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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정민의 퍼스펙티브

비호감 정치에 혐오는 최고조, 제3세력은 안 보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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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이정민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2024년 총선, 신당 바람 불까

이정민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정민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 이후 한국 정치는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을 두 축으로 한 양당 체제로 고착화했다. 양당 구도를 깨려는 제3신당 실험도 여러 번 있었다. 그간 숱한 신당이 명멸했다.

제3신당 실험에 대한 정치사적 평가는 잠시 접어두자. 주목할 점은 선거 때면 제3지대 신당론이 출현하는 현실이다. 견고해 보이지만 틈새가 갈라져 있거나 지층이 불안정하다는 반증이다. 지난 경험에서 보듯, 작은 균열이라도 분출한 선거 민심과 결합하면 예측 불허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금태섭

금태섭

1년이 채 남지 않은 22대 총선(2024년 4월 10일). 이번엔 ‘금태섭(전 민주당 의원) 신당론’이 대두했다. “수도권 30석”이 목표라지만 현재로선 미풍도 느껴지지 않는다. 신당의 필요조건이랄 수 있는 ▶걸출한 리더 ▶정책과 비전 ▶새 인물 수혈이 보이지 않는다. 공염불로 끝날지 모른다.

 ‘적대적 공생’ 양당 체제에 불신
“제3세력 나오면 지지받을 것”

여야 현역들, 온실 안주하려 해
“강성팬덤 있는 게 선거엔 유리”

편가르기 정치에 새 바람 일까
총선 끝난 뒤 신당 출현 전망도

그러나 “비호감 정치에 대한 유권자의 불신이 임계점에 달하고 있어 믿을만한 제3세력이 나오면 민심의 지지를 받을 가능성이 있다”(윤여준 전 의원)는 관측도 만만치 않다. 국민의 삶과 유리된 채 정치 생명 연장만을 노린 포퓰리즘, 위선과 비리, 증오와 혐오를 퍼 날라 재생산하는 편가르기 정치에 자정 능력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비판도 높다. 지성과 합리를 밀어내고 정치를 양극단으로 내모는 광풍 정치, 강성 팬덤 현상도 제3의 정치세력 출현을 재촉하는 요인이다. 2024년 총선, 과연 제3당 실험은 성공할까.

TK 석권한 자민련, 호남 휩쓴 국민의당

이정민의 퍼스펙티브

이정민의 퍼스펙티브

역대 총선에서 돌풍을 일으킨 제3신당은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통일국민당(14대 총선 31석), 고 김종필(JP) 총리의 자유민주연합(15대 총선 50석), 안철수 의원의 국민의당(20대 총선 38석)이다. 대선주자급의 정치 리더가 깃발을 들고 지역 맹주나 명망가들이 가세해 성공한 경우다.

‘반값 아파트’를 대표 공약으로 내세운 통일국민당은 민생을 파고드는 실용주의로 기성 정치권과 차별화했고, YS(김영삼 전 대통령)의 민주계와 갈등하던 JP는 이른바 ‘원조 보수론’을 앞세워 충청과 TK(대구·경북)를 공략했다. 안철수 의원은 ‘새 정치’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걸어 바람을 일으켰다.

자민련과 국민의당은 위력적이었다. 거대 양당의 핵심 지지기반을 뒤흔들었기 때문이다. 자민련은 충청은 물론 수도권과 강원에서도 당선자를 냈고, 특히 비(非) YS 정서가 팽배했던 TK를 집중 공략해 대구 지역구 13석 중 8석을 석권했다. ‘원조 보수’라는 프레임에 걸맞은 박준규·박철언 전 의원 같은 TK 거물들을 결합한 전략이 먹혀들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안철수의 국민의당은 ‘새정치+호남’ 연합군의 승리였다. 김한길·박지원·정동영 전 의원 등 문재인 세력과 갈등하던 동교동계와 호남 중진들이 분당(分黨)해 호남 지역구 28석 중 23석을 거머쥐는 이변을 낳았다. 정당 비례대표 투표에선 제1당 민주당(25.5%)보다 높은 26.7%를 득표했다.

정치 컨설턴트 박성민씨는 “국민의당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호남의 지지뿐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과 유승민 의원 간 갈등과 진박감별사 사태, 공천 파동으로 새누리당을 이탈한 중도와 보수까지 견인해낼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양당 모두에서 동시 균열이 일어나고 ▶유명세가 있는 인물군이 가세했을 때 신당은 탄력을 받는다. 신당 성공의 방정식이다.

반면 2000년 민국당 사태는 이와 대비된다.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의 ‘물갈이 공천’에 반발, 김윤환·조순·이기택 전 의원 등 공천 탈락한 중진들이 영남 기반의 신당을 창당했지만 영남에서 단 한 석도 건지지 못한 대참패로 끝났다. 한나라당이 ‘새 정치’ 명분을 선점한 데다 “민국당 찍으면 DJ 돕는 것”이란 정서가 퍼져 있었기 때문이다.

