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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구구단 하는데, 난 덧셈도 안돼" 문 열린 학교 충격결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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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3년간의 코로나19 시기 교육 공백으로 학습 결손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사진은 지난달 26일 경기도 한 초등학교 3학년 학생이 집에서 학습하고 있는 모습. 김종호 기자.

3년간의 코로나19 시기 교육 공백으로 학습 결손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사진은 지난달 26일 경기도 한 초등학교 3학년 학생이 집에서 학습하고 있는 모습. 김종호 기자.

경기 성남시에 사는 중학생 A(14)군은 초등학생 대상 보습 학원에 다닌다. 분수ㆍ소수의 곱셈과 나눗셈 등 초등 고학년 과정을 배운다. A군은 전반적인 학습 부진 상태인데, 특히 수학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A군 어머니 김모(45)씨는 “코로나19 이전에는 이렇게까지 뒤처지진 않았는데 원격 수업하던 때 아이를 너무 방치한 것 같다”라고 자책했다. A군이 초등 5학년이던 해 코로나19가 터졌고, 이후 2년 가까이 원격 수업이 이어졌다. 부모가 일하러 간 새 아이는 집에서 혼자 수업을 들었는데, 선생님 눈을 피해 유튜브를 보거나 게임을 했다. 그게 쌓여 커다란 구멍이 됐다. 김씨는 “형편이 빠듯하다 보니 신경을 못 썼다”라며 가슴을 쳤다. 뒤늦게 아이를 보낼 학원을 알아봤지만, 또래가 다니는 곳은 고등과정 선행 수업을 하고 있어 받아주지 않았고, 간신히 동네 보습 학원에 등록했다고 한다.

코로나19 3년, 학습 격차 심화

학교가 정상화하면서 팬데믹 시기 잃어버린 3년의 후유증이 나타나고 있다. 원격 수업이 학습의 주된 통로가 된 ‘젠 C(Covid 세대)’에 닥친 교육 쇼크다. 코로나19로 인한 교육 공백은 단순 학력 저하뿐 아니라 기존의 학력 격차를 더 벌리고 생애 전반에 걸쳐 영향을 줄 것이란 게 전문가들 우려이다.

세계은행(WB)은 지난 2월 보고서에서 “팬데믹으로 인한 교육 충격으로 학생들은 미래 소득의 최대 10%를 잃을 수 있다”라며 “유아에서의 인지적 결핍은 성인이 됐을 때 소득을 25% 감소시키는 것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경기 한 초등학교 3학년 학생이 하교 후 태블릿 기기로 그림 그리고 있다. 김종호 기자.

경기 한 초등학교 3학년 학생이 하교 후 태블릿 기기로 그림 그리고 있다. 김종호 기자.

학습 결손을 뒷받침하는 자료는 중ㆍ고생에서 실시하는 국가수준학업성취도 분석 결과가 사실상 유일한데 여기서 기초학력 저하는 일부 확인됐다. 2019년과 2021년 기초학력 미달 학생 비율은 중학교 3학년에서 국어 4.1%→6.0%, 수학 11.8%→11.6%, 영어 3.3%→5.9%로 나타났다. 고등학교 2학년생은 국어 4.0%→7.1%, 수학 9.0%→14.2%, 영어 3.6%→9.8%로 미달 학생이 급증했다.

초등학생은 이런 국가 데이터조차 없다. 손승현 고려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등은 ‘코로나19 발생 전후 초등학교 3, 4학년의 수학 학업성취도 변화’ 논문에서 2019년, 2020년 각각 평가도구를 활용해 초등학생을 조사한 뒤 “3학년은 통계적으로 유의한 차이가 없었지만 4학년에서 수학 학업성취도가 하락했다”라며 “특히 구체물을 활용해 개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도형과 측정 영역에서 학력 저하가 두드러졌다”고 지적했다. 교수팀은 “학습 내용이 어려워지고 개인 차가 나타나기 시작한 4학년은 학습 결손에 더 취약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초등학교 4학년인데 덧셈·뺄셈 어려워”

