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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병기 ‘필향만리’

患不知人(환부지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5면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

공자는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음을 걱정하지 말고, 내가 남을 알지 못함을 걱정하라”라고 하였다. ‘자신에 대해 과신하지 말고, 겸손한 자세로 남을 이해하라’는 깊은 뜻이 담긴 말이다.

요즈음 전세사기 사건을 보자니 공자의 이 말마저도 야속하게 들린다. ‘가진’ 사람들이야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음을 걱정할 겨를이 있겠지만, 가진 게 적은 백성들이야 본래부터 남이 나를 알아주기를 바라기는 고사하고, 오히려 ‘남을 알기 위한’ 노력을 피나게 하며 험한 세상을 살아왔다. 그런데도 사기를 당하고 보니 ‘남을 알려고 노력하라’고 말한 공자 마저도 원망스러운 것이다.

患: 근심할 환, 知: 알 지. 남을 알지 못함을 걱정하라 35x75㎝.

患: 근심할 환, 知: 알 지. 남을 알지 못함을 걱정하라 35x75㎝.

전세 사기를 당한 사람이 수천 명이다. 악덕업자의 조직적인 교활한 농간을 선량한 약자 한 사람이 간파하고 대처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정부는 약자에 대한 보호 장치가 턱없이 허약했음을 통감하고 실질적인 구제책을 마련해야 한다.

공자의 ‘남을 알지 못함을 걱정하라’는 말의 본뜻이 ‘사기 칠지 모르니 남에 대해 잘 알아보라’는 데에 있지 않음을 잘 알면서도 “공자님! 저희는 공자님 말씀대로 남을 알지 못할까 걱정했음에도 당했습니다. 억울해요!”라며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은 걸 어쩌랴!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