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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병기 ‘필향만리’

思無邪(사무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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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

『시경(詩經)』 은 중국 고대 주(周)나라 때 여러 제후국의 시가를 모아 놓은 시가총집으로서 오경(五經) 중의 하나이다. 『시경』 ‘노송(魯頌·노나라 제사 노래)’의 한 편인 ‘경(駉·튼튼한 말)’편 제4장에는 노나라 제후인 희공(僖公)이 말을 잘 기르는 것을 칭송하여 “말을 기를 때 생각에 삿됨이 없었으니, 말이 잘 자라서 힘차게 내달렸다네”라고 읊은 시가 있다. 여기에 나오는 ‘생각에 삿됨이 없다’라는 말이 곧 ‘사무사(思無邪)’이다. 말을 기를 때에도 사악한 생각을 하지 않아야 말이 명마로 자라듯 모든 일은 사악한 꼼수를 부리지 않아야 제대로 이루어진다는 뜻을 담은 시이다.

思:생각할 사, 邪:삿될(사악할) 사. 생각에 삿됨이 없다. 25x72㎝

思:생각할 사, 邪:삿될(사악할) 사. 생각에 삿됨이 없다. 25x72㎝

공자는 이 ‘사무사(思無邪)’라는 말을 인용하여 “시 300편을 한 마디로 개괄하자면 ‘생각에 사특함이 없다’라고 할 수 있다”고 하였다. 『시경』 시의 특징을 ‘思無邪’로 평가하고, ‘사무사’의 시를 좋은 시로 본 것이다. 이후, ‘사무사’는 시뿐 아니라 모든 예술은 물론 인품도 평가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요즈음 시, 노래, 그림, 춤 등이 순수를 떠나 삿된 자극으로 인기만을 추구하는 경향이 옅지 않다. ‘사무사’의 의미를 상기해야 할 때이다. 갈증을 풀어주는 것은 자극적인 가공음료가 아니라 순수한 맹물이므로.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