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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붕협정 종료 땐 7광구 분쟁수역화…윈윈 해법 찾아야 [한·일 정상회담 그 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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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9호 06면

SPECIAL REPORT - ‘한·일 대륙붕협정’ 2년 뒤 존폐 기로

정부는 2005년 국내 대륙붕 6-1광구에서 남서쪽으로 5㎞가량 떨어진 고래-8 광구에서 LNG 환산 80만t에 이르는 양질의 석유·가스층을 발견했다. [연합뉴스]

정부는 2005년 국내 대륙붕 6-1광구에서 남서쪽으로 5㎞가량 떨어진 고래-8 광구에서 LNG 환산 80만t에 이르는 양질의 석유·가스층을 발견했다. [연합뉴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 7, 8일 방한해 윤석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 관계 개선을 위한 의지를 분명히 하였다. 과거사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양국 모두의 미래를 위해 풀어야만 하는 현안은 수두룩하다. 공급망 재편과 이에 따른 첨단기술 협력은 물론, 북한 핵·미사일에 대응하는 한·미·일 안보협력 또한 시급하다. 한·일 간 과거사 갈등이 고조된 기간에 소홀하다 어느 사이 코앞에 부상한 문제도 있다. 바로 한·일 대륙붕 ‘남부구역 공동개발협정’(이하 ‘공동개발협정’ 또는 ‘협정’)의 처리 문제다. 협정은 1978년 6월 22일 발효하여 만 50년간 유효하다. 그런데 한쪽 당사자가 협정 종료 3년 전에 상대방에 종료를 통고하면 2028년 6월 22일을 기해 완전 종료하게 된다. 일본이 대외적으로 입장을 공식 표명한 적은 아직 없지만, 2025년 6월 22일부터는 언제라도 협정 종료를 통보할 수 있다. 이제 불과 2년여가 남았을 뿐이다. 협정이 종료되면 제7광구를 포함한 공동개발구역(JDZ: Joint Development Zone)이 모두 일본에 귀속될 것이라는 우려가 일각에서 계속 제기되고 있다. 이와 관련 몇 가지 쟁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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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공동개발협정의 체결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69년 국제사법재판소(ICJ)는 북해대륙붕사건의 판결에서 대륙붕을 연안국 육지 영토의 자연적 연장으로서 이를 해양경계획정에 있어 중요한 요소로 인정하였다. 이러한 국제법 추세에 맞추어 한국은 이듬해인 1979년 ‘해저광물자원개발법’을 제정하여 제주 남방 200㎞까지 넓은 수역에 7개의 대륙붕 광구를 설정하였다. 한국의 대륙붕이 오키나와 해구 수심 1000m에 이르는 단층까지 자연적으로 연장된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경계획정 원칙, 일본 유리한 ‘중간선’ 돼

한국의 선제적 조치에 놀란 일본의 요구로 양국 간 대륙붕 경계협상이 개시되었다. 한국이 대륙붕의 자연 연장설을 내세운 데 대해, 일본은 중간선 원칙을 주장하였다. 양국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자, 결국 양국의 주장이 중복되는 제7광구와 제4, 5, 6광구의 일부를 공동개발구역으로 설정하고 이 구역에서 양국이 공동으로 탐사하고 채취하기로 하였다. 당시 한국으로서는 대륙붕을 자체 개발할 자본이나 기술이 없었고, 국제법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놓인 일본도 한국과 타협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양국은 협정 체결 직후와 2002년 공동으로 탐사를 하였다. 한국이 탐사 분석 결과에 대해 긍정적이었지만, 일본은 경제적 채산성이 없다는 이유를 내세우며 추가 탐사에 소극적이었다. 이후에도 한국은 공동 탐사를 계속 요구하였지만, 이후 일본은 공동 탐사에 필수적인 일본 측 조광권자조차 지정하지 않고 있다. 국제사법재판소의 판단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1978년 리비아-몰타 대륙붕사건에서, 국제사법재판소는 불과 10여 년 전 북해대륙붕사건에서 내린 육지 영토의 자연적 연장설을 포기하고, 400해리 미만 수역에서의 EEZ와 대륙붕의 경계획정은 거리 원칙(중간선)을 적용하도록 하였다. 이후 중간선 원칙은 400해리 미만 수역에서의 해양경계획정에 적용되는 국제해양법 규칙으로 인정되고 있다. 따라서 협정이 종료되어 새롭게 대륙붕 경계를 획정한다면, 중간선 원칙에 따라 공동개발구역의 상당 부분이 일본으로 귀속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해양경계획정과 관련한 국제법의 변화에 따라 그 사이 한국과 일본의 법적 우위가 뒤바뀐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일본이 2028년 협정의 종료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자아내고 있는 것이다.

