유튜브에는 어쩔 수 없는 예외가 있다는 요지의 댓글이 달렸다. 인간관계는 양보다 질이 중요하고, 상대는 배우자·친구·친척·동료 등 누구나 될 수 있다. 심지어 모르는 사람도 된다. 비교실험 결과 지하철에서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걸도록 한 그룹은 그렇지 않은 다른 그룹들에 비해 행복감이 높았다.

행복보다 광범위한 개념이 웰빙이다. 행복이 주관적인 만족·기쁨·성취감이라면 웰빙은 건강과 사회적 관계, 삶의 목적과 의미까지 포함한다. 그렇다면 사회 전반의 건강상태가 웰빙에 미치는 영향은 어떤가. 우리 현실은 웰빙을 위한 사회적 연결은 고사하고 불신·분노·분열이 고착되고 가짜뉴스와 확증편향이 판을 치는 등 온통 스트레스 중독상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자살률 1위, 노인 자살률 1위, 국민행복지수 35위, 우울증 진단받는 청년 급증 등, 이건 살고 싶은 세상이 아니다.

최근 정부 부처 명칭으로는 생소한 행복부(Ministry of Happiness, 2013년 아랍에미리트 등), 고독부(Ministry of Loneliness, 2018년 영국)가 생겨났다. 일본은 2019년 행복부 설립에 이어 2021년 고독·고립 대책을 맡은 직책을 신설했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우리 사회의 불행을 더는 방치할 수는 없다. 국회가 앞장서 여야가 함께 사회적 웰빙을 위한 기구를 만들어 투쟁이 아닌 신뢰·소통·공감·복원력을 위한 사회운동에 나서기를 바란다면 지나친 기대일까.

김명자 KAIST 이사장·전 환경부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