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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상언 논설위원이 간다

종착점에 이른 해외 입양…앞으로 아이들은 어디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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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이상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울분과 걱정 쏟아진 국회 입양 토론회 

이상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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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하세요.” “괜찮아요.” “더 해도 돼요.” 내내 조용하던 방청석에서 큰 소리가 나왔다. 장내가 술렁였다. 발표자에게 마무리를 재촉하던 사회자가 “모두가 원하시는 것 같아 시간을 조금 더 드리겠다”고 하자 박수가 터졌다. 토론회가 예정된 세 시간을 훌쩍 넘고 있었다.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지난 10일(11일이 입양인의 날)에 열린 이 행사의 이름은 ‘한국 사회의 해외 입양, 왜곡된 인식 너머의 진실’이었다. 주관자는 전국입양가족연대, 주최자는 최재형 국민의힘 의원. 두 아들을 입양해 기른 최 의원은 전국입양가족연대 회원이다. 미혼 상태에서 딸을 입양한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도 참석했다.

‘입양=아동수출’ 프레임 비판
입양기관 종사자들 열띤 호응

지난해 해외 입양 아동 142명
국가가 관장하면 더 줄어들 듯

외국 가정에서 자랄 아이들이
국내시설에서 크는 일 없어야

“3분의 1 학대 경험은 거짓”

프랑스로 입양된 한인 프레디(한국명 연희)가 친생 부모를 만나는 과정에서 정체성 혼란을 겪는 모습을 그린 영화 ‘리턴 투 서울’(2023)의 한 장면. [사진 엣나인필름]

프랑스로 입양된 한인 프레디(한국명 연희)가 친생 부모를 만나는 과정에서 정체성 혼란을 겪는 모습을 그린 영화 ‘리턴 투 서울’(2023)의 한 장면. [사진 엣나인필름]

발표자 발언을 끊지 말라고 방청객이 호소하던 순간은 정은주 작가(『그렇게 가족이 된다』의 저자. 입양인이다)가 해외 입양에 대한 한국 언론의 보도 태도를 신랄히 비판하던 때였다. 정 작가는 해외 입양을 ‘악’으로 규정하는 반대론자들이 제시하는 근거들(사례·증언·통계 등)을 언론이 제대로 검증하지 않고 전함으로써 ‘해외 입양=아동 수출’이라는 나쁜 프레임 형성을 도왔다고 지적했다. 방청석에는 100명 안팎의 국내 입양기관·복지시설 종사자가 있었다.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을 정 작가가 대신해줬다.” 토론회가 끝난 뒤 한 참석자가 말했다.

토론회 제목에 쓰여 있듯이 ‘왜곡된 인식’에 대한 반박이 행사의 목적 중 하나였다. 오창화 입양가족연대 대표는 “한국에서 외국으로 입양된 사람의 3분의 1이 아동 학대를 경험했다는 믿기 어려운 주장이 널리 퍼지면서 입양기관을 인권침해 가해자로 보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이런 현실이 안타까워 행사를 계획했다”고 말했다.

토론회 첫 발제자는 한국입양홍보회를 설립한 스티브 모리슨이었다. 한국에서 태어나 미국 가정에 입양된 그는 미국 에어로스페이스 코퍼레이션(우주항공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다 은퇴했다. 모리슨은 해외로 입양된 한인을 상대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했더니 참여자 990명 중 입양 가정에서 학대를 경험했다고 응답한 사람은 60명(약 6%)에 그쳤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국에서 해외 입양이 반드시 중단돼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은 사람은 12.7%였다고 설명했다.

임신 중단 쉬워져 포기 아동 급감

손팻말을 든 ‘한국 사회의 해외 입양, 왜곡된 인식 너머의 진실’ 토론회 참석자들.

손팻말을 든 ‘한국 사회의 해외 입양, 왜곡된 인식 너머의 진실’ 토론회 참석자들.

“해외 입양의 과거와 현재를 균형 있는 시각에서 볼 필요가 있다.” 최재형 의원은 토론회 개회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국에서 해외 입양이 화제가 되는 경우는 크게 두 갈래다. 하나는 해외로 입양된 한인이 현지에서 정치인·관료·전문가 등으로 ‘출세’했을 때다. 훌륭하게 성장한 것에 대한 축복을 넘어 종족 유전자 우수성 입증 사례로 삼는 과도한 의미 부여가 이뤄지기도 한다. 다른 하나는 ‘해외 입양의 문제’가 확인됐을 때다. 입양된 한인이 입양 가족에서의 학대 피해를 공개하거나, 한국에 방문해 친생 부모를 만나는 이른바 ‘뿌리 찾기’에 실패한 아픈 사연이 알려졌을 때다. 돈벌이에 혈안이 돼 마구잡이로 해외로 보내면서 기록 관리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비난이 입양기관에 쏟아진다. ‘아직도 아이를 해외로?’라는 물음이 동반되기도 한다. 좋은 것은 모두의 일이고, 나쁜 것은 일부의 책임이 된다.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한국 사회에 많은 질문을 던져 온 해외 입양이 종착점에 다다랐다. 한 해 수천 명의 아이가 보내지기도 했으나(1985년 8837명이 최다), 지난해 해외로 입양된 아동 수는 142명이었다. 이르면 올해, 늦으면 내년에는 100명 미만으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입양(지난해 182명)이 불어나서 생긴 일은 아니다. 지난 10년 동안 국내 입양과 해외 입양의 비율은 약 6:4로 큰 변동이 없다. 부모가 양육을 포기하는 아이가 많이 감소한 것이 입양 축소의 주된 이유다. “여러 요인이 있지만 비혼 출산이 급격히 줄었다. 피임 도구 사용이 늘고, 바라지 않는 임신을 했을 경우 임신 중단을 결심하기가 쉬워지는 등 사회적 변화가 있었다. 저출산 현상 영향도 있고, 아이 양육을 선택한 비혼모가 증가한 것도 한 요인이다.” 한 입양기관 직원이 설명했다.

