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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가짜 깃발 작전’ 펴자, 바이든 기밀 흘려 ‘김빼기’ 맞불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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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9호 27면

[제3전선, 정보전쟁] 전쟁사 변곡점 우크라 정보전 〈하〉

러시아 군인들이 우크라이나 군인인 것처럼 보이기 위해 군복에 러시아 국기와 휘장을 모두 떼어 냈다. [AP=연합뉴스]

러시아 군인들이 우크라이나 군인인 것처럼 보이기 위해 군복에 러시아 국기와 휘장을 모두 떼어 냈다. [AP=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KGB요원과 FSB국장(국내정보)을 지낸 정통 정보맨이다. 정보맨 출신답게 정보전의 대가로 불린다. 전시(戰時) 정보전인 기만전, 여론전, 심리전을 통해 2008년 조지아전쟁을 5일 만에 승리로 이끌었고, 2014년에는 크림반도를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러시아 영토로 합병하면서 붙여진 별명이다. 우크라이나전도 초기에는 그런 분위기로 흘러갔다.

2022년 2월 24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푸틴은 조지아전과 크림반도 합병 당시 정보전을 통해 손쉽게 승리한 기억을 떠올리며 조직적인 정보전을 펼쳤다. 전쟁 전 우크라이나 침공을 정당화하기 위해 가짜 깃발 작전(False Flag Operation)부터 전개했다. 가짜 깃발 작전은 상대가 먼저 공격한 것처럼 꾸며 침공의 명분과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인들을 테러하거나 집단학살한 것처럼 꾸민 영상과 여론을 조직적으로 유포했다.

심지어 주(駐)유엔 러시아대사는 2022년 3월 10일 유엔을 통해 우크라이나가 미국 정보당국의 사주에 따라 독성 화학무기를 이용한 도발을 준비하고 있다고 비난하는 등 정보전을 유엔 무대로 확대했다. 또한 우호적 국제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나토의 동진이 이번 전쟁의 근본 원인이며, 서방의 이간질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형제관계가 악화되었다는 여론도 공세적으로 펼쳤다.

특히 전쟁 초반 전장 정보가 부족한 상황을 이용하여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국외로 도망갔다” “우크라이나가 곧 항복할 것이다”는 허위 정보를 흘려 러시아가 전쟁을 압도하고 있다는 분위기도 조성했다. 모두 우크라이나 국민과 군인들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내부 혼란을 조장하여 스스로 무너지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현대 정보전, 전쟁의 전체 양상 결정

러시아가 딥페이크 기술을 통해 ‘젤렌스키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시민들에게 무기를 내려 놓으라’고 방송하는 조작영상을 만들어 유포했다. [AFP=연합뉴스]

러시아가 딥페이크 기술을 통해 ‘젤렌스키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시민들에게 무기를 내려 놓으라’고 방송하는 조작영상을 만들어 유포했다. [AFP=연합뉴스]

이러한 정보전은 전쟁 초기 효과를 보이기 시작했다. 동유럽 일각에서 서방세계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일으켰으며, 나토의 동진이 이번 전쟁의 근본 원인이라는 여론이 몽글몽글 피어나기 시작했다. 특히 전쟁 개시 후 푸틴의 국내 지지도가 60%에서 80%로 상승하는 등 러시아 국민들도 푸틴의 전쟁 결정을 지지했다. 1975년 미국의 베트남전 패전은 국내 여론의 지지를 받지 못한 것이 주요 요인이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국내 여론의 전쟁 지지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러한 일련의 흐름이 이어지면서 정보전의 대가라는 푸틴의 명성이 재현되는 듯 보였다.

그러나 미국의 대응도 과거와는 달랐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을 정당화하기 위해 또 다시 현란한 정보전을 계획하고 있음을 간파한 미국은 2021년 11월 백악관·CIA·국방부·국무부·재무부 등으로 구성된 TF팀을 만들어 조직적 대응에 나섰다. 무엇보다 러시아의 허위·왜곡 정보가 국제사회에 먹혀들지 않도록 러시아의 노림수와 전략을 적극 노출시키는 김빼기 작전에 들어갔다. 백악관 젠 사키 대변인과 제이크 설리번 안보보좌관, 국무부 블링컨 장관 등이 연일 전사로 나서 러시아 정보기관과 군이 악의적인 왜곡 정보를 만들어 조직적으로 유포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폭로했다.

지난 2월 20일(현지 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깜짝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얘기하고 있다. [UPI=연합뉴스]

지난 2월 20일(현지 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깜짝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얘기하고 있다. [UPI=연합뉴스]

또한 우크라이나 군으로 위장한 러시아 공작원들이 우크라이나 내 친(親)러 국민들을 공격하는 자작극을 벌여 침공의 명분을 확보하고 반(反) 우크라이나 여론을 조장하려 한다는 정보도 공개했다. 모두 러시아의 거짓 정보가 자리 잡기 전에 선제적으로 진실을 공개하여 더 이상 허위·왜곡 정보가 작동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러시아가 극도의 보안을 유지하고 있는 민감한 전투정보를 교묘하게 흘려 러시아가 알게 하고, 이를 통해 러시아를 위축시키는 고도 정보전도 가동했다. 가령 러시아는 군 지휘관들이 위험에 노출되지 않도록 사령부의 위치를 수시로 바꾸는 등 철저한 보안을 유지했다. 그러나 미국은 비밀리에 수집한 러시아 장군들의 위치정보를 우크라이나에 제공하여 러시아 장성 10명 이상을 저격하도록 지원했다. 이는 푸틴에게 ‘당신들이 무엇을 하든 우리는 다 알고 있다’는 것을 과시하여 푸틴의 행동을 위축시키고, 러시아 군부와 정보당국간 불화를 조성하여 전쟁에 집중하지 못하게 하는 고도의 정보전이다.

