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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촌~청와대~북촌 문화벨트로 묶어 ‘종로 모던’ 만든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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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9호 10면

문화유산 활성화 나선 정문헌 종로구청장

정문헌 종로구청장은 “골목마다 명품 스토리가 있는 종로, 걷기 좋고 머물고 싶고 다시 오고 싶은 종로를 만드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김상선 기자

정문헌 종로구청장은 “골목마다 명품 스토리가 있는 종로, 걷기 좋고 머물고 싶고 다시 오고 싶은 종로를 만드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김상선 기자

지난 3월 25일자 중앙SUNDAY에 서울YMCA 회관 재개발 관련 기사가 나갔다.(2면 ‘3·1운동 진원지, 조오련 키운 스포츠 성지…개발·보존 숙제’) 서울지하철 1호선 종각역 앞에 있는 서울YMCA 회관은 애국계몽운동의 주무대이자 근대스포츠의 역사를 품은 ‘도심 속 박물관’ 같은 존재다. 이 건물의 개발과 보존 사이에서 지혜를 찾아야 한다는 기사를 보고 종로구청에서 연락이 왔다. “그러잖아도 종로 일대 문화유산의 활성화를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라며 “그 속에서 YMCA 회관 재개발도 좋은 방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지난 9일 정문헌 종로구청장을 만났다.

“청와대의 용산 이전은 최고 권부(權府)의 물리적 이동만을 뜻하는 게 아닙니다. 청와대가 가로막고 있던 서촌과 북촌이 연결되면서 서촌~청와대~북촌으로 이어지는 가로 축선이 되살아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변화를 계기로 종로구는 역사와 문화, 관광을 한데 묶은 벨트를 만들려고 합니다.”

정문헌 종로구청장은 유소년기와 학창 시절을 종로에서 보냈다. 조선~일제 강점기~대한민국 건국과 산업화·민주화의 600년 영욕이 담긴 상징적인 건물과 공간들로 꽉 찬 곳이 서울특별시 종로구다. 지난해 6월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정 구청장은 ‘오래된 종로’의 이미지를 일신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구상했고, 청와대 개방 1주년을 맞아 구체적인 행보를 시작했다. ‘종로 모던(Jongro Modern)’이라고 이름 붙인 이 계획은 서촌~청와대~북촌 라인의 걷는 길을 새로 조성하고, 종로 도심을 개화기(모던 시기)의 생동감 넘치는 스토리텔링으로 엮어 문화 관광 벨트를 구성하는 것이다.

광화(光化)의 시대에서 개화(開化)의 시대로 바뀌었다고 선언했는데요.
“광화문으로 대표되는 ‘광화’는 유교의 가치와 덕목으로 백성을 교화해 태평성세를 이루고자 했던 조선의 이념적 지향이 담긴 말입니다. 그러나 조선 500년은 유교 이념 편향, 엄격한 신분제도의 폐해 등으로 결국 일본에 나라를 넘겨줬죠. 이젠 과거 조선의 지향인 ‘광화’가 아니라 생존과 번영을 위해 새로운 한반도 주민으로서의 정체성을 만들어 갔던 ‘개화(開化)의 시기’에 주목해야 합니다.”
‘종로 모던’의 의미를 설명하자면?
“한국에서 현대화의 중심은 강남이었어요. 1970~80년대 개발 붐을 타고 너도나도 강남으로 갔죠. 문화의 시대가 열리면서 그 중심이 종로로 돌아오고 있어요. 세계에 본(本)이 될 수 있는 한국식, 종로식 고도(高度) 현대화가 바로 ‘종로 모던’입니다. 한양 도성 면적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종로의 재발견, 재단장, 활성화는 서울의 얼굴을 되살려내는 작업이며 대한민국의 국가 이미지를 높이는 길이기도 합니다.”
구체적인 계획은?
“종로 전체를 전시장·박물관·공연장으로 만들 겁니다. 청와대가 개방되면서 종로의 문화자산들이 커다란 문화벨트 안에 놓이게 됐어요. 평창동 문화마을에서 청와대와 고궁, 삼청동 갤러리 타운과 최근 개방된 송현동, 인사동 화랑가에서 대학로 공연예술거리까지 연결하는 겁니다. 이곳들을 걸어 다니면서 역사의 숨결을 느끼고 먹거리·볼거리·살거리를 즐기는 거죠. 이건희 기증관이 들어설 열린송현 녹지광장 지하에 주차장을 만들어 관광버스들을 수용하면 훨씬 걷기 편한 명소가 될 겁니다.”
종로 곳곳에 밴 스토리를 발굴하는 것도 중요하겠습니다.
“사람·유행·풍물·패션 등 스토리텔링이 가능한 무궁무진한 콘텐트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일제는 서울의 중심을 종로에서 명동으로 옮기기 위해 남대문에 상권을 형성했어요. 여기에 대응하기 위해 고종이 당시 가장 현대적인 시장을 만들었는데 그게 광장시장입니다. 서재필이 미국 망명지에서 들여와 최초로 탄 자전거, 도쿄보다 3년 먼저 개통한 전차, 교회·성당·예식장·학교부터 극장·미장원·댄스홀까지 근대 문물의 ‘최초’는 거의 종로가 무대였어요. 그 얘기들을 차근차근 풀어낼 예정입니다.”
탑골공원 성역화 작업도 진행 중이죠.
“탑골공원은 기미독립선언문을 낭독하면서 3·1 만세운동이 시작된 역사적인 장소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개화’의 시발점이죠. 갈 곳 없는 어르신들이 모이는 곳, 퇴락의 대명사처럼 인식된 이곳을 제대로 된 시민공원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3·1운동 기념관도 짓고 공원 명칭도 바꿀 예정입니다. ‘삼일민족공원’ 등 후보가 몇 개 있습니다.”
서울YMCA도 개발과 보존 사이의 균형이 필요한데요.
“YMCA 회관은 건축학적으로도 가치가 큰 건물이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체육관과 수영장도 본관에 붙어 있습니다. 당연히 보존돼야 합니다. YMCA 측에서는 본관 뒤에 33층 규모의 건물을 지어 각 층에 민족대표 33명의 이름을 붙이려는 계획을 얘기하던데 좋은 아이디어라고 봅니다. 주위 스카이라인과의 조화, 고도제한 해제 등은 서울시와 협의해야 하는데, 오세훈 시장도 전향적이라고 들었습니다.”

‘종로 모던’은 풀어야 할 숙제도 많다. 서촌·북촌의 한옥이 사라지고 상업 시설이 들어서면서 주민들이 떠나고 있다. 교통난·주차난도 심각하다. 정 구청장은 “종로 활성화로 생기는 이익은 최대한 주민에게 돌아가도록 할 겁니다. 종로의 역사·문화 자산과 지역경제가 함께 살아나는 묘수를 찾고 있어요”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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