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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암 3기에 붓든 92세 박서보 "아직 그려야 할 게 남았습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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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권혁재 기자 중앙일보 사진전문기자
권혁재의 사람사진/ 박서보 화가

권혁재의 사람사진/ 박서보 화가

최근 문화계에서 박서보 화가가 ‘뜨거운 감자’였다.
‘광주비엔날레 박서보 예술상’의 폐지 논란이 이유였다.
논란 끝에 광주비엔날레 재단이 상을 폐지하기까지 이르렀다.

박서보 화가의 심경이 어떨까 하여 그의 SNS를 살폈다.
"광주비엔날레가 ‘박서보 예술상’ 문제로 어수선하다.
지난해 2월 공표됐기 때문에 의견수렴의 기간이 충분히 있었다.
반대 의견이 많았다면 다른 해결책을 찾았을 것이다. (중략)
광주비엔날레 재단 측과 박서보 예술상을 폐지하기로 합의하였다."

아쉬움이 밴 그의 심경과 아울러 지난 2월의 건강 고백에 눈이 머물렀다.
"폐암 3기 판정을 받았다.
내 나이 아흔둘,
당장 죽어도 장수했다는 소리를 들을 텐데
선물처럼 주어진 시간이라 생각한다.
작업에 전념하며 더 의미 있게 시간을 보낼 것이다. (중략)
사는 것은 충분했는데, 아직 그리고 싶은 것들이 남았다.
그 시간만큼 알뜰하게 살아보련다."

박서보 화가는 ″지금 나는 어느 때보다 평온하고 열정으로 가득 차 있다″며 심경을 그의 SNS에 밝혔다.

박서보 화가는 ″지금 나는 어느 때보다 평온하고 열정으로 가득 차 있다″며 심경을 그의 SNS에 밝혔다.

그는 당신의 건강상태를 알리며 더는 안부를 묻지 말라며 당부했다.
당신에게는 그 시간도 아깝다는 게 이유였다.

올 3월, 제주 JW메리어트 호텔에서 ‘박서보 미술관 기공식이 있었다.
이 자리에서 그는 당신의 건강에 대한 심경을 한 번 더 밝혔다.
“처음에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 암을 친구로 모시자, 함께 살자고 생각했다.
새로운 작업을 위해 방사선 치료를 받지 않기로 했다.”

이 말끝에 2021년 그가 아흔이던 해 기자에게 들려줬던 말이 떠올랐다.
“죽음을 준비하는 게 즐겁다. 떠날 것은 뻔한데 아등바등할 이유가 있겠나.
죽음도 삶이다. 죽음이라는 이름의 또 다른 삶이다.”

묘비명의 의미를 박서보 화가는 “우리는 끊임없이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변화는 한순간에 오지 않는다. 나 자신을 차갑게 바라보는 사고의 확장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런데 잘못 변화해도 추락한다. 자기 것으로 완전히 소화하지 못한 변화는 오히려 작가의 생명을 단축한다. 그걸 경계하라는 뜻이다”고 했다.

묘비명의 의미를 박서보 화가는 “우리는 끊임없이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변화는 한순간에 오지 않는다. 나 자신을 차갑게 바라보는 사고의 확장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런데 잘못 변화해도 추락한다. 자기 것으로 완전히 소화하지 못한 변화는 오히려 작가의 생명을 단축한다. 그걸 경계하라는 뜻이다”고 했다.

‘죽음도 삶’이라는 노 화백은 묘비에 쓸 당신의 좌우명을 써놓았다고 했다.
바로 ‘변화하지 않으면 추락한다. 변화해도 추락한다’였다.
평생 그리고 또 그리며, 바꾸고 또 바꾸어 온 당신 삶의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