만일 일본이 협정 종료를 통보한다면 이후 공동개발구역은 어떻게 되나. 혹자는 협정이 종료되면 공동개발구역이 곧바로 일본의 수역이 될 것이라고 하지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협정이 종료되면 한국과 일본은 모두 협정상 인정된 공동개발구역에서의 공동 탐사와 채취권을 잃게 된다. 그렇지만 협정이 종료되더라도 우리 ‘해저광물자원개발법’과 ‘UN해양법협약’에 따라 우리가 설정한 제7광구를 비롯한 광구는 여전히 유효하다. 물론 일본도 이들 수역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것이다. 양국이 모두 공동개발구역을 자국의 대륙붕이라고 주장하므로 이 구역은 경계미획정 구역이 된다. 경계미획정 구역에서는 한국은 물론 일본도 해저 굴착과 같이 해저에 영구적으로 자연적·물리적 영향을 주는 탐사 활동을 자유롭게 할 수 없다. 양국은 또한 해양경계에 관한 최종 합의에 이르기까지 이를 위태롭게 하거나 방해하는 활동을 하지 않아야 한다.

해양문제는 해양경계를 획정함으로써 근원적이며 최종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경계미획정 구역에서 분쟁 없이 대륙붕 개발과 탐사 활동을 위해서는 해양경계가 획정되어야만 한다. 양국은 그간 경계획정을 위해 협상을 진행하여왔지만 2010년 이후 중단됐다. 주된 이유는 일본이 주장하는 동해상 독도 영유권 문제 때문이다. 이 때문에 동해에서의 해양경계획정은 단시간 내에 해결하기 어렵다. 하지만 남부구역에서의 해양경계획정은 마냥 미룰 수 없다. 공동개발협정이 종료되면 이 구역에서 한·중·일 3국 간 법적 진공상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남부구역에서 현재 적용되고 있는 ‘한일어업협정’과 ‘대륙붕 공동개발협정’은 EEZ와 대륙붕의 해양경계획정에 유용한 기초가 될 수 있다. 공동개발구역의 서쪽 경계는 현상을 유지하되, 일정 수역은 공동수역으로 재설정하여 함께 개발할 수도 있을 것이다.

협정 종료되면 ‘JDZ’ 일본에 귀속 우려

울산 앞바다 남동쪽 약 58㎞ 지점의 천연가스 생산시설 동해-1 가스전에서 한국석유공사 직원들이 힘차게 뛰어 오르고 있다. [뉴시스]

울산 앞바다 남동쪽 약 58㎞ 지점의 천연가스 생산시설 동해-1 가스전에서 한국석유공사 직원들이 힘차게 뛰어 오르고 있다. [뉴시스]

협정이 종료하는 2028년 6월 22일까지 약 5년의 기간이 아직 남아 있으므로 그 이전 해양경계획정 협상을 타결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양국은 조속한 시일 내에 남부구역에서의 해양경계획정을 위한 추진계획과 일정에 합의해야 할 것이다. 만일 종료 통보가 가능해지는 시점인 2025년 6월 22일까지 타결이 어렵다면 적어도 해양경계획정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공동개발협정이 계속 존속되도록 협의되어야 할 것이다.

동북아에서 미국과 중국의 해양 패권 경쟁은 날로 심화되고 있다. 중국은 남중국해는 물론 대만 해협과 관련하여 매우 공세적인 해양정책을 추구하고 있다. 공동개발구역의 상부 수역은 중국으로서는 태평양에 진출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출구이다. 한·미·일 모두에게도 해양 전략상 대단히 중요한 수역이다. 중국은 한·일 간 공동개발협정 체결 당시부터 이를 부인하고, 공동개발구역을 넘어까지 대륙붕 권원을 주장하고 있다. 협정은 지난 50여 년간 이 구역에서 국제해양법상 안정적인 법적 울타리를 제공하여왔다. 협정이 종료된다면 중국이 이 구역에 대한 자신의 대륙붕 권원을 내세우며 직접 권리 행사를 주장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하게 된다. 이 경우 남부구역은 한·중·일 3국의 해양 권원 주장이 경합하는 분쟁수역이 되어, 심각한 해양 충돌마저 초래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이라면 양국은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한·미·일 3국 간 안보협력에 미칠 정치·외교적 파급효과를 고려해야 한다. 일본으로서는 굳이 협정을 종료하여 현상을 변경할 실익이 없다 할 것이다. 새 집이 완성되기도 전에 지금 있는 집을 부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오히려 협정을 연장하거나 이를 대체하여 한·일 간 해양경계를 획정하는 것이 유익하다 할 것이다. 공동개발구역을 개발·탐사하기 위해서는 한·일 간의 협력이 필수적이라는 점 또한 반드시 고려해야만 한다.

대륙붕 공동개발문제는 한·일 간 오랜 갈등인 독도 영유권이나 위안부·강제동원·교과서 등 역사문제와는 본질적으로 결이 다른 문제이다. 이는 갈등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협력으로 해결해야만 하는 문제이다. 양국은 대륙붕 공동개발과 해양경계획정을 양국이 함께 추구해야 할 공동 번영의 문제로 인식하고, 미래 세대의 입장에서 양국 모두가 윈윈(win-win)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금번 기시다 일본 총리의 방한 이후 전개될 양국 정상의 후속 셔틀 외교에서 공동개발협정 문제를 의제로 포함하여 해결방안을 함께 도출해야 할 것이다. 대륙붕 공동개발문제의 해결이 양국이 새롭게 추구하는 미래지향적 실질 협력 관계를 추동하는 기폭제가 되길 기대한다.

임한택 한국외국어대 초빙교수·전 외교부 조약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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