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만 몰랐던 알뜰폰의 비밀
“알뜰폰요? 효도폰 아닌가요” “서비스가 후질 것 같다”. 이처럼 천대받던 알뜰폰이 2012년 첫 출시 후 11년 만에 전성시대를 맞았다. 지난해에만 108만6800여 명이 통신 3사에서 알뜰폰으로 갈아탔다. 알뜰폰의 정식 명칭은 가상이동통신망사업자(MVNO). SK텔레콤·KT·LG유플러스 등 이동통신망사업자(MNO)의 망을 빌린 사업자가 자체 브랜드로 판매하는 이동통신 서비스다. 지난 4월 한 달간 알뜰폰 요금제로 바꾼 가입자는 무려 9만6795명. 서비스 출시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통사의 월 6만9000원 LTE 요금제와 같은 망을 쓰는 알뜰폰 요금제를 비교해 봤다. 같은 조건(월 100GB+5Mbps)인데 알뜰폰 요금은 처음 7개월간 월 1만1100원, 8개월부터 월 4만4100원이다. 24개월간 월 데이터 150GB도 추가로 준다. 알뜰폰 가입 1년이면 52만9800원을 버는 셈. 알뜰폰 요금제 비교 사이트 ‘알뜰폰 허브’를 운영하는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에 따르면 프로모션 요금제의 경우 알뜰폰이 비슷한 조건의 통신 3사에 비해 약 55~85% 저렴하다. 자급제폰을 샀거나 기존 약정이 끝난 사람이 대상이다. 통신 3사가 제공하는 기기 할인 혜택은 받지 못한다. 직장인 이모(36)씨는 “회사의 통신비 지원 한도(4만원)를 맞추려고 1년 전 알뜰폰으로 갈아탔다”며 “8만원대 요금제와 비슷한 조건이 알뜰폰에선 4만원”이라고 말했다.
세종텔레콤의 알뜰폰 서비스 ‘스노우맨’은 지난달 신규 가입이나 번호 이동 고객을 대상으로 ‘0원 요금제’를 선보였다. 7개월간 기본 데이터(11GB)에 150GB를 추가하고 소진 시 매일 2GB씩, 매달 총 221GB를 0원에 그냥 준다. 선착순 1000명 가입 신청에 홈페이지가 마비될 만큼 화제가 됐다. 이런 0원 요금제는 지난 8일 기준 총 35종이나 된다.
파격 요금제의 비결은 통신 3사가 알뜰폰 사업자들에 지급하는 보조금에 있다. 중소 알뜰폰업체 대표 A씨는 “알뜰폰 가입 1건마다 통신사가 약 20만원의 보조금을 준다”며 “요즘은 통신사도 최대한 많은 사업자에게 망을 대여해 알뜰폰 시장에서 영향력을 높이길 원한다”고 말했다.
알뜰폰은 0원 요금 등 7개월 할인가격을 쓴 뒤 다른 요금제로 갈아탈 수 있어 신규 가입자 혜택만 찾아다니는 ‘체리피커’도 늘고 있다. 직장인 서모(35)씨가 쓰는 갤럭시노트10에는 벌써 네 번째 알뜰폰 유심칩이 꽂혀 있다. 그는 매달 유튜버의 ‘이달의 알뜰폰 요금제’ 소개 영상을 챙겨본 뒤 프로모션 기간이 끝나면 다른 알뜰폰 요금제로 갈아타고 있다. 서씨는 “프로모션이 끝나면 요금이 1.5~2배가 되는데, 약정이 없으니 7~8개월마다 갈아타면 된다”고 했다.
실제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에 따르면 지난달 총 24만7428명이 알뜰폰으로 번호이동을 했다. 이 중 알뜰폰→알뜰폰 이동이 60.9%(15만633명)로 통신 3사→알뜰폰 이동(39.1%·9만6795명)보다 더 많았다. 이처럼 저렴한 알뜰폰 프로모션을 찾아 옮겨다니는 환승족은 지난해보다 2.5배나 늘었다.
알뜰폰이 비상하기 시작한 건 3년 전인 2020년부터다. 중소 알뜰폰 업체들로선 통신 3사의 강력한 오프라인 유통망은 ‘넘사벽’이었다. 그런데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비대면 온라인 가입이 확산하면서 실속파 MZ세대 눈에 알뜰폰이 들어왔다. 특히 아이폰 인기가 치솟으며 알뜰폰 시장엔 호재로 작용했다. 아이폰을 자급제폰으로 사고, 요금제는 알뜰폰을 쓰는 ‘꿀조합’이 퍼진 것. 알뜰폰이 싼 만큼 통화·데이터 서비스는 나쁠 것이란 생각은 잘못된 편견이다. 통신 3사 망을 빌려 쓰기 때문에 품질은 같다. 요금이 싼 건 기지국 등 설비투자 지출이 없었고 오프라인 대리점을 운영하지 않아 유통 비용도 덜 쓰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