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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기찬의 인프라

일인백색시대…백인일색 인사관리로는 Z세대 못 잡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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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김기찬
김기찬 기자 중앙일보 고용노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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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얼마 전 몇몇 대기업 인사담당 임원들과 자리를 했을 때다. 화제가 Z세대로 옮겨지자 저마다 고민을 털어놨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다” “일을 시키면 ‘내가 왜 이걸, 지금 해야 하느냐’는 반문부터 한다” “위기 상황인데 개인 우선이다” “자기만의 잣대를 두고 판단한다” “우리 때 가졌던 열정이 없다” 등 각양각색이다. “이런 문화가 기존 직원에게 퍼질까 걱정”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그러면서도 “인사관리(HR) 방침에 정답이 없다. 그때그때 검토하고 맞춰간다”고 했다.

“내 방식대로 살겠다” 점점 늘어
회사임원 노리는 Z세대 ‘0명’
톱다운 방식 인사관리 안 통해
평가시스템도 간소화할 필요

“내 모든 걸 왜 회사에 바치라고?”

어쩌면 그 답이 서울 소재 모 대학 경영학과 강의실에서 나왔는지 모른다. 교수가 학생에게 “소위 좋은 기업에 취업했다고 가정하고, 임원까지 올라갈 결심을 가진 사람”이라고 물었다. 단 한 명도 없었다. 이 교수는 “내 모든 걸 왜 회사에 다 바치느냐는 생각을 하고 있더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하루빨리 만연한 ‘꼰대형 인사문화’를 고쳐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직원 발(發) 위기, 즉 인재 위기가 엄습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임원들의 걱정처럼 “회사 내 다른 세대도 Z세대의 행동에 속으로는 박수를 친다는 걸 알아야 한다. 불합리한 조직문화 개조를 그들이 대신 들춰준다고 생각한다. 이런 대리만족이 퍼지면서 기존의 HR 관행을 흔들 것”이라고 조언했다. “우리 기업은 관성적으로 해 온 방식에 익숙해서 도통 이해하려 들지 않고, 조금만 다르면 되바라진 거로 본다”는 한탄을 곁들여서다.

이른바 Z세대는 완전히 다른 인간인가. 노동시장에서의 Z세대의 특징을 알아보려 필자는 회사를 떠나는(이직) 이유를 들여다봤다. 이직은 개인이 가진 환경뿐 아니라 조직생활에서의 경험과 심리적 상태 등이 복합적으로 얽힌 행동이어서다. 경제적 독립과 조기 은퇴를 축약한 파이어족(FIRE)의 등장은 “자신의 방식대로 삶을 살고, 고용주에 의존하거나 그로 인해 누릴 수 있는 안전의 햄스터 바퀴에서 벗어나려고 하는”(다니엘 해리슨) 현상의 사회화 과정이다. 말 그대로 ‘퇴직이 목표’인 새로운 사회 현상이다. 인재를 키우고, 붙잡아야 하는 기업으로선 여간 고민스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분석은 한국노동패널 제22차 2만3225명의 노동시장 활동 자료를 활용했다. 세대별로 분류하고, 이직 사유를 추출했다. 특히 다니고 있는 직장(일자리)에 대한 만족도를 끌어올리는 요인이 무엇인지 살폈다. 직장에 만족한다면 이직할 이유가 없거나 줄어들기 때문이다. ▶개인의 발전 가능성, 5년 후 삶의 만족도 예상과 같은 ‘미래 전망’ ▶여가활동이나 주거환경, 가족관계, 사회적 친분 등 ‘생활 만족’ 정도 ▶전공과 일의 일치 수준 ▶임금·고용안정·근무환경·근로시간·의사소통과 같은 ‘직무 만족’ 정도 등의 요인들이 현 직장에 대한 만족도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지, 이게 이직 의사에 얼마나 반영되는지를 따졌다. 결론부터 말하면 Z세대는 베이비부머, X세대, Y(M)세대와 직장을 대하는 태도가 확연하게 달랐다.

Z세대를 제외한 나머지 세대는 미래 전망이나 생활만족, 전공·일 일치도, 직무만족 등 모든 요인이 직장 만족에 영향을 미쳤다. 어느 한 가지만 낮아도 직장에 회의를 느낀다는 의미다.

Z세대는 판이했다. 다니는 회사가 미래를 꿈꾸는 데 도움이 되는지, 일상생활에 만족감을 느끼게 하는지는 직장 만족도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애초에 회사에 뼈를 묻을 생각이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들이 회사에서 만족감을 느끼는, 그래서 이직을 떠올리지 않게 하는 유일한 요인은 자신이 수행 중인 직무에 만족할 때였다. 미래 비전이나 가치관, 생활만족, 사회적 관계 등이 직장 생활에서 파생되는 것이라고 여기지 않는다는 의미다.

이런 연구결과는 HR 시스템의 변화가 필요함을 시사한다. HR상 조직의 비전이나 목표 등을 고려해 어느 정도의 통일성과 지향점은 필요하다. 그러나 세대 간 차이 등을 배제한 일률적으로 이뤄지는 인사관리는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다. Z세대에게 보편화한 ‘본캐’(본래 캐릭터)와 ‘부캐’(평소와 다른 새로운 또는 부수적인 캐릭터)라는 용어에서 보듯 한 사람이 여러 가지 일 또는 캐릭터를 소화하고 환경에 따라 완전히 다른 형태로 자신을 표현하는 일인백색(一人百色)의 시대다. 톱 다운(Top-Down) 방식의 업무추진이나 백인일색(百人一色)의 일사불란한 움직임을 요구하는 인력 관리가 효용성을 가지기는 힘들다.

자율권 넓히고 리더 공백 대비해야

채용에서 평가·보상, 퇴직관리 전반의 혁신이 필요하다. 글로벌 경영조사기관인 CEB에 따르면 포춘 500대 기업 중 85%가 성과 평가 프로세스를 줄이고, 등급도 절반으로 간소화했다. 직원들의 자율 선택권도 확대했다. CEB는 특히 리더의 공백을 경고했다. 리더로서의 역량은 단체생활 속에서 길러진다.

한데 Z세대는 개인화가 특징이다. 리더를 양성하는 데 어려움이 따를 수 있고, 리더의 자질을 보이는 인재를 잡아놓기도 힘들다. 기업의 인사혁신도 따지고 보면 노동개혁과 궤를 같이한다. 자율권 확대와 같은 HR 시스템의 개편은 시대 변화를 수용하는 조치이기 때문이다. 경직되면 결국 경영리스크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상세 연구 내용은 한국연구재단(KCI) 학술 등재지인 ‘실천공학교육’ 최신호(Vol 15-1)에 게재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