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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이 이렇게 예쁘게 컸죠"…죽음 직전 '에크모 임산부' 기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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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코로나에 감염돼 22일간 무의식 상태에서 인공호흡기, 에크모 치료를 받고 살아난 김미나씨. 딸 주이는 당시 김씨 뱃속에서 자라고 있었다. 지금은 모녀가 아주 건강하다. 사진 김미나

코로나에 감염돼 22일간 무의식 상태에서 인공호흡기, 에크모 치료를 받고 살아난 김미나씨. 딸 주이는 당시 김씨 뱃속에서 자라고 있었다. 지금은 모녀가 아주 건강하다. 사진 김미나

코로나19는 인류에게 엄청난 고난을 안겼다. 한국만 해도 3만4583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이런 절망만 있는 건 아니다. 코로나에 감염돼 죽음의 직전까지 갔던 산모들이 새 생명을 선사했다.

“주이야 엄마한테 와줘서 고마워. 건강하게 잘 자라줘서 너무 고마워. 엄마가 많이 많이 사랑해.”

김미나(40·인천 중구)씨는 19개월 된 딸 옆에서 수시로 이렇게 얘기한다. 주이는 알아들은 것처럼 고개를 끄덕인다. 김씨는 2021년 6월 임신 7개월에 코로나에 감염됐다가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났다. 생환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 모른다. 서울대병원에서 20일가량 인공호흡기와 에크모(체외순환기)를 달았다. 무의식 상태였다. 기적 같이 살아났고 주이를 순산했다.〈중앙일보 2021년 12월27일자 2면〉

 김씨에게 11일 전화를 걸었다. 목소리가 너무 밝았다. 목소리처럼 아무 일 없었다. 주이는 동네 귀염둥이다. 주이는 “아빠” “엄마” “오빠” “앉아” 같은 아주 간단한 말을 한다. 엘리베이터나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에게 먼저 손을 흔든다. 이웃들이 “아이 예쁘네”라고 칭찬한다. 주이는 밥을 제일 좋아하고, 숟가락 질이 능하다. 음식을 가리지 않고 뭐든지 잘 먹는다. 또래 평균보다 키가 크고, 몸무게는 비슷하다. 간간이 감기에 걸려 동네 소아청소년과에 가는 것을 빼고는 건강에 문제가 없다. 신생아 때 가끔 열이 났는데, 혹시 코로나 때문이 아닐까 걱정했지만 가벼운 감기였다. 오빠 주원(4)과 잘 논다.

2021년 9월 딸 주이를 출산한 김미나씨가 남편·아들과 찍은 기념사진 사진 김미나

2021년 9월 딸 주이를 출산한 김미나씨가 남편·아들과 찍은 기념사진 사진 김미나

 김씨는 그 흔하다는 코로나 후유증이 없다. 약 두 달 병원 신세를 졌고 보란듯 코로나를 이겨냈다. 그는 2021년 6월 2일 확진됐고 폐렴이 악화해 일주일 만에 서울대병원으로 이송됐다. 바로 인공호흡기를 달았고 무의식으로 빠져들었다. 폐가 눌리지 않게 16시간 거꾸로 눕는 프룬 포지션(prone position) 치료를 세 차례 받았다. 상황이 더 나빠져 그 달 16일 에크모(혈액을 밖으로 빼 산소를 공급해 인체에 주입하는 장치)를 달았다. 국내 최초의 에크모 임신부 감염자였다. 의료진은 남편(46)에게 “최악에 대비하라”고 말했다. 그러나 에크모 단지 17일 만에 기적같이 깨어났다. 강한 모성애 앞에서 바이러스가 결국 물러났다.

 김씨는 서울대병원 의료진의 치료 덕분에 코로나 중환자실, 일반 중환자실, 일반병실 순으로 옮겼고, 그 해 7월 26일 인공호흡기를 떼고 사흘 뒤 퇴원했다. 9월 17일 3.4㎏의 주이를 순산했다. 지난해 2월 폐 기능 검사 등을 했더니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지금은 임신성 당뇨가 남아있어서 운동과 식이요법을 병행한다. 지난해 4월 김씨와 주이가 코로나에 걸렸으나 주이는 하루 미열 증세가 있었고, 김씨는 무증상이었다.

2021년 7월 임신 7개월에 코로나19에 감염돼 서울대병원에서 국내 최초로 에크모 치료를 받고 기적처럼 회생한 김미나씨가 17일 만에 에크모를 뗀 뒤 의료진의 축하를 받는 모습. 사진 김미나

2021년 7월 임신 7개월에 코로나19에 감염돼 서울대병원에서 국내 최초로 에크모 치료를 받고 기적처럼 회생한 김미나씨가 17일 만에 에크모를 뗀 뒤 의료진의 축하를 받는 모습. 사진 김미나

 김씨는 서울대병원 입원 때 인공호흡기에다 고열·가래 때문에 고통이 극심했다. 의식이 돌아왔을 때 몸을 일으키지도, 팔을 들지도 못했다. ‘꼭 걸어나 나가야겠다’라고 독한 마음을 먹고 병마와 싸웠다. 생각을 바꾸니 병원 생활이 즐겁게 다가왔다. 김씨는 “내가 잘 먹어야 뱃속의 애가 잘 자란다는 생각에 밥그릇을 비웠다. 지나간 시간은 잊고 앞만, 미래만 보자고 다잡았다”고 말한다. 김씨는 “언제 죽음이 찾아올지 모른다. 지금의 삶에 충실하려고 한다. 아이가 감기에 걸리거나 경제적으로 어려워도 연연해 하지 않는다. 다른 아이만큼 이것저것 더 가르치려고 하지 않는다. 건강하게 자라는 것만으로, 아이가 웃어주는 것만으로 행복하다”고 말한다.