‘국가 입양 관장’ 법안 곧 의결

해외 입양이 두세 해 뒤엔 아예 사라질 가능성도 있다. 입양 관련 업무를 국가가 맡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이 최근 여야 합의로 국회 복지위를 통과해 법사위로 넘겨졌다. 김미애 의원에 따르면 이르면 7월, 늦어도 9월에는 본회의에서 의결될 것으로 전망된다. 입양을 희망하는 측과 입양 대상 아동을 연결하는 업무를 민간 기관이 아니라 정부가 관장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입양을 국가가 관리하는 것은 ‘헤이그 국제아동입양 협약’에 부합한다. 입양기관 간부는 “국가가 입양을 책임지게 됐을 때 과연 아이들을 해외로 보내는 일에 나설 수 있겠나. 해외 입양은 거의 없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입양 업무를 관장하게 되는 정부 기구인 아동권리보장원의 정익중 원장은 “국내 입양을 늘리고 가정위탁이나 후견인 제도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가급적 해외 입양을 줄이는 게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의견을 밝혔다.

그러면 이제 해외 입양 논란이 해소되는 것인가. 김진숙 동방사회복지회 회장은 “해외로 입양되는 아이의 70% 이상이 남자다. 30%가량은 의료적 이슈가 있는 아이다. 국내에선 여아, 갓 태어난 아이, 의료적 우려 사항이 없는 아이 위주로 입양이 된다. 해외 입양이 중단되면 시설에서 자라게 될 아이가 많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오창화 대표는 “민간이 하던 일을 국가가 맡아서 잘해낸 일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다”며 걱정했다.

머지않아 우리는 ‘아동 수출국’이라는 자조 섞인 오명을 털어버리게 될 터이다. 그런데 외국의 가정에서 자랄 수 있는 아이들이 국내 양육시설에서 성장하게 된다면 그게 과연 문제의 해결이고 발전일까. 10일 토론회에 온 사람들이 이 물음을 품고 있었다.

“입양 대기 시간, 더 길어질 수 있다”

손윤실 홀트 본부장 인터뷰

해외 입양의 현실과 미래에 대해 손윤실 홀트아동복지회 복지사업본부장에게 물었다. 약 30년간 입양 관련 일을 한 그는 “국가가 입양 업무를 책임지겠다고 하니 무거운 짐을 더는 느낌도 있지만 걱정이 많다”고 말했다.

해외 입양에 대한 ‘왜곡된 인식’이 왜 퍼졌다고 생각하나.
“대부분의 복지 분야에서 비용을 정부가 부담하는데 해외 입양은 입양 부모가 전적으로 부담을 지는 방식으로 이뤄져 왔다. 여기에서 많은 오해가 빚어졌다. 요보호 아동 입양 절차에 소요되는 비용을 정부가 지원하는 쪽으로 제도가 마련되면 억측과 오해가 많이 해소될 것이다.”
해외 입양이 없어지면 어떤 문제가 생기나.
“의료상의 문제 또는 장애가 있거나, 생모가 임신 중 위험 약물을 복용했거나, 유전적 질환 가족력이 있거나, 여기에 더해 남자아이면 국내에서 입양 가정을 찾기가 극도로 어렵다. 이처럼 복합적인 이유로 국내 입양이 불가능한 아동들은 가정이 아닌 시설에서 보호될 것이다. 국외에서라도 아동에게 가정을 찾아줘야 한다는 것이 헤이그 국제아동입양 협약의 정신이다.”
입양특례법이 개정돼 정부가 입양을 관장하게 되면 민간 기관의 역할은.
“대부분의 입양 업무가 공적 영역에서 수행될 것이다. 입양의 국가 간 협약은 정부(복지부)가 맡고 국외 입양 실무는 아동권리보장원에서 수행하게 된다. 아동 보호는 지자체 소관 업무이므로 입양기관이 위탁가정을 통해 입양 대상 아동을 보호하는 부분도 달라진다. 입양 희망 가정 조사나 사후 관리 업무만 민간 기관이 위탁을 받아 수행하게 될 것으로 예상한다. 특례법 개정 후 2년의 유예기간 동안 입양기관의 전문성이 국가로 잘 전수돼야 한다.”
국가가 입양을 관장하는 것에 어떤 우려가 있나.
“개정 입양특례법이 시행된 2012년 8월 이후 입양 절차가 복잡해지면서 입양 대기 기간이 늘어났다. 예비 부모가 입양을 포기하는 경우도 생겼고, 아동이 시설에서 자라는 기간이 증가했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입양특례법 개정안이 법제화되면 입양 대상 아동을 양육하는 곳은 지자체, 예비 입양 가정을 조사하는 곳은 업무 위탁 기관, 국내외 결연은 아동권리보장원, 입양 허가는 법원으로 업무 담당 주체가 분절화된다. 따라서 입양 대기 시간이 더 길어질 가능성이 크다. 영유아의 몇 개월은 어른의 몇 년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