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국도 놓친 주가조작, 석달전 경고…'성지순례' 몰린 유튜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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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G증권발 ‘작전주 의혹’ 확산

김태형씨가 1월 20일 삼천리 등의 주가가 조작된 것 같다고 경고한 방송 화면. [사진 설명왕 테이버]

김태형씨가 1월 20일 삼천리 등의 주가가 조작된 것 같다고 경고한 방송 화면. [사진 설명왕 테이버]

“수급(유통 주식) 없이 올라가는 친구(종목)들 중 하나다. 이거 어딘가의 기획작(조작 세력 소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량 쥐고 날려(올려)버리는 건 막을 수가 없어요. 안 엮이셨으면 좋겠습니다.”

1월 20일 온라인 세상에서 ‘설명왕 테이버’로 알려진 주식 유튜버 김태형씨가 진행한 작전주 경고 방송의 일부다. 김씨가 이날 영상을 통해 경고한 작전주 의혹 대상은 바로 세방·선광·삼천리·대성홀딩스·다우데이타 등이다. 지난달 이른바 ‘SG(소시에테제네랄)증권사태’로 하한가 폭탄을 맞은 주요 종목이다. 금융당국은 사태 직전이야 포착했다는 ‘주가조작’을 김씨는 석 달 전 이미 경고한 것이다. SG증권사태 후 해당 영상은 ‘개미(개인 투자자)들의 성지’로 떠올랐다.

온라인에서는 금융당국이나 투자자들이 이 방송을 진작 봤다면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는 탄식이 터져 나오고 있다. 라덕연 H투자자문사 대표가 주도 의혹을 받는 이번 하한가 사태는 ‘다단계 방식’으로 세력을 모아 현재까지 알려진 투자자 수만 1000명이 넘는다. 임창정 등 유명 연예인과 골프선수, 의사 등이 투자자를 모으고 수익을 다시 떼 주는 방식으로, 피해 규모가 최대 2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김씨는 15년차 전업 주식 투자자이면서 인기 인터넷 방송 진행자(BJ)이기도 하다. 그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은 아프리카TV 경제 분야 1위이고, 누적 시청자 수가 200만 명에 이른다. 지난해에는 주식 투자의 기술을 다룬 책 『머니카피』를 펴내기도 했다. 9일 잠실의 한 스튜디오에서 김씨를 만나 SG증권발(發) 작전주를 사전에 포착할 수 있었던 배경과 이들 작전의 특징, 이러한 작전주를 피해가는 투자법에 대해 들어봤다.

호재·수급 없이 오르는 종목은 위험

라덕연 H투자자문 대표가 11일 SG증권 관련 주가조작 혐의로 구속됐다. [뉴스1]

라덕연 H투자자문 대표가 11일 SG증권 관련 주가조작 혐의로 구속됐다. [뉴스1]