김씨 부부는 결혼 5년 동안 아이가 안 생겨 고생하다 시험관 시술로 주이·주원이를 얻었다. 주원이는 담도폐쇄증 수술을 받고 지금은 건강하게 자란다. 김씨는 “주이가 옆에 있는 게 기적같다”고 말한다. 교육학 석사인 김씨는 자신의 꿈을 조금씩 꺼내기 시작했다. 아이 둘이 더 크면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ADHD) 등이 있는 ‘마음이 아픈 아이’를 놀이·미술로 치료하는 일을 하려 한다.

경기 광명서 충남 홍성까지, 130㎞ 달려가 출산    

“홍성의료원에서 음압 기계를 가져와 임시로 분만실을 만들어줬어요. 아이와 제가 들어갈 격리 병실도요. 퇴근했던 의료진이 급하게 달려왔고요.”

김초혜(33)씨는 2살된 아들 도건을 볼 때면 아찔한 순간 발 벗고 도움 준 의료진 생각에 울컥한다. 11일 김씨는 도건이를 낳던 지난해 3월 9일을 되돌아보며 중간 중간 말을 못 잇고 한숨을 내쉬었다. 김씨의 집은 경기도 광명이다. 그런데 근처 산부인과를 놔두고 집에서 130㎞ 떨어진 충남 홍성의료원에서 아들을 낳았다. 가진통이 있어 분만하려던 병원에 입원하기 위해 받은 신속항원 검사에서 뜻하지 않게 코로나19 양성이 뜨면서다. 코로나 증상이 없던 차라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그렇게 남 얘기 같던 코로나19 확진 산모가 됐다.

김초혜씨의 아들 도건군이 지난해 3월 9일 태어난 직후 격리된 모습. 김씨는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고, 집이 있는 경기도 광명에서 130㎞ 떨어진 충남 홍성 의료원에서 출산했다.

김초혜씨의 아들 도건군이 지난해 3월 9일 태어난 직후 격리된 모습. 김씨는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고, 집이 있는 경기도 광명에서 130㎞ 떨어진 충남 홍성 의료원에서 출산했다.

해당 병원에선 김씨를 받을 수 없다고 했다. 보건소에서 갈 만한 병원 리스트를 받아 수소문했는데 서울에서 시작해 경기까지 넓혀도 갈 병원이 구해지지 않았다. 그러다 진통이 심해졌다. 구급차를 불렀고 구급대원들이 달라붙어 충남과 충북, 경상, 경북 그러다 제주까지 6시간 동안 전화를 돌렸다. 김씨는 “제주도 병원에서도 거절 당했을 땐 그냥 집에서 낳을까도 싶었다”고 떠올렸다. 머릿 속으로 구급차 분만 뉴스가 스쳐 지나가면서 그럴 바엔 집이 낫겠다 생각했다.

충남의 홍성의료원에서 오라는 말을 들었을 땐 오후 6시가 다 됐을 때다. 가진통 12시간 만이었다. 계획한 자연분만 대신 제왕절개 수술을 했다. 김씨는 “제 비말이 아이를 감염시킬 수 있다더라. 제 자가 호흡을 멈춘 상태에서 아이를 꺼낼 수 있는 제왕절개 말고는 선택지가 없었다”고 했다.

태어난 지 13개월 된 도건 군의 최근 모습. 김초혜씨는 ″아기 크느라 정신이 없어서 도와준 분들께 마음으로만 감사하고 지냈다″며 ″아이를 잘 키우는 것으로 사회에 보답하고 싶다″고 전했다.

태어난 지 13개월 된 도건 군의 최근 모습. 김초혜씨는 ″아기 크느라 정신이 없어서 도와준 분들께 마음으로만 감사하고 지냈다″며 ″아이를 잘 키우는 것으로 사회에 보답하고 싶다″고 전했다.

아이를 낳고도 회복은 더뎠다. 제왕절개 수술 자체로도 몸에 무리가 많이 가는데 코로나 증상이 겹치면서다. 그러나 김씨는 그날의 기억을 고통보단 감사로 받아들인다. 김씨는 산부인과 의사, 부천 소방서 구급대원, 보건소 직원까지 손길을 내민 이들을 읊으며 몇 번이고 고맙다고 했다. 그렇게 품은 도건이는 특별한 잔병치레 없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김씨는 “도건이를 잘 키우는 것으로 보답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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