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3월 29일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가 ‘소아청소년과 폐과와 대국민 작별인사’라는 제목으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소아과 전공의 부족 심화, 응급실 운영 차질
필수의료 기피 해소할 인센티브 마련 시급
40도 고열과 기침에 시달리던 5세 어린이가 구급차에 실려 갔지만 입원할 병원을 찾지 못해 숨지고 말았다. 의료 취약지역에서 예외적으로 벌어진 사건이 아니다. 어린이날 연휴였던 지난 6~7일 서울 한복판에서 생긴 일이다. 지난 6일 밤 신고를 받고 출동한 119 구급대원은 전화로 대학병원을 포함한 네 곳에 연락을 취했지만 “병상이 없다”거나 “진료할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 다섯 번째 병원에서 아이는 급성 폐쇄성 후두염이란 진단을 받았지만 입원할 수 없었다. 일단 집으로 돌아갔던 아이는 지난 7일 밤 집에서 쓰러져 다시 병원을 찾았고, 결국 깨어나지 못했다.
이번 일은 소아청소년과의 응급 진료 체계가 심각하게 무너진 상황을 보여준다. 실제로 야간이나 휴일에 아픈 아이를 안고 병원을 찾지 못해 발만 동동 굴렀다고 하소연하는 부모가 적지 않다. 일차적 원인은 상급 종합병원에서 소아과 전공의(레지던트) 부족이 극심한 때문이다. 국내 주요 종합병원은 전공의 없이 교수나 전문의만으로는 돌아가지 않는 게 현실이다. 올해 전국 수련병원의 소아과 전공의 모집 현황을 보면 정원 207명에 지원자는 33명(모집률 15.9%)에 그쳤다. 소아과 전공의 모집률은 2019년 처음 미달을 기록한 이후 해를 거듭할수록 급감하는 추세다. 상당수 종합병원은 올해 단 한 명의 소아과 전공의도 충원하지 못했다.
소아과 전공의 지원자가 급감한 건 의료계에서 “미래가 없는 전공”이란 인식이 퍼지고 있어서다. 저출산으로 어린이 환자 수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진료 부담에 비해 경제적 보상은 충분치 않다고 소아과 의사들은 말한다. 예민한 보호자를 상대해야 하는 감정적 소모와 의료소송에 대한 부담이 커진 것도 소아과를 기피하는 이유로 꼽힌다.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는 “소아과 전문의로 병·의원을 열어도 미래가 있다는 비전을 보여줘야 전공의 지원이 늘어 대학병원이 유지될 수 있다”며 “소아청소년과 폐과 상황이라고 눈물 흘리며 외쳐도 (정부는) 무성의한 대책으로 일관해 왔다”고 주장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2월 ‘소아 의료체계 개선 대책’을 내놨지만 의료 현장의 분위기는 여전히 싸늘하다. 복지부가 제시한 어린이 공공전문진료센터 확충 등도 필요하지만 근본적인 대책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무엇보다 의대를 졸업하고 전공의 과정을 앞둔 지원자들이 소아과 같은 필수의료를 선택할 수 있게 실효성 있는 인센티브를 마련하는 게 시급하다. 건강보험 수가나 병원 운영 등에서 소아과를 우대하는 방안도 적극 고려해야 한다. 저출산 시대에 어렵게 얻은 아이들을 의료 체계의 문제로 건강하게 키워내지 못하는 건 사회적으로도 부끄러운 일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