어떤 부분에서 주가조작을 의심했나.
“지난해 하반기 하락장이었는데, 이들 기업 주가는 계속 오르고 있었다. 매일 밤 방송을 진행하는데, 시청자들이 ‘도대체 이게 뭐냐’고 묻더라. 그래서 들여다보기 시작했는데, 상승 곡선이 이상했다. 오르고 내림없이 이들 기업 주가는 쭉 올라가기만 했다. 특히 올라가는 각도는 일정한데, 아무런 소식(호재)도 없었다. 누군가 작정하고 올리는 것이 아니라면 이 같은 상승 곡선은 나오기 어렵다. 게다가 이들 기업은 유통 주식이 거의 없는 이른바 ‘품절주’이거나 투자자들이 관심을 갖지 않는 ‘노잼주’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하나 같이 대주주 라인에 한국증권금융이 올라가 있는 점도 이상했다. 여기는 신용담보를 잡아주는 일종의 증권사들의 금융기관이다. 매수·매도를 활발히 하는 곳이 아니다. ‘기획’이라는 의심이 강해졌다.”
업계에선 다 아는 ‘작전’이었나.
“많이 짐작했을 것이다. 국내 주식시장은 매우 작고, 테마주도 워낙 많다. 문제는 이번 사태의 규모가 매우 컸다는 것이다. 다단계로 확산되면서 피해가 커졌다. 라덕연 대표는 법의 허점들을 역으로 잘 공략하기도 했다. 라 대표는 공매도가 안 되는 종목, 차액결제거래(CFD)를 통한 거래 등 본인만의 공식을 만들었다.”
악용된 법의 구멍이 무엇인가.
“금융위원회 산하 감시기관이 있는데, 그 감시 시스템을 역으로 파고들었다. 예컨대 팀을 꾸려서 핸드폰 명의자가 있는 곳에 직접 가서 매수·매도를 눌렀다. 거래자가 다수여도 한 곳에서 매수·매도가 집중돼 일어나면 인터넷프로토콜(IP)이 추적 받을 수 있는데, 직접 매수자들이 있는 곳에 가서 거래함으로써 이를 분산시켰다. CFD를 활용해 대주주 공시 의무도 피해갔다. 개인이 특정주식의 3% 이상이나 10억원이 넘는 주식을 보유하면 대주주로 등재가 된다. 그런데 라 대표는 10억원 이상을 보유해도 대주주로 잡히지 않았다. CFD를 통해 최종 주문자를 외국계 증권사처럼 포장한 덕분이다. 공매도 제외 종목을 중심으로 담기도 했다. 2022년 말 기준 국내 상장사 2437개 종목 중 공매도 가능 종목은 350개(14.36%)이다. 코로나 이후 공매도가 제한되는 시기를 노렸다. 주식 비과세의 이점도 교묘히 악용했다.”
주식 비과세가 어떤 문제가 있나.
“만일 주식 차익에 세금이 붙어 근로·사업소득과 합산된다면, 과연 고소득자들이 계좌를 쉽게 넘길 수 있었을까. 금융투자소득세(이하 금투세) 도입에 논란이 많은데, 금투세가 도입되면 작전 세력은 무너진다. 차명계좌 거래가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공매도 안되는 종목이 왜 타깃이 됐나.
“이들은 대주주가 절반 이상을 들고 있는 종목을 노렸다. 시장에 거래되는 물량이 매우 적은 종목들이다. 그런데 공매도가 가능하면 이를 활용해 주식이 없어도 빌려서 상승을 막을 여지가 있다. 그러면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의 머니게임으로 번질 수 있다. 하지만 공매도가 불가하니, 대주주가 팔지 않는 한 (작전 세력이 사는 물량 위주로) 주가가 계속 올라가는 구조로 설계했다고 본다.”

전문가 목표 수익도 연 30%, 과욕 금물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개인 투자자는 공매도를 반대한다.
“지금 공매도를 풀면, 실제 문제가 심각할 수 있다. 2021년 주가 20만원까지 치솟았던 신풍제약은 현재 1만원 수준으로 폭락했다. 공매도가 풀리면 그렇게 추락할 종목들이 수두룩할 것이다. 하지만 부작용이 있다고 그냥 둬야 하나. 공매도 거래는 아직도 수기(手記)로 작성한다. 한국의 정보통신 기술 수준에 비춰 말이 안된다. 전산화를 통해 어떤 자금이 어디로 들어가는지 실시간으로 투명하게 처리할 수만 있다면, 공매도 부활로 문제가 생길 우려는 크게 줄어든다.”
김익래 다우키움그룹 전 회장을 비롯해 서울가스·대성홀딩스 오너가는 주가 폭락 직전에 보유주식을 처분했다.
“대주주의 절대 공식이 있다. 경영권 방어를 위해 반드시 ‘50%+α’를 들고 간다는 것이다. 그런데 8종목 가운데는 대주주 지분이 60~70%에 이르는 종목이 상당했다. 대성홀딩스만 해도 최대주주 지분율이 70%가 넘고, 서울도시가스는 최대주주와 자사주 지분이 75%를 웃돌았다. 선광·삼천리·세방·다우데이타·하림지주 등도 최대 주주 지분율이 60%가 넘는다. 이들 기업 대주주는 경영 상황에 따라 10% 이상을 시장에 던져도 경영권 방어엔 문제가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주가조작 세력은 최대주주가 지분들을 팔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어떻게 갖게 됐을까. 짜고 치는 작전이었을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그러다 믿었던 ‘회장님들’ 의 배신행위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다.”
‘위험한 주식’은 어떻게 알 수 있나.
“핵심은 주가가 올라가는 이유에 동의할 수 있냐, 아니냐다. 그 이유에 동의할 수 없다면 건드리면 안되는 주식이다. 개인적으론 두 가지를 본다. 우선 보유가치가 있느냐. 이를테면 ‘삼성전자는 업황이 돌아서면 8만원대는 갈거야’ 기대하면서 예금·채권보다 수익이 많으니까 일정기간 보유하겠다 생각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수급 즉, 거래를 본다. 요즘 주가가 치솟은 2차전지는 인기가 있다. 그런데 이번 SG증권사태 관련 8개 종목은 수급(유통 주식)도 없고, 실적 상승이나 배당 등 보유 가치도 거의 없었다.”
사태 후 하한가 따라잡기 움직임도 있다.
“단순히 많이 떨어졌으니 반등할 것이라는 기대는 위험해 보인다. 특히 빚에 의한 투자가 적지 않다. 아직 버티고 있는 물량이 반대매매로 나올 가능성이 여전히 있다. 쉽게 말해, 집이 경매에 넘어가고 집안 물건에 빨간 딱지가 다 붙어있는 혼돈의 상황이다. 냉정하게 계산기를 두드려 적정한 가치를 따질 수 있어야한다.”
당국의 늑장 대응도 도마 위에 올랐다.
“선광, 대성홀딩스 같은 종목이 특정 계좌에서 거래되는 패턴이 있었다. 하지만 대개 법의 망을 교묘히 빠져나가는 수법이었다. 따라서 금융당국이 작정하고 종합적으로 파야 잡을 수 있었던 사안으로 보인다.”
주식 초보자에게 당부하고 싶은 게 있다면.
“주식 추천을 해달라는 초보 투자자에게 역으로 드리는 질문이 있다. 주식으로 돈을 얼마나 벌고 싶은 가다. 보통 연 50%, 100% 수익을 얘기한다. 월스트리트의 대가들도 연 20~30%를 목표로 하는 경우가 많은데 말이다. 과욕이 투자를 꼬이게 하는 원인이다. 비교도 잘 해야 한다. 우리나라 1등주라면 글로벌 1등주와도 비교해보자. 돈을 잘 버는 기업을 예로 들어보면, LG생활건강은 샴푸도 만들고 세제도 만드는 국내 생활용품의 대표기업이다. 그럼 글로벌에는 이와 비슷한 기업이 어디가 있을까. P&G로 알려진 프록터&갬블이 있다. 이런 식으로 국내 우량기업과 글로벌 우량기업의 비교를 통해 수익률, 배당 등을 살펴보면 투자 성공 확률을 크게 높일 수 있다.”

