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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기억] 역사적 기억을 상기시키는 돌팔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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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9호 31면

‘어떤 지점’ 시리즈 중 ‘광주 5.18 민주광장’. 2017년. ©이세현

‘어떤 지점’ 시리즈 중 ‘광주 5.18 민주광장’. 2017년. ©이세현

풍경을 향해 무언가가 던져졌다. 던져진 것은 돌멩이일 때도 있고 깨진 벽돌 조각, 한 줌의 흙이거나 풀일 때도 있다. 그냥 두었으면 그대로 그저 오늘의 풍경이었을 공간에 팔매질이 되자, 고요하던 표면에 파문이 인다. 돌멩이에 맞은 유리창처럼 깨진다. 깨진 틈새로 기억들이 스며 나온다. 현재의 풍경 위로, 1940년대, 50년대, 80년대 지난 과거 ‘어떤 지점’의 기억들이 되살아나는 것이다.

풍경에 팔매질을 한 작가는 사진가 이세현이다.

그는 근현대사에서 사건의 중심에 있던 장소이거나 현재까지도 밝혀지지 않은 진실을 품고 있는 여러 역사적 현장들을 찾아다녔다. 6.25 전쟁의 비극과 분단의 상징인 비무장지대 DMZ 펀치볼, 제주 4.3 학살터 가운데 하나인 알뜨르비행장, 여순사건의 아픔이 서린 여수 마래 제2터널, 118명 광부들의 안타까운 사연이 켜켜이 쌓인 해남의 옥매광산, 일제강점기 대규모 강제 징용의 참극이 벌어졌던 일본 나가사키 군함도, 아무도 찾지 않는 요코하마 관동대학살 희생자들의 무덤까지, 십여 년 동안 다닌 역사의 현장이 삼십 곳이 넘는다.

그리고는 각각의 장소에 돌멩이, 벽돌, 흙과 풀 한 줌으로 시각화한 ‘질문’을 투척하고 사진을 찍었다. 현재의 풍경에 과거의 진실을 묻는 물음이 더해지면서, 한 장의 사진은 두 개의 층으로 두터워진다. 이세현의 사진 시리즈 ‘어떤 지점’이다.

“장소는 어떤 역사가 실재했었다는 것의 물리적 증거입니다. 저는 그 장소에 돌을 던지는 행위를 통해서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되는 역사적 사건들이 다시 상기되고 그 안에 은폐된 진실이 수면 위로 드러나기를 바랍니다.” 작가의 말이다.

팔매질 된 돌과 흙 등은 모두 실재 사건이 일어났던 장소에서 채집한 것들로서, 그날의 사건 현장을 지켜본 관찰자들이기도 하다.

2017년 광주 금남로 5.18 민주광장에 던져진 것은 ‘도청 앞’이라 불리던 광장의 돌멩이다. 부스러기를 흩뿌리며 돌멩이가 허공을 난타하자, 1980년 ‘5.18’ 그날 전남도청 분수대 앞에 모여든 군중들의 함성이 수십 년의 시간을 뚫고 메아리쳐 나온다.

박미경 류가헌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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