20대의 50%가 무당층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지난 대선 이후 무당층이 계속 늘어 30%(5월 둘째 주 조사 28%)에 육박하고 있다. 무당층은 평소엔 늘었다가 선거가 가까워져 오면 줄어들지만, 이번엔 2030, 특히 20대의 이탈이 급증한 게 특이점이다. 2022년 1월 평균 34%이던 20대 무당층은 꾸준히 늘어 지난달엔 53%에 달했다. 같은 기간 30대는 26%→36%로 증가했다. 허진재 한국갤럽 이사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부터 지난 대선까지 높은 투표율을 보였던 20, 30대가 진보·보수 양당으로부터 지지를 철회한 상태”라며 “내 삶은 개선된 게 없고 정치는 오히려 더 후퇴해 양극단의 혐오를 만들어내는 데 실망해 불신이 커졌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20대의 이탈이 신당의 동력으로 연결될지는 미지수다.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소장은 “지난 대선 땐 개딸(개혁의 딸)이나 이준석 키즈 등 20대가 조직화됐지만 지금은 오히려 파편화돼 있다. 이들이 집단화하려면 서로 공유할 정치적 연결고리가 있어야 하는데 현재로선 그런 게 보이지 않는다”며 부정적 전망을 내놨다. 또 “20대를 견인할 아이돌 같은 인기를 끌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라며 인물 부재를 지적했다.

과거 절대적 지지를 보냈던 영남·호남 민심도 예전만 못하다. 국힘의 대구·경북(51%), 부산·울산·경남(40%) 지지율은 저조하다. 과거엔 대통령의 높은 인기가 집권당의 지지율을 견인했지만, 막 집권 1년을 넘긴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은 27~37%(지난 20주 통계)의 박스권에 갇혀 있다. 한국갤럽의 5월 둘째 주 조사에서 윤 대통령이 ‘잘하고 있다’는 응답은 대구·경북에서 52%, 부·울·경에선 당 지지율보다 낮은 37%였다. ▶안철수·이준석·나경원 사태에서 드러난 당내 민주주의 실종 ▶일방통행식 리더십과 줄세우기 ▶지지부진한 부패 수사와 무능으로 보수·중도 지지층이 이탈, 관망으로 돌아섰다는 게 여론조사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민주당도 비슷하다. 70% 이상 높은 지지를 보이던 광주·전라의 민주당 지지율은 53%로 떨어졌다. 대장동, 돈봉투, 김남국 의혹 등 사법 리스크와 입법 폭주, 팬덤에만 의존한 이재명 체제에 실망한 탓이다.

“이재명 체제와 타협 정서가 더 커”

구심력보다 밖으로 튕겨 나가려는 원심력이 더 클 때 분당 사태가 벌어진다. 정치권에선 우선 이재명 체제를 주목한다. 이 대표가 사퇴하거나, 거꾸로 비 이재명계에 대한 공천 배제 등 잡음이 커질 경우 이탈 세력이 생길 수 있고, 이렇게 되면 양당의 적대적 공생을 유지하는 틀이 무너질 수 있다고 본다. “이재명 후보가 될까 봐 윤석열 후보를 지지했던 중도층의 선택 폭이 넓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 내 기류는 다르다. 이재명 사퇴론이 고개를 들고 있지만 이탈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공천이 보장된다면 이 대표와 타협하는 쪽을 택할 의원들이 많다. 강성 팬덤이 선거에는 나쁘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라고 한 중진 의원은 설명했다. 이상민 의원도 “5% 중도를 얻으려다 5% 열성파를 잃을 수 있다는 게 대체적인 정서”라고 당내 기류를 전했다.

현재 수도권 121석 중 100석(83%)이 민주당 의원이다. “수도권 민심을 볼 때, 지금 구도가 나쁘지 않다고 보기 때문에 민주당 현역 의원들이 움직이지 않는다”(금 전 의원)는 분석이다. 현 구도를 깨려면 국민의힘이 개혁 공천을 해야 하지만, 좋은 인물군 발탁이 쉽지 않고 기성 정치인이 반발할 것이기 때문에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신당 깃발을 앞세울 지역 맹주 혹은 중간 보스를 찾기 힘들어졌다는 것도 신당 창당엔 부정적 요인이다. 그간의 학습효과로 양당 모두 ‘모험’보다 ‘온실’에 안주하려는 경향이 높아져서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정당 기대”

그래서 신당의 출현이 총선 이후에나 가능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재명 체제의 민주당이 총선에서 승리하면 비명계는 같이 못 갈 것이고, 패배하면 희망 없다고 본 세력들이 총선 후에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배종찬 소장)는 예측이다. 국민의힘이 패배할 경우 분당 수순을 밟게 될 수 있다.

신당론자들은 양당 체제에 대한 반감이 너무 크기 때문에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궤적을 살아온 민주적·합리적인 세력이 등장하면 기대를 모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금태섭 전 의원은 “과반수 득표한 박근혜 대통령은 탄핵으로 끝났고 통합정치의 기대를 걸었던 문재인에 이어 윤석열 대통령도 편가르기 정치를 하고 있다. 한 사람의 뛰어난 정치인이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다는 판타지가 식상해졌고 유권자도 이제 달라졌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