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기고

정치 이야기, 금기시 말고 ‘공존형 토론’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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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가끔 이런 농담 섞인 예를 든다. 부부 싸움이 격화되면 때로 접시도 깨진다. 잘못하면 가정폭력이 된다. ‘이런 짐승’ 같은 거친 말도 터져 나온다. 언어폭력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부부 싸움이 끝난 다음에는 자기도 모르게 쏟아낸 마음속 찌꺼기 같은 말의 과도함을 후회하고 상대방에게 미안함을 전한다. “싸울 때는 뭔 말을 못 해”라고 하면서 싸울 때의 자신과 평정을 찾은 자신과의 사이에 거리를 둔다. 싸움이라는 것이 그렇다.

그런데 부부 싸움이 끝난 이후에도 싸움 과정에서 사용된 그 격정적 언어를 실체로 생각하고 상대방을 ‘짐승’으로 생각한다면, 그 가정은 이미 해체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최근 들어 우리 사회가 해체 위기의 가정처럼 정치적·사회적으로 생각이 다른 상대방을 ‘진짜 짐승’으로 생각하고 싸우는 경우가 많다고 느낀다.

‘두 개의 국민’이 사는 대한민국
찬반 입장 바꿔 소통·토론 필요
‘삼칠제 민주주의’에 기여할 것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영국 랭커스터대 석좌교수 밥 제솝은 ‘두 개의 국민(two nations)’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두 개의 국민이란 복지에 의존하는 국민과 그렇지 않은 국민을 말한다. 마거릿 대처 정부 시절 국민을 양분하는 신보수주의 정책 기조와 통치 전략을 개념화한 말이라 한국 현실과 의미는 조금 다르다. 하지만 말 그대로 갈라진 ‘두 개의 국민’이 일상까지 파고든 게 아니냐는 걱정을 하고 있다.

작금의 해체 위기 양상에 대한 해법으로 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정치 이야기의 금기화’까지 제안했다. 나이를 묻거나 결혼 여부를 묻는 것을 금기로 하듯이 말이다. 일리가 있는 제안이라 생각이 드는 상황 자체가 역설적이다.

필자는 이 위기 양상을 극복하려면 정치 얘기를 회피할 게 아니라 더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몇 가지 규범을 준수하면서 말이다. 현실을 직시한 ‘공존형 토론’을 다른 해법으로 제안한다. 서울 일부 학교에서 시행 중인 ‘사회 현안 토론 수업’이 공존형 토론의 모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가령 ‘신약 개발을 위해 동물 실험을 해도 되느냐’는 문제로 토론할 때 이 수업은 다음의 과정을 밟는다.

가장 먼저 하는 것이 논점 파악이다. 그다음은 사실(팩트)에 근거한 토론 준비를 하는 1차 자료 분석, 그다음은 찬반을 정해서 하는 1차 토론이다. 이 토론 내용을 토대로 2차 자료 분석을 하고, 이번에는 찬반 입장을 바꿔 2차 토론을 한다. 이렇게 해서 합의안(결론)을 도출한다. 토론 과정에서 갈등과 논쟁을 회피하지 않고 사실에 기반해 토론하는 것, 무엇보다 찬반 입장을 바꿔보는 것이 기존 토론과의 차별점이다.

결론도 반드시 만장일치이거나 한 가지일 필요가 없다. 토론 결과 대체로 열에 일곱 정도는 대립하는 입장이 지속하더라도 셋 정도는 공통분모를 도출할 수 있었다고 한다. 비록 작은 비율이지만 이 셋은 역지사지(易地思之)와 숙의(熟議)를 통해 수용된 것으로 토론의 값진 최대 공약수라 할 수 있다.

이런 공존형 토론의 확산이야말로 ‘해체 위기의 가정’ 또는 ‘두 개의 국민이 사는 나라’를 맞지 않게 할 ‘백신’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불편하다는 이유로 정치 얘기를 단순히 금기시하는 것보다는 공존을 위한 소통을 해야 이 첨예한 적대적 갈등의 시대에 중간 지대가 넓어질 수 있다고 믿는다.

공존형 토론이 일상화된다면 정치 영역에서는 ‘삼칠(3·7)제 민주주의’가 자리 잡을 수 있다. 한국 정치에서 현실적으로 여야의 투쟁 영역을 배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지금처럼 투쟁이 모두여선 안된다. 공존도 숨 쉴 자리가 있어야 한다. 투쟁과 공존의 정치 배합이 3대 7이라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최소한 그 반대라도 돼야 한다고 본다. 우리 사회가 점차 단순 이분법을 넘어서기 위해 거쳐야 할 필수적인 과정이라 생각해서다.

공존형 토론이나 삼칠제 민주주의는 의견의 차이를 다양성과 다원성으로 인정하는 데서 가능하다. 하지만 아직도 보수·진보 간에는 물론 보수·진보의 각 내부에도 다원성과 다양성에 대한 인정이 절실하다. 이미 절대 선악 구도는 약화한 지 오래고, 단순 이분법적 사고로는 해결책을 발견할 수 없는 복잡 사회에 우리는 도달해 있다. 공존형 토론은 한국사회가 후진국이 아니라 선진국에 도달한 지금 변화된 현실이 요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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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연 서울시교육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