2년간 주가 천천히 올리고 다단계…SG사태, 루보사건보다 수법 진화

소시에테제네랄(SG) 사태는 다단계 방식으로 투자 규모를 키웠다. 이는 소규모 지인끼리 진행되는 일반적인 주가조작에서 진화한 수법이다. 김태형씨는 “SG사태는 다단계 주가조작으로 악명을 떨친 2008년 루보사태에서 진화한 양상을 띤다”고 평가했다. 루보사태는 다단계업체 제이유그룹 경영진이 중심이 돼 루보의 주가를 주당 900원에서 5만원 수준까지 끌어올린 사건이다. 자동차 베어링을 만들던 루보는 2006년 900원에 불과했으나 2008년 4월엔 5만1400원까지 폭등했다. 그러나 검찰이 수사에 착수하며 주가는 다시 900원대로 곤두발질쳤다.

루보는 전국에 서버를 구축해 다양한 위치에서 주문을 실행하면서 당국의 추적망을 피했다는 점도 이번 SG사태와 유사하다. 루보는 다단계업체 회원을 대상으로 1600억원대 자금을 운용했다. SG사태는 유명인·전문직을 앞세운 다단계 방식으로 피해 규모가 2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이 과정에서 레버리지도 일으켰다. 루보는 사채업자와 저축은행에서 1440억원의 자금을 추가로 돌렸다. SG는 여기서 진화해 차액결제거래(CFD)와 같은 파생상품을 이용했다. CFD는 증권사가 투자자 대신 주식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최대 2.5배까지 레버리지 투자가 가능하다.

루보는 2006년에서 2008년 사이 주가가 무려 50배 넘게 폭등했지만, 한 번도 이상급등 경고를 받지 않았다. 수백개의 차명계좌로 매일 2~3%씩 천천히 주가를 끌어올렸기 때문이었다. SG사태의 8개 종목도 길게는 3년에 걸쳐 주가를 밀어 올리는 방식으로 감시망을 피했다. 현재 거래소는 최대 100일 사이의 단기 이상거래를 탐지하는데 초점을 두고 있으나, 앞으로 6개월 또는 1년 단위 중·장기 시세조종 등 신종 비전형 수법도 탐지하도록 개선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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