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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두 자릿수" 외쳤는데…여당에 휘둘린 전기료 8원 인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4일 서울 한 건물 에어컨 실외기. 연합뉴스

14일 서울 한 건물 에어컨 실외기. 연합뉴스

16일부터 전기요금이 ㎾h당 8원, 가스요금은 MJ당 1.04원 오른다. 4인 가구 기준으로 전기·가스요금을 합쳐 월평균 7400원가량 더 내게 된다. 정부와 여당이 국민 부담을 고려해 소폭 인상을 택했지만, 한국전력·가스공사의 천문학적 손실을 메우기엔 태부족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15일 이러한 내용의 2분기 전기·가스료 조정안을 발표했다. 당정이 요금 발표를 잠정 보류한 지 40여일 만이다. 16일부터 새 요금 체계가 적용되고, 이미 지나간 15일까지의 사용분에 소급되진 않는다. 전기요금은 ㎾h당 146.6원에서 154.6원으로, 주택용 도시가스 요금은 MJ당 19.691원에서 20.735원으로 인상된다. 4인 가구 기준 한 달간 전기료는 약 3020원, 가스료는 약 4430원 오를 전망이다. 두 요금의 평균 인상률은 5.3%다.

2분기 전기·가스요금 인상은 불가피했다. 국제 에너지 가격이 지난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치솟았고, 지금도 고공비행 중이다. 반면 이를 반영할 요금 인상 속도는 더디다. 문재인 정부가 전기료 인상을 억누르다 대선 직후인 지난해 4월 인상했고, 윤석열 정부는 네 분기 연속 올렸지만 올 1분기(13.1원)를 빼면 한자릿수 금액 인상에 그쳤다.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15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2023년도 2분기 전기·가스요금 조정안 및 취약계층 지원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15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2023년도 2분기 전기·가스요금 조정안 및 취약계층 지원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

그러는 사이 한전은 2021~2022년 38조5000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올 1분기도 6조2000억원의 적자가 더해지면서 8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전력 원가 대비 판매 가격이 낮아 전기를 팔수록 손해가 커지는 구조다. 2021년 말 1조8000억원이던 가스공사의 도시가스 미수금도 올 1분기 11조6000억원까지 늘어났다. 미수금은 천연가스 수입 대금 중 가스 요금으로 회수되지 않은 금액이다.

2분기 요금 발표에 앞서 12일 한전은 25조7000억원, 가스공사는 15조4000억원 규모의 추가 자구책을 각각 내놨다. 특히 한전은 정승일 사장이 사의를 표명했고, 여의도 남서울본부 등 주요 자산도 매각키로 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누적된 적자 해소가 어렵다. 이창양 산업부 장관은 "에너지 공급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고 한전·가스공사의 경영을 정상화하려면 전기·가스요금의 추가 조정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이번 인상분도 한전·가스공사의 천문학적 손실을 털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전기료가 8원 올랐다지만 올해 줄일 수 있는 한전의 적자 폭은 약 2조6600억원이다. 1분기 손실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특히 2분기 인상 폭이 1분기보다 뒷걸음질 치면서 산업부가 내세운 올해 전체 인상 요인(㎾h당 51.6원)을 채우긴 어려워졌다. 1분기 동결됐던 가스요금도 소폭 올랐지만, 올해 인상 요인(MJ당 10.4원)까진 먼 길이다. 에너지 업계 관계자는 "가스료 인상분은 미수금이 느는 속도를 조금 늦추는 수준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이러한 배경엔 여당 목소리가 더 큰 이례적 상황이 있다. 요금 결정이 계속 미뤄진 건 한전의 '뼈를 깎는' 자구책 등이 부족하다는 게 표면적 이유였다. 하지만 국민의힘 관계자는 "당에서 요금 인상을 급하게 보지 않았다"고 전했다. 윤석열 대통령 방미 등 정치적 일정에다 연초 '난방비 폭탄' 트라우마 등이 겹쳤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또한 산업부·기획재정부 협의 등을 거쳐 발표하는 기존 방식과 달리, 여당이 요금 결정 전반을 주도했다. 3월 마지막 날의 '잠정 보류' 결정, 15일 요금 인상 결정처럼 당정 협의회가 중요한 변수가 됐다. 국민의힘 내부서 "국민 눈높이"를 강조함에 따라 전기료 인상 폭도 한 자릿수로 정리됐다. "최소 두 자릿수 인상"을 강조한 전문가·전력업계 등과 온도 차가 컸다.

에너지 요금에 정치적 요인이 크게 작용하면서 3분기 이후 인상도 가시밭길이다. 그나마 2분기는 연중 수요가 제일 낮고, 국제 에너지 가격도 안정적인 편이라 변수가 적었다. 하지만 여름인 3분기는 냉방비, 겨울 앞둔 4분기는 난방비 이슈가 대두한다. 여기에 내년 총선을 앞둔 만큼 하반기 요금은 상반기보다 쉽게 올리지 못할 거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당장 3분기 요금 결정을 6월 말까지 해야 한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국제 에너지 가격이 반등할 가능성이 여전하고, 공기업 적자가 누적되면 국민 세금으로 메워야 하는 만큼 정부가 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주문이 나온다. 올해 경제정책방향에서 밝혔듯 2026년까지 단계적인 요금 현실화가 이뤄져야 한전 적자 및 가스공사 미수금을 해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강천구 인하대 에너지자원공학과 초빙교수는 "요금 인상 폭이 줄고 시기도 늦어지면 한전이 갚아야 할 이자가 늘고, 결국 국민 부담으로 가게 된다. 이를 막으려면 3분기 이후에도 꾸준히 올릴 수밖에 없다"면서 "총선 이슈 때문에 쉽지 않겠지만 산업부가 국제 에너지 가격·에너지 절약 등 구체적 근거를 내세워 요금 인상 전략을 설득해야 한다"고 밝혔다.

독립적인 에너지 요금 결정 체계 등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창의융합대학장은 "독일·영국 등 선진국 대부분은 에너지 요금 결정에 정치가 개입하지 못하도록 별도의 규제 위원회를 운영한다. 우리나라도 전문가에게 맡기는 쪽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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