미국이 구사한 고도 정보전의 백미는 바이든 대통령이 극비정보를 전격 공개한 대목이다. 2022년 2월 11일 유럽정상과 화상회의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일자가 ‘2월 16일’이라고 콕 찍어 확인해 준 데 이어, 2월 15일에는 예정에 없던 백악관 담화를 통해 러시아가 국경지역에 15만 명의 병력을 집결시켜 놓았다고 밝혔다. 통상 비밀리에 수집한 정보는 출처보호나 정보역량 노출을 피하기 위해 기밀로 관리하면서 내부용으로만 활용한다. 정보의 기본원칙이다. 특히 공격 개시일에 관한 정보는 국가지도자 등 극소수에게만 보고되는 특급보안이다. 그런데 이를 전 세계에 공개했다. 푸틴을 압박하기 위한 신의 한 수를 둔 것이라 할 수 있다.

푸틴 입장에서 볼 때 만약 2월 16일을 실제 공격 일자로 정해 놓았다면, 그 엄중한 비밀을 어떻게 알았을까, 내부첩자가 있나, 이 상태에서 공격을 예정대로 강행해야 하나 등등 여러 가지 심리적, 전략적 부담이 따를 수밖에 없다. 실제로 푸틴은 바이든 대통령 발표 이후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의도가 없으며 대화를 원한다는 위축된 모습을 보였다. 바이든의 극비정보 공개는 콜럼버스의 계란과도 같은 발상의 전환이었다. 미국의 고도 정보전은 주효했다. 전쟁 초 기세등등했던 푸틴 대통령을 수세로 몰았고, 동맹을 결집하여 러시아 제재를 신속히 조율했다. 무엇보다 러시아에 우호적인 여론이 확산되지 않도록 막았다.

현대 전쟁사에서 정보전은 세 차례 변곡점이 있었다. 1·2차 세계대전 당시 암호통신의 발전이 1차 변곡점이고, 여론전에 실패한 베트남전이 2차 변곡점이다. 당시 미국은 압도적 군사력에도 불구, 베트남 국민과 국제사회 심지어는 미국 국민들의 마음마저 얻지 못해 치욕적인 철수를 단행했다. 정보전이 전쟁의 승패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교훈을 남겼다. 이후 모든 전쟁은 베트남전을 거울 삼아 정보전을 획기적으로 발전시켰다. 이것이 3차 변곡점으로 이라크전과 아프간전이 대표적이다. 이번 우크라이나전이 4차 변곡점이 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전쟁이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현상만으로도 새로운 변곡점이 될 가능성이 충분하다. 스마트폰·SNS 등 생활주변의 정보통신기술이 정보전의 새로운 무기로 활용되는 시대를 열었고, 비밀정보를 전략적으로 노출시켜 상대의 행동변화를 이끌어 내는 고도 정보전도 선보였다. 정치적 부담이 큰 군사력 투입 대신 정보전만으로도 우방국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정보전이 군사전·외교전만큼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열어 놓았다. 무엇보다 기존 정보전이 전투를 지원하는 전술적, 기능적 측면이 강했다면, 우크라이나전을 계기로 향후 정보전은 전쟁의 전체 양상을 결정하는 전략적 성격이 강해지고, 전투승리뿐만 아니라 정치적 승리까지 뒷받침하는 수준으로 격상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조작정보 넘쳐 인류 양심 오염 우려

그러나 딜레마도 있다. 전쟁이 벌어지면 아군에게는 사기를 북돋아 주고, 적에게는 불안을 증폭시켜 스스로 무너지도록 하기 위해 허위 정보를 유포한다. 이는 정당한 전쟁행위로 인정된다.(제네바협약 제1추가의정서) 그러나 아무리 전쟁이라 하더라도 악의적으로 왜곡한 조작정보가 넘쳐나면 인류의 양심과 이성을 오염시켜 심각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줄 수 있다. 더욱이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에 따라 악의적인 조작정보는 전장에 국한하지 않고 전 세계 어린이들의 손까지 무차별 확산되어 인류 미래세대의 세계관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전쟁은 국가의 생존이 걸린 문제이므로 전쟁의 승리보다 우선되는 가치는 없겠지만, 아무리 전쟁일지라도 인류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윤리적 가치까지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국제인도법의 정신이다. 전쟁의 특수성을 인정하면서도 윤리적 가치를 지킬 수 있는 딜레마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인류 지성에게 던져진 또 다른 숙제이다.

전시 정보전(information warfare) 적군 또는 적국 국민들의 저항 의지를 약화시키거나, 적 지휘부가 잘못된 의사결정을 내리도록 이끌어 내는 정보활동이다.

조지아전쟁 2008년 미국이 지원하는 조지아가 러시아의 지원을 받는 남오세티야를 공격하면서 발발한 전쟁으로, 이 전쟁에서 승리한 러시아는 구(舊)소련 이후 허약해진 국력을 다시 회복하는 전환점이 되었다.

크림반도 합병 2014년 3월 푸틴은 우크라이나로부터 독립을 선포한 크림반도를 러시아로 합병하기 위해 ‘크림은 러시아 편입을 원한다’는 여론전을 전개했다. 결과 크림국민들의 압도적 찬성(96.6%)을 이끌어 내 무혈 합병에 성공했다.

최성규 고려대 법학연구원 전임연구원. 국가정보원에서 장기간 근무하며 국제안보 분야에 종사하였다. 퇴직후 국내 최초로 비밀 정보활동의 법적 규범을 규명한 논문으로 고려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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