현장에선 특히 소득 격차와 부모 관심 등을 포함하는 가정환경에 따른 기존의 학력 격차가 더 벌어졌을 거로 우려한다. 중학생 B(14·서울 서초구)군은 학원에서 고등 수학 과정을 공부하고 있다. 이미 같은 과정을 2번 반복했고, 이번이 세 번째다. 자사고를 목표로 공부 중인 B군은 코로나19 시기에 이전보다 공부량이 더 늘었다. 학교 수업이 이전보다 짧아지면서 과외 수업 등을 할 시간이 늘어나서다. 사교육비가 월 200만원가량 든다. B군의 어머니 C(47)씨는 ”주변 아이들보다 진도가 그리 빠른 편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저소득 다문화 가정에서 자란 이모(경기 포천·초4)양은 한글과 덧셈ㆍ뺄셈 등에 어려움을 겪는다. 이 양을 담당하는 학습지 교사는 “아직 1학년 수준으로 많이 느린 편”이라며 “최소 2년은 해야 자기 학년 수준을 따라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0년 12월 서울 종로의 한 학교 교문에 마스크 착용 안내 포스터가 걸려 있다. 연합뉴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0년 12월 서울 종로의 한 학교 교문에 마스크 착용 안내 포스터가 걸려 있다. 연합뉴스.

서울 한 초등학교 교사는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고 부모가 학습에 적극 관심을 갖는 집에선 등교 중단 때 불안한 마음에 학원, 과외를 더 열심히 보내며 코로나 전보다 오히려 학업 성취도가 올라갔다”라며 “그렇지 않은 가정에선 그나마 학교 나갈 때 됐던 기초학습이 안 된 것 같다”라고 했다. 교육부와 한국교육학술정보원이 2020년 7~8월 전국 초ㆍ중ㆍ고 교사 약 5만명을 대상으로 원격 수업으로 학습 격차가 커졌는지 물었더니 79%가 그렇다고 답한 바 있다.

이정연 경기도교육연구원 교육연구부장은 “상위권 학생에게는 코로나19 상황이 효율적인 시간 활용과 충분한 반복 학습 기회가 된 반면 자기주도학습 역량이 부족한 중위권이나 기초학력이 부족한 하위권은 학교서 충분한 지원, 적절한 관리를 받지 못해 격차가 심화됐다”고 설명했다. 이 부장은 또 “가정에서 부모의 학습 지원을 받고 자신만의 독립된 공간에서 학습에 참여할 환경이냐 아니냐도 학습 결과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의 2023 아동행복지수 보고서에서도 빈곤, 비빈곤 가구 아동의 격차가 확인됐다. 초등학교 5학년~고등학교 2학년생의 2021년, 2022년 학급 석차를 비교했더니 비빈곤 가구의 경우 하위권 분포가 13.2%→12.9%로 줄었고 중위권은 49.2%→49.6%로 늘었다. 빈곤가구에선 상위권이 18.5%→15.9%로 내려가고 중위권이 50.1%→52.8%로 늘었다.

권태훈 초록우산어린이재단 복지기획팀장은 “저소득층 아이들은 비대면 교육으로 전환됐을 때 디지털 기기 보급부터 어려움이 있었다. 기기가 제공됐다 해도 동영상 플랫폼을 활용하는 데 있어 가족 도움을 받지 못해 안정감을 갖고 학습할 수 없었다”라며 “학습 격차뿐 아니라 불안ㆍ우울감, 사회적 고립감 등 정서적인 측면에도 큰 영향을 줬다”고 했다.

2021년 2월 서울 서초구의 한 초등학교 교실에 방역 물품이 비치돼 있다. 연합뉴스.

2021년 2월 서울 서초구의 한 초등학교 교실에 방역 물품이 비치돼 있다. 연합뉴스.

“적극적 정책 개입 필요”  

이정연 부장은 “선행 연구에 따르면 코로나19로 인해 학생들은 평균 7개월 정도 학습 결손을 경험할 것”이라며 “성취 격차가 기존 대비 15~20%까지 악화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또 “이런 양상은 학생이 어떤 지원을 받는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라며 “학습 결손 해소 및 최소화를 위한 개입과 제도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기초학력에 대한 학생진단시스템을 갖추는 등 국가적 차원의 객관적 데이터부터 수집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방과후학교 같은 맞춤형 학습이 보다 강화돼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보통 학교와 가정이 평형추처럼 역할 하는데 코로나 기간 공교육이 충분한 역할을 못 했다. 저소득층의 경우 이 공백이 채워지지 않았기 때문에 수준별 학습을 통해 보충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젠C(Generation Covid)=2020년 뱅크오브아메리카가 발간한 보고서에서 처음 등장했다. 코로나19 초기 사회화 단계에 접어든 2016년생부터 팬데믹 종식 이후 몇 년 간 영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되는 2030년대생까지 포함한다. 최근엔 의미가 확장돼 팬데믹 시기 전후로 태어나거나 학령기를 보내는 세대를 통칭하는 말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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