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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국회로 돌아온 간호법, 여야 대타협으로 파국 막아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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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윤 대통령, 야당 강행처리 법안에 두 번째 거부권

의료계·정치권, 대립 대신 대체입법 지혜 모아야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국무회의에서 야당 주도로 통과된 간호법 제정안에 재의를 요구했다. 지난달 4일 양곡관리법에 이어 집권 1년 만에 두 번째 거부권 행사다. 이로써 의료 직역 간 첨예한 갈등과 의료대란 우려를 빚어 온 간호법 제정 논란은 원점으로 돌아갔다.

공은 다시 국회로 넘어왔지만 꼬인 실타래를 풀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간호사협회는 거부권 행사에 강력히 반발하며 단체행동을 예고했다. 지난 12일 광화문 집회에 2만 명을 동원하며 세를 과시한 간호사협회는 면허증 반납과 간호 업무 외 의료활동을 하지 않는 ‘태업’ 등으로 반대 운동을 이어갈 계획이다. 의사협회 역시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의료인의 면허를 취소하는 개정 의료법이 거부권 대상에서 빠진 데 반발하며 개정 촉구 투쟁을 선언, 의료 현장의 혼란이 불가피해 보인다. 3년 넘은 코로나 위기를 며칠 전 겨우 극복한 마당에 의료인들이 직역 이익을 놓고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볼모로 이전투구를 벌이고 있으니 참담할 뿐이다.

정치권의 책임도 막중하다. 다수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토론도 생략한 채 의석수로 간호법 통과를 밀어붙였다. 간호법이 의료계 갈등의 불씨가 될 걸 뻔히 알면서도 대통령의 거부권을 유도해 정치적 이득을 챙기려는 의도가 눈에 보인다. 민주당은 내친김에 방송법과 ‘노란봉투법’도 강행 처리해 대통령의 거부권 유도를 이어갈 태세라니 입법 폭주의 끝이 어디일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여당과 보건 당국도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간호법 논란에 손을 놓고 직역 간 갈등을 방치한 끝에 중재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대선후보 시절 간호법 개정을 공약했음에도 취임 이후 입법에 진전을 이루지 못한 끝에 거부권 카드를 재차 꺼내든 대통령도 이 모든 파행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순 없다. 이렇게 현안마다 야당의 입법 독주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반복되면 정치는 실종되고 국민의 피로감만 가중될 것이다.

이제는 의료계와 정치권 모두 극한 대립을 멈추고 한 발씩 물러서야 한다. 간호법이 발효되면 현행 의료법에 근거한 의료 시스템이 흔들리고, 72만 명이 넘는 간호조무사의 응시 자격이 ‘고졸’로 제한되는 등 직역 갈등이 심화할 것이란 지적은 일리가 있다. 반면에 간호사 4명 중 3명이 이직을 고려했다는 조사가 나올 만큼 열악한 간호사들의 근무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입법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국회로 돌아온 간호법안이 다음 국회 본회의에서 재표결되면 부결돼 자동 폐기될 것이 확실하다. 파국을 피하려면 여야가 재표결 대신 의료계와 머리를 맞대고 모두가 수용할 수 있는 대체법안을 입법하는 수밖에 없다. 거부권이 행사된 법안의 처리 시한은 없는 만큼, 국민 건강을 최우선에 두고 충분한 토론을 거친다면 합의를 만들지 못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