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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 다리 잃고도 페달 밟았다…선수로 다시 선 자전거 유튜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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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지난 4일 벨기에에서 개막한 UCI(국제사이클연맹) 패러 사이클링 월드컵에 출전했던 박찬종(33)씨. 그는 왼쪽 다리에 의족을 착용하고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김종호 기자

지난 4일 벨기에에서 개막한 UCI(국제사이클연맹) 패러 사이클링 월드컵에 출전했던 박찬종(33)씨. 그는 왼쪽 다리에 의족을 착용하고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김종호 기자

지난 5일 벨기에 오스텐데에서 열린 UCI(국제사이클연맹·Union Cycliste Internationale) 패러 사이클링 월드컵. 출발선에 선 박찬종(33)씨는 왼쪽 다리에 의족을 찬 채 페달을 힘차게 밟았다. 자전거 유튜버로 유명했던 그는 지난해 9월, 5t 트럭에 치이는 사고를 당한 뒤 왼쪽 다리를 무릎 위까지 절단해야 했다. 그로부터 약 7개월 뒤, 그는 장애인 사이클링 선수로서의 인생 2막을 위해 첫걸음을 내디뎠다. 그의 이야기는 자전거 동호인 사이에서 큰 화제가 됐다. 대회를 마치고 온 그를 지난 12일 만났다.

UCI 월드컵은 매년 이탈리아·벨기에·미국에서 총 세 차례 진행되는 장애인 사이클 대회다. 박씨는 독주, 개인도로 두 종목에 참가했다. 경기 결과는 참가자 34명 중 독주 27등, 개인도로 26등이었다.

 박씨는 다리 절단 수술을 받은지 7개월 만에 벨기에 UCI 패러 사이클링 월드컵에 출전했다. 사진 박찬종씨 제공

박씨는 다리 절단 수술을 받은지 7개월 만에 벨기에 UCI 패러 사이클링 월드컵에 출전했다. 사진 박찬종씨 제공

결과에 만족하나.
사실 첫 국제대회 출전이 이번 월드컵이어서 꼴등을 면하는 게 목표였다. 선방했다고 생각한다. (웃음)
의족을 착용하고 자전거를 타는 건 쉽지 않을 것 같다.
몸 양쪽 균형차가 커서 처음엔 많이 휘청거렸다. 의족을 찬 왼쪽 허벅지가 오른쪽보다 8cm 정도 더 길다. 좌회전하려고 핸들을 돌리면 핸들 바가 무릎 쪽에 닿아 넘어질 뻔한 적도 많다. 허벅지 근육 대부분이 무릎 아래쪽과 연결돼있는데, 난 무릎 위까지 절단해서 쓸 수가 없다. 대신 둔근(엉덩이 안쪽의 근육)을 사용하는 데 적응하는 시간이 꽤 걸렸다.
연습은 얼마나 했나.

수술 뒤 112일째 되던 날 의족을 착용하고 처음으로 걸었다. 재활 치료를 거쳐 자전거를 탄 건 3주 정도다. 2주 합숙 훈련을 하면서 처음으로 야외에서 자전거를 탔다. 이후 실내에서 하루에 2~3시간씩 탔다. 하루에 소화할 수 있는 운동량의 최대치다.

대회 참가를 위해 벨기에로 출국하기 전 공항에서 찍은 사진. 사진 CJPARK 블로그 캡처

대회 참가를 위해 벨기에로 출국하기 전 공항에서 찍은 사진. 사진 CJPARK 블로그 캡처

지난해 9월 23일, 화학 제조회사 연구직으로 일하던 박씨는 자전거를 타고 퇴근하던 중 교통사고를 당했다. 2차선에 있던 5t 트럭 운전자가 3차선 우측에 있던 그를 발견하지 못하고 도로 우측 건물에 진입하려다가 들이받았다. 의식을 잃어갈 때쯤 응급 헬기로 아주대 외상센터로 이송됐다. 그는 "엄청난 통증에 숨까지 안 쉬어져 죽는 건가 싶었다"며 "트럭 기사가 차 밑으로 기어와 절규하며 손을 잡아주는데, 생의 마지막이란 생각에 용서하는 마음마저 들었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절단 수술 뒤 치료를 받으며 그는 블로그에 병상일기를 썼다. 다시 자전거를 타겠다는 의지를 밝히며 올린 사진이 자전거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퍼져 많은 응원을 받았다.

왜 자전거를 다시 타기로 했나.
한동안 자전거를 타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다. 가족에게 용품도 다 버리라고 했다. 그런데 사고 소식을 들은 친구가 "다리를 잃었지만 온전히 남아있는 나머지 몸으로 뭐든 할 수 있다"고 말해줬다. 유튜버로 활동하며 자전거 동호인 문화에 어느 정도 영향을 줬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한순간에 사라지면 사고 뒤 절망에 빠져버린 안 좋은 사례가 될 것 같았다.
박씨가 블로그에 "의족이 없지 의지가 없냐"며 올린 이 사진은 자전거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퍼지면서 큰 호응을 얻었다. 사진 박찬종씨 제공

박씨가 블로그에 "의족이 없지 의지가 없냐"며 올린 이 사진은 자전거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퍼지면서 큰 호응을 얻었다. 사진 박찬종씨 제공

선수가 되기로 결심한 건 지난해 12월, 장애인 사이클링 국가대표 감독의 연락을 받으면서다. 감독은 사고가 난 지 얼마 안 된 그에게 출전을 제안할지를 놓고 많이 고민했지만, 강한 의지가 보여 연락했다고 한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 같다.
자전거를 다시 탄다고 하니 의족·자전거·의류 업체에서 지원을 해주셨다. 문득 책임감이 들었다. 내가 지원받은 의족 비용은 다른 장애인들이 의족을 사서 낸 돈에서 나온 거니까. 이렇게 지원을 받으면서 고작 취미로 자전거를 타면 안 될 것 같았다. 장애인 스포츠의 어려운 현실도 보였다. 이왕이면 내가 많이 노출돼서 장애인 선수의 삶을 알려야겠다고, 나를 보고 다른 장애인들도 '할 수 있겠다'고 느끼게 하고 싶었다.
보행 장애인이 되고 달라진 점은.
장애를 얻고 나서야 우리 사회에 배려가 부족하다는 걸 깨달았다. 가로수 주변의 턱이나 아파트 내 오토바이 주행을 막기 위해 친 펜스 같은 것들이 휠체어 보행에 방해가 된다. 또 한 가지는, 아무 의미 없는 시선도 장애인에겐 폭력으로 느껴질 수 있다는 점이다.

그는 2024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패럴림픽에 출전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하지만 진짜 목표는 "사고 전보다 자전거를 잘 타는 것"이다. 그는 "장애를 얻기 전보다 실력이 좋아지면 스스로 장애를 극복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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