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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판 ‘기생충’…배가 뒤집힌 순간, 모든 게 뒤집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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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영화 ‘슬픔의 삼각형’은 호화 크루즈가 난파되면서 젠더·인종·계급 등 사회적 위계질서가 뒤집히는 블랙 코미디를 그렸다. [사진 그린나래미디어]

영화 ‘슬픔의 삼각형’은 호화 크루즈가 난파되면서 젠더·인종·계급 등 사회적 위계질서가 뒤집히는 블랙 코미디를 그렸다. [사진 그린나래미디어]

영화 ‘슬픔의 삼각형’은 배가 뒤집히면서 다른 모든 것도 뒤집히는 이야기다. 크루즈가 난파되면서 펼쳐지는 일련의 소동을 통해 현대 사회의 위선과 모순을 까발리고 비웃는 사회풍자극이다. 블랙코미디를 통해 세상사의 모순을 고발해온 스웨덴 감독 루벤 외스틀룬드는 ‘더 스퀘어’(2017)에 이어 이 작품으로 지난해 칸 영화제에서 두 번째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2019)에 비견되는 이 영화가 17일 국내 개봉한다.

영화는 모델 커플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패션업계(1부)를 들여다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어 이들이 탄 크루즈(2부)와 무인도(3부)로 무대를 옮기며 젠더·계급·인종 등 다양한 위계질서를 문제 삼는다. 잘 나가는 모델 겸 인플루언서 야야(샬비 딘)와 남자친구 칼(해리스 디킨슨)은 협찬을 받아 탑승한 크루즈에서 부자들과 교류하며 한가로운 한때를 보낸다. 뜻밖의 폭발사건으로 배가 좌초되고, 여덟 명만 외딴 섬에 표류한다. 이때부터 계층 구조가 유람선에서와 180도 뒤바뀐다. 부자들은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무능력자가 된 반면, 청소부 애비게일(돌리 드 레온)은 맨손 낚시와 불피우기 등 생존 능력으로 단숨에 무인도의 일인자로 군림한다.

‘기생충’이 언덕 위 저택과 달동네 반지하로 계급을 시각화했다면, ‘슬픔의 삼각형’은 출렁이다 전복되는 배의 이미지로 익숙한 위계질서가 뒤틀리는 상황을 보여준다. 특히 만찬을 즐기다 멀미로 구토하는 승객 모습(2부)은 우스꽝스럽다가도 씁쓸하다. “어른들을 위한 롤러코스터를 만들고 싶었다”는 감독 의도대로, 섬에서 권력구조가 재편된 뒤에도 언제 다시 전복이 일어날지 알 수 없어 아슬아슬한 긴장감이 엔딩 신까지 이어진다.

영화 ‘슬픔의 삼각형’은 호화 크루즈가 난파되면서 젠더·인종·계급 등 사회적 위계질서가 뒤집히는 블랙 코미디를 그렸다. [사진 그린나래미디어]

영화 ‘슬픔의 삼각형’은 호화 크루즈가 난파되면서 젠더·인종·계급 등 사회적 위계질서가 뒤집히는 블랙 코미디를 그렸다. [사진 그린나래미디어]

‘슬픔의 삼각형’은 찌푸릴 때 주름이 생기는 미간을 가리키는 뷰티업계 용어다. 외스틀룬드 감독은 외적인 아름다움에 큰 가치를 부여하는 소셜미디어 시대의 과시적 세태를 꼬집는다. 돈마저 의미 없어진 무인도에서도 칼의 미남계가 여전히 힘을 발휘하는 대목은 인간본능에 대한 웃기면서도 매서운 폭로다. 그는 배급사 공식 인터뷰에서 “디지털 세상에서는 타인의 심오한 생각을 읽을 여유가 없다 보니 외모가 메시지보다 힘이 더 세다”고 설명했다.

다만 노골적인 풍자가 긴 러닝타임(147분) 내내 이어지기 때문에 관객에 따라 피로감을 느낄 수 있다. 빈부에 대한 도식적 묘사가 캐릭터의 설득력을 떨어뜨리는 점, 무인도 배경의 사회학적 실험극이 신선하지만은 않은 점 등으로 인해 황금종려상 수상 당시 비평가 의견도 엇갈렸다.

다소 산만한 전개에도 집중력을 유지시키는 건 배우들의 연기 덕이다. 특히 청소부 애비게일역의 돌리 드 레온 역할이 상당하다. 필리핀 배우인 그는 신분 상승 기회를 얻은 인물의 야욕과 울분, 복수심을 응축한 표정으로 영화 후반을 견인한다. 그는 이 연기로 골든글로브 시상식과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BAFTA)에서 필리핀 배우 최초로 연기상(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야야 역을 연기한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배우 샬비 딘은 지난해 8월 갑자기 사망해 이 영화가 유작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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