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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뒤집히자 모든 게 뒤집혔다…부자들 구토 난무하는 이 영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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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슬픔의 삼각형'은 모델 커플 야야(샬비 딘)와 칼(해리스 디킨슨)이 탑승한 호화 크루즈가 난파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블랙 코미디다. 사진 그린나래미디어

영화 '슬픔의 삼각형'은 모델 커플 야야(샬비 딘)와 칼(해리스 디킨슨)이 탑승한 호화 크루즈가 난파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블랙 코미디다. 사진 그린나래미디어

 영화 ‘슬픔의 삼각형’은 한마디로 배가 뒤집히는 순간 다른 모든 것도 뒤집히는 이야기다. 이 신랄한 사회풍자극은 호화 크루즈가 난파되면서 펼쳐지는 일련의 소동을 통해 현대사회의 각종 위선과 모순을 적나라하게 까발리고, 통렬하게 비웃는다. 줄곧 세상사의 모순을 고발하는 블랙 코미디를 만들어온 스웨덴 감독 루벤 외스틀룬드는 ‘더 스퀘어’(2017)에 이어 이 작품으로 지난해 칸 영화제에서 두 번째 황금종려상을 품에 안았다. 계급 문제를 블랙 코미디로 담아냈다는 점에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2019)에 비견되는 이 영화가 17일 국내 개봉한다.

3부로 구성된 영화는 모델 커플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패션 업계(1부)를 들여다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어 이들이 탄 호화 크루즈(2부)와 무인도(3부)로 무대를 옮겨가며 젠더·계급·인종 등 다양한 위계질서를 문제 삼는다.

잘 나가는 모델 겸 인플루언서인 야야(샬비 딘)와 그의 남자친구 칼(해리스 디킨슨)은 협찬을 받아 탑승한 초호화 요트에서 각양각색의 부자들과 교류하며 한가로운 한때를 보낸다. 그러던 중 뜻밖의 사건으로 배가 폭파돼 좌초되면서 오직 여덟 명만이 외딴 섬에 표류하는데, 이때부터 유람선 안에서의 계층 구조가 180도 뒤바뀐다. 크루즈 직원들을 자유자재로 부리던 부자 탑승객들은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무능력자가 된 반면, 피라미드 밑바닥이던 필리핀 청소부 애비게일(돌리 드 레온)은 맨손 낚시와 불 피우기 등의 생존 능력으로 단숨에 무인도의 일인자로 군림한다.

영화 '슬픔의 삼각형' 스틸컷. 사진 그린나래미디어

영화 '슬픔의 삼각형' 스틸컷. 사진 그린나래미디어

영화 '슬픔의 삼각형' 스틸컷. 사진 그린나래미디어

영화 '슬픔의 삼각형' 스틸컷. 사진 그린나래미디어

‘기생충’이 언덕 위 저택과 달동네 반지하로 계급을 시각화했다면, ‘슬픔의 삼각형’은 출렁이다 전복되는 배의 이미지를 활용해 우리에게 익숙한 위계질서가 뒤틀리는 상황을 체험케 한다. 특히 만찬을 즐기던 승객들이 멀미를 참지 못하고 구토를 쏟아내는 2부 장면은 한껏 고상 떨던 이들의 꼬락서니가 우스꽝스럽다가도, 불편하고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어른들을 위한 롤러코스터를 만들고 싶었다”는 감독의 의도대로, 섬에서 새로운 권력구조가 자리 잡은 뒤에도 언제 또 다른 전복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 아슬아슬한 긴장감이 엔딩 신까지 지속된다.

제목 ‘슬픔의 삼각형’은 찌푸릴 때 주름이 생기는 눈썹 사이 영역, 즉 미간을 가리키는 뷰티 업계 용어다. 감독은 성형외과 의사로부터 “‘슬픔의 삼각형’이 깊게 패였다”는 말을 들었다는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영화 제목을 지었다고 한다. 그만큼 영화는 외적인 아름다움에 점점 더 큰 가치를 부여하는 SNS 시대의 과시적 세태도 거침없이 꼬집는다.

돈마저 의미 없어진 무인도에서 칼의 미남계 만큼은 여전히 힘을 발휘하는 대목은 영화에서 가장 웃기면서도 매서운 인간 본능에 대한 폭로다. 외스틀룬드 감독은 배급사와 공식 인터뷰에서 외모를 인간관계의 권력구조에서 주요 요소로 다룬 데 대해 “외모가 사회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은 불편하지만 보편적인 진리인데, 최근엔 중요성이 더 커졌다. 디지털 세상에서는 타인의 심오한 생각을 읽을 여유가 없기 때문에 외모가 메시지보다 더 힘이 세다”고 설명했다.

영화 '슬픔의 삼각형' 스틸컷. 사진 그린나래미디어

영화 '슬픔의 삼각형' 스틸컷. 사진 그린나래미디어

영화 '슬픔의 삼각형' 스틸컷. 사진 그린나래미디어

영화 '슬픔의 삼각형' 스틸컷. 사진 그린나래미디어

다만 이처럼 다각도의 노골적인 풍자가 긴 러닝타임(147분) 내내 이어지기 때문에 관객에 따라서는 통쾌함보다 피로감을 더 크게 느낄 수 있다. 부자와 빈자에 대한 도식적인 묘사가 캐릭터에 대한 설득력을 떨어뜨리는 점, 무인도를 배경으로 한 사회학적 실험극이 신선하지만은 않은 점 등으로 인해 황금종려상 수상 당시 비평가들 사이에서도 평이 엇갈렸다.

다소 산만한 전개에도 집중력을 놓치지 않게 해주는 건 배우들의 연기다. 특히 3부가 돼서야 본격 등장하는 청소부 애비게일 역 돌리 드 레온의 역할이 상당하다. 필리핀 베테랑 배우인 그는 난생처음 신분 상승의 기회를 얻은 인물의 야욕과 울분, 복수심을 꾹꾹 응축해낸 얼굴로 영화 후반을 견인한다. 이 연기로 골든글로브 시상식과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BAFTA)에 필리핀 배우 최초로 연기상(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인플루언서 야야 역 연기로 단숨에 유망한 연기자로 떠오른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배우 샬비 딘은 지난해 8월 세균성 패혈증으로 갑작스레 사망해 이 영화가 그의 유작이 됐다.

영화 '슬픔의 삼각형' 포스터. 사진 그린나래미디어

영화 '슬픔의 삼각형' 포스터. 사진 